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듣는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몸이 갈라질 듯한 추위를 맛본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다 해도 그 상황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오늘은 날씨가 안 좋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안 좋은 날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을 이런 식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떤 날도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매일매일 좋은 날 _ p.256

 

 

 

 

 

 

스무 살의 봄, 그녀는 엄마의 권유로 '다도'를 배우기로 한다.

낡고 케케묵은 일본의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다도는 처음부터 이해되지 않은 까다로운 요구들로 그녀를 옭아맨다.

행동 하나하나에 엄청난 제약이 뒤따랐고, '왜'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행동과 이런 규범에 얽매여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다도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걷는 걸음의 수, 물을 따르는 높이, 물을 뜨는 깊이, 다기의 위치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정해진 틀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다도는 너무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그다음 동작을 외우지도 못하게 하고, 그저 몸이 익히게 하는 다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숙한 몸의 기억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다도는 늘 머릿속에 생각을 꽉 채우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난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온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p. 170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는 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 완벽히 몰입하는 일.

지금에 머무는 일이 우리는 그렇게도 힘이 든다.

이미 지나버린 어제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로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자꾸만 오늘을 소비하고 있다.

다도를 하는 내내 그녀는 '여기'에 집중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어제와 내일을 잊고, 방금 지나버린 시간을 버리고, 오로지 지금 눈앞에 있는 차의 시간에 집중하는 일.

계절이 지나는 순간,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온몸으로 오롯하게 느끼는 일.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감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

그것이 다도였다.

 

 

 

결코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자,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하도록 해.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는 거야."

매일매일 좋은날 _ p.076

 

 

다도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었다.

계절을 차 안에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차를 타는 것을 칭하는 '데마에'는 계절에 따라 달라졌다.

다완도 역시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달랐다.

차를 담아두는 그릇은 진한 차와 연한 차에 따라 이름이 다르고,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글을 바꿔가며 거는 족자 또한 계절과 절기를 통과했다.

무엇 하나 지금 이 시간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차를 만드는 모든 과정,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 그리고 오늘의 날씨와 지금의 계절.

그 모든 것이 '다도'라는 이름으로 '지금 이 순간'을 깊게 향유하게 했다.

 

 

 

 

 

나는 언제나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 봤자 지난날로 돌아갈 수도 미래를 앞서 나가 준비할 수도 없는데.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지금을 즐기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할 때, 인간은 자신이 가로막는 것 없는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매일매일 좋은 날 _ p. 256

 

 

 

 

 

 

그러나 차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제한이 없다. 3년이 걸려 깨닫든 20년이 걸려 깨닫든 본인의 자유다. 깨달을 때가 오면 깨닫게 된다. 성숙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사람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빨리 이해했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도 않는다. 이해가 늦더라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만의 깊이가 탄생한다.

어떤 답이 옳고 틀리다거나,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눈은 하얗다'도 '눈은 까맣다'도 '눈은 내리지 않는다'도 모두 정답이었다.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니까 정답도 다 다르다.

차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p.266

 

 

 

그녀는 무려 40년 동안 꾸준히 다도를 계속해 오고 있다.

(책은 25년까지의 다도 인생이 담겨있지만, 현재까지 여전히 다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수많았던 삶의 순간들 속에서 꾸준히 멈추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차곡차곡 쌓아온 그녀의 다도 인생.

이십 대의 뜻 모를 불안과 삼십 대의 밥벌이의 피곤함과 사십 대의 고뇌를 함께 해주었던 다도의 시간.

그 긴 시간 동안 그녀는 사랑을 잃기도 하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도 했다.

가족을 잃는 상실을 겪으며 깊이 울어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계절을 꾸준히 돌고 돌아 봄이 오고, 봄의 데마에가 시작되고는 했다.

 

일주일에 하루씩 다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겪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

그것들은 차의 시간이 삶의 시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계절을 그대로 겪어내고, 길고 긴 시간을 이어져오며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다도.

그녀의 담담한 깨달음들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 너무 복잡하게, 너무 질척거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생각을 멈추고 지금에 집중하며 계절을 느끼라고, 그녀가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나도 한참을

오늘의 계절을 바라보고 있다.

 

 

 

 

 

먼 옛날 맡았던 바람과 물, 비의 냄새가 그때의 감정과 하나가 되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간다. 과거의 수많은 내가 지금의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 156

 

 

사실 나는 차는 좋아하지만, 다도에 대해서는 완벽히 문외한인 사람이다.

무엇을 느끼고, 알면서 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차가 좋아 종종 마시곤 한다.

그러니까 커피나 음료처럼 그저 기호식품인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전혀 다른 '차'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한 번도 이토록 깊게 차를 생각하고,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 이 시간들은 봄을 알리는 봄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고, 닫혔던 세상을 톡톡 두드려 깨워주는 다정한 봄비 같은 책.

 

 

특히나 저자가 비 오는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그 방에서 비 오는 풍경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글이었지만 나는 오감으로 그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오래전 시골집에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빗속에 갇혀 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더 가깝게 느껴지는 그 느낌을 나는 안다. 그 친밀함을 알고 있다.

이 네모 반듯하고 촘촘한 고층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느껴볼 수 없는 순간을 책을 통해 다시 또렷하게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수많은 계절의 모습이 담겨있는데, 그 계절의 모습과 냄새와 소리를 내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데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차를 마시며 그녀가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던 순간, 나는 그녀의 글을 통해 잊어버렸던 계절을 온몸으로 앓고 있었다.

 

 

 

 

만일 미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사람은 정말로 그 순간이 닥칠 때까지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다. 결국 처음 느꼈던 감정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슬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결국 오랜 시간이 걸려 조금씩 그 슬픔에 익숙해져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_p.231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은 그녀의 상실의 고통에 동질감을 느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이 사실은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담담한 그녀의 말들이 더 가슴에 맺히고 말았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말할 뿐인데도 어쩐지 굉장히 깊은 위로를 건네받은 느낌이 든다.

차와 다도와 삶과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뜻밖의 위로까지 덤으로 받고 말았다.

나에게는 정말 휴식 같은 책일 수밖에 없구나 싶어진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일본의 가옥과 다실, 다도의 도구들이 사진으로 나마 실려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원작에는 실려있지 않고, 한국판에만 사진이 실려있는 모양인데 편집자의 센스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일본의 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모든게 낯설기만 한데, 상상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놓아준 배려가 참 좋았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다도의 과정들을 꼭 눈으로 보고 싶어졌으니까 말이다.

 

 

 

마치 책마저 다도를 닮아 맑은 느낌이다.

다도를 하나도 모르는 나조차 다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도의 과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이 무엇이 재미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놀랍게도 그 모든 순간순간이 우리에게 쉼을 주고, 멈춤을 선물해 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생각을 멈추고 오늘의 계절에 집중하는 일이 아닐까.

바로 그 무의 상태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계절의 숨소리야말로 제대로 된 쉼이고 힐링일테니까.

 

 

 

인간에게는 아무리 이해하려 애를 써도 그때가 올 때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닫는 순간이 오면 그 사실을 덮고 감출 수는 없게 된다.

처음 차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뭐 하나 짚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그것이 단계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왜 그렇게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삶이 버겁고 힘들 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를 잃었을 때, 차는 가르쳐 준다.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라."

 

서문. p.0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잘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일이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 있다.

…중략…

절대로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제1장 우연한 만남. p.88~89

 

 

 

이 책은 어쩌면 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에 대한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더 많은 인물과 사건과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우리 안에 있는 각자의 합리와 불합리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너는 믿을래? 믿지 않을래?

그들의 존재를,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건 지는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과학적으로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여전히 우리 곁에는 이토록 많은데도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과 합리 쪽의 레일에 더 무게를 두고 달리고 있는 모양이니까.

누군가 내게

귀신의 존재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초능력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역시나 글쎄.

신의 존재는? ... 그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닐까??

역시나 YES or NO의 명확한 답을 내어 놓기가 어렵다.

그렇다는 건 내 안에 믿지 않는 마음만큼 믿고 싶은 마음도 공존하는 모양이다.

진짜 내가 현실 속에서 신지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이야기를 과연 믿어 줄 수 있었을까?

 

 

 

 

 

사람은 이따금 그렇게 치명적으로 무책임 아니, 낙관적이 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제1장 우연한 만남 _ p.33

 

 

이야기는 바로 그 치명적인 무책임, 혹은 낙관론에서 시작된다.

태풍이 몰아치는 밤, 물에 잠긴 도로의 맨홀 뚜껑을 열어 놓은 사람이 있다.

차가 물에 잠기지 않기를 원해 한 일이지만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낙관했던 그 일은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태풍이 몰아치는 밤, 고양이를 찾으러 아이가 그 도로 위를 걷다 맨홀에 빠져 죽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자신의 이익, 혹은 많은 사람을 위한다 믿었던 선의는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이는 죽었고, 범인은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누군가였다.

그날 밤, 기자인 고사카는 어쩌다 보니 바로 그 길을 지나게 된다.

태풍이 일으킨 비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소년을 우연히 만나, 그의 차에 함께 태우고 도쿄로 가던 중이었다.

뚜껑이 열린 맨홀, 노란색 아이 우산, 그리고 실종된 아이.

경찰이 출동하고 날이 밝았지만 아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고, 맨홀 뚜껑을 열어둔 무책임한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그때 신지가 고사카에게 고백한다.

범인을 알고 있다고.

자기는 볼 수 있다고.

우산이 기억하고 있는 순간을, 맨홀 뚜껑에 남겨진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

당신의 기억도 읽을 수 있다고.

 

 

신지가 거기서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의 기척, 체온, 숨결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했다. 나중에 이때의 일을 떠올리며 어울리는 말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런 표현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신지는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가, 내가 있는 이곳과는 전혀 다른 좌표로 사라져 버린 듯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제1장 우연한 만남 p. 63~64

 

 

 

자신의 존재를 믿게 하려고 직접 고사카의 기억을 읽어내 말하는 신지.

그런 신지를 완벽히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고사카.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신지의 어린 경솔함에 일은 틀어져 버리고, 결국 그렇게 어중간한 믿음을 가진 채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믿었던 어느 날 고사카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소년, 나오야.

그는 신지가 했던 모든 말들을 부정한다.

모두 거짓이라고, 초능력에 심취한 어린아이의 집요한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신지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진심이라고 느껴졌던 신지의 말과 하나하나 근거를 대며 신지의 말들을 부정하는 나오야의 말 중 고사카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과연 초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제대로 믿지도, 완벽히 외면하지도 못한 채 그들에게 끌리는 고사카는 과연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속마음, 속마음, 속마음의 홍수. 거기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능력을 컨트롤해야 할 뿐 아니라 자기감정까지 자제해야 한다. 속된 말로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가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전부 들린다면? 듣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듣지 않아야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과연 그 호기심을 완전히 억누를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방의 진심을 알게 되고 나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제2장 파문 p.144~145

 

 

 

일본 순정 만화 중에 'Only you'라는 작품이 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인데 남자 주인공이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초능력자이다.

그 초능력이 그에게는 재앙이었다.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밀려 들어온다.

다정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기만 한 속마음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추하고 탐욕스럽고 이중적인 인간의 마음을 읽을 때마다 그는 역겨움에 몸서리 치곤한다.

상대방이 감추고 있는 비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속의 어둠들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하는 그는 삶은 너무 불행했다.

웃고 있지만 사실은 비난하는 마음을 숨긴 사람들.

좋은 사람인 체 하지만 사실은 검은 탐욕으로 들끓는 마음은 감춘 사람들.

그런 속마음들을 다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은 초능력자에게도 없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결국에는 상처받고 마는 것이다.

신지와 나오야를 보면서 나는 그 만화 속 주인공의 고통을 다시 한 번 더 떠올렸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몰래 훔쳐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고 끌리는 일 일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그 속내가 궁금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하지만 속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알아서 좋을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속마음을 듣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듣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의 감추고 싶은 기억들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일은 얼마나 무례하고 고통스러운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그것은 너무 두려운 일일 것이다.

고사카의 말처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는 일이 결코 축복일 수 없다.

신지가 내 곁에 있다면, 나는 그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그가 읽게 될 나의 시간들이 두려워서 나는 그에게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신지는 내내 외로울 테다.

닿을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채로.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꼭 초능력자 일 필요도 없다.

단지 나와 다름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해받고 싶어 하는 그들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해주고 있는가.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들을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소수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을 대하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름'을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고 배척하거나 혐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기를.

결국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고사카의 그 마지막 대사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 중략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용을 믿고, 기도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부디 나를 지켜주세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내게 무서운 재앙이 닥치지 않게 되기를, 하면서요. 그리고 일단 그 용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게 고작이죠, 하지만 역시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가 없는 거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제5장 어둠 속에서 p.469~470

 

 

 

우리 안에는 또 어떤 우리가 잠들어 있을까.

깊은 잠에 빠진 그 용이 깨어나게 될 순간은 또 어떤 때일까.

나의 용은 어떤 모습으로 깨어나 나를 휘젓게 될까.

이미 병들거나 나약해져 있는 건 아닐까.

 

당신의 용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잠들어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통 너라는 계절 - 한가람 에세이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사랑하다 죽을 수도 있는 건가요.

사랑할 때 그 뜨거운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온통 너라는 계절』 _ 가득 차긴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음을. p.263

 

 

 

 

내게도 그런 계절이 있었다.

온통 '너'뿐이었던 계절.

'너'말고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던 계절.

'너'로 인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결국 혹독한 겨울도 견뎌야만 했던 시간.

당신의 지난 계절을 보면서, 나 또한 지나버린 계절들을 떠올리고는 했다.

나도 당신처럼 매번 데일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죽을 것처럼 절망스럽게 이별을 했다.

어쩌자고 내게 사랑은 매번 그렇게 뜨겁기만 했는지, 늘 사랑은 깊은 화흔을 남겼고, 늘 나는 사랑하는 일이 버겁고 아팠었다.

나무에 진 옹이처럼 곳곳에 남겨진 사랑의 흉터들은 이제는 나의 고유의 무늬가 되어버렸다.

그런 옹이가 있어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고 …… 믿고 싶다.

나무가 죽어 가구가 되고, 탁자가 되고, 기둥이 되어도, 옹이를 가져 더 아름다운 무엇이 될 거라고 믿으니까.

 

 

 

너는 나의 여름이었지. 너무 덥고 짜증이 났었는데 도무지 잊히지 않는. 내 생애 그런 여름은 오직 너뿐이었어. 더 이상 내 계절에 여름은 없어. 없어졌어. 네가 나의 유일한 여름. 헤어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던 나의 유일한 여름.

『온통 너라는 계절』 _ 여름의 미스터리. p109.

 

 

그녀의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함께 걸으며, 나 또한 나의 10대를, 20대를, 30대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있는 사랑의 흔적들.

지나버린 시간에 봉인당한 채 잊혀지고 있는 사랑의 시간들.

때로는 상처로,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망각으로 남겨진 지난 사랑의 조각들을 이어 붙어놓은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무심히 마음을 툭, 치고 지나곤 했다.

그녀가 건드려 놓은 마음결에서 툭툭 떨어지던 어떤 날의 나, 혹은 너, 아니면 그때의 우리.

이미 지나버린 사랑의 이름들.

그녀 덕분에 알았다.

그때의 죽을 것 같았던 상처들이 제법 잘 아물었다는 사실을.

무서워서 기억하는 것조차 꺼리던 사랑의 시간들이 이제는 나를 상처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게는 이제 정말 그 시간들이 잊혀진 계절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더 이상 사랑은 내게 언제 끝나버릴지 모를 두려움이 아니라, 끝까지 손을 잡아 줄 믿음직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너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한 기분이 든 적이 있었다.

갑자기 너무 슬퍼서 울음을 터트린 적도,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마음 한쪽이 찜찜했던 적도 있었다.

그게 다 균열.

너와 나의 마음 사이에 생기는 아주 작은 틈.

『온통 너라는 계절』 _ 틈. p142

 

나도 사랑을 할 때 참 예민한 사람이었나 보다.

설명할 수 없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그 틈을 기가 막히게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그녀처럼 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엉엉 울어버리고는 했다.

이 사랑이 끝날 것만 같아서, 기어코 이별은 정해져있는 것만 같아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는 했다.

그것은 불안.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불안.

나만 느끼는, 나에게만 전해지는 불안.

그녀가 말하는 그 균열을, 그 미세한 틈을, 나는 너무 예민하게 문지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미세한 틈이 메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당신의 바다에

당신의 쓰레기통에

당신의 책상 구석에

벌써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당신의 새로운 여자친구 앞에서

쓱 찢어버린 추억이 되어버렸는지

 

『온통 너라는 계절』 _ 당신이라서 모두 가능했다. p201

 

 

그녀가 잡아당긴 그리움에는 많은 것들이 묻어 있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표정, 그날의 감정,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 혹은 애틋함.

지나버린 것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남는다.

어떤 한 장면으로, 냄새로, 표정으로, 그날의 진실보다 그날의 감정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시간은 기어코 감정을 밑바닥까지 소진하게 만들고,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조차도 희미해져 버린다.

가끔은 그렇게 점멸하듯 희미하게 깜빡이는 기억들이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지나버린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사랑은 그래서 더 애틋하고 가엽다.

그런 사랑의 기억들이 우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그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감정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문득 그렇게 먼지가 수북이 쌓인 오래된 기억들을

한참, 바라보곤 한다.

 

 

 

그녀는 조금 부끄러워했다.

환한 대낮에 드러난 민낯의 민망함이랄까.

애써 감춰뒀던 여드름 자국이라든지, 감쪽같이 속였던 반쪽짜리 눈썹이랄지, 눈 밑의 거무죽죽한 다크서클 같은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부끄러움.

그녀의 솔직한 글들은 그녀에겐 바로 그 민낯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왕이면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을거다.

좋은 사람으로, 좀 더 멋진 사람으로, 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는 기억되고 싶어 하니까.

낯선 이들에게 민낯을 드러내는 일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실수를 사과하는 일도,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일도, 나의 서투름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일도 모두 참 어려운 일이다.

'지나간 사랑'에는 늘 그런 부족함과 낯 뜨거움이 후회와 미련만큼이나 많이도 담겨있다.

그럼에도 그 지나간 사랑의 민낯을 기꺼이 보여주는 그녀의 글.

그녀가 감추지 않고 드러낸 그 민낯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랑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게, 그 사랑의 기억이라는 게, 늘 아름답지만은 않으니까.

때로는 실수와 상처와 눈물을 간신히 기워놓은 누더기 같을 때가 더 많으니까.

가끔은 아름답게 빛나다가도, 서럽고, 가슴 아프고, 진절머리 날 때가 훨씬 많으니까.

사랑이라는 게,

이미 끝나버린 사랑이라는 게

결국, 그런 것일 테니.

 

 

 

 

 

그녀는 나와 닮았다.

모든 사랑이 다 같았을 리 없지만, 그녀의 감정의 색은 나의 색과 몹시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들이 기특하고 안쓰럽다.

내 지난 사랑이 기특하고 안쓰러운 것처럼.

나도 매일 사랑했고, 매일 실수했다.

매번 상처받았고, 매번 울었다.

어쩌면 그렇게 잘 넘어졌는지, 사랑의 '영원' 앞에서 늘 넘어지고 말았다.

내일을 꿈꿨지만 내 사랑엔 내일이 허락된 적이 없었다.

늘 안간힘을 쓰면서 사랑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에 '최선'은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끝끝내 사랑을 했다.

상처받으면서도, 내내 울면서도, 다시 사랑을 시작했다.

내가 제일 잘한 건,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녀처럼 나도 늘 끈질기게 누군가를 좋아했다.

나 또한 그런 시간들을 건너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랑에 상처받지 않는다.

사랑으로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 사랑 때문에 울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

아직은 여전히 사랑 때문에 울 것만 같은 그녀에게도

생의 끝에서도 손을 잡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기도해본다.

어쩌면 이미 그런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온통 너라는 계절.

그 계절의 페이지를 다시 한번 넘겨보게 만드는 책.

“아프지 말라고 종이 위에 문질러댄 위로”라는 그녀의 에세이가 지난 사랑에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가슴 또한 다정히 문질러 주기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veryday Winnie the Pooh - 곰돌이 푸, 31 데이즈 캘린더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글동글, 말랑말랑, 다정하고 귀여운 친구가 왔다!!!! >_<

 

꿀단지를 끼고 다니며 달콤한 향기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곰돌이 푸우.

괜히 보고만 있어도 푸근해지는 우리의 친구.

푸우를 매일 만나 보아요!!♡

 

 

 

 

 

31일 동안 내내 푸우와 다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일력이 나왔다. 두둥.

 

보자마자 미소가 지어지는 푸의 얼굴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

 

반갑다, 푸우야!

우쭈쭈~ 우리 곰탱이!!ㅋㅋ

 

 

 

 

날짜마다 귀여운 푸와 친구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모습과 캐릭터 덕분에 지루하지 않을 일력.

31일까지 모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푸우가 전해주는 말들이 은근히 철학적이라 다시 한번 곰곰이 곱씹게 된다.

만화 속 주인공들이 웃으면서 내뱉은 말들이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어서 놀라는 요즘이다.

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만화 친구들이 주인공인 책들이 출간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간단한 것 같지만 결고 가볍지 않은 인생의 진리들.

때론 너무 무겁고 깊고 현란한 단어들로 포장된 말들이 버거워진다.

이미 우리 삶은 너무 많은 말들과 지나친 고민과 과도한 포장으로 무거워져 있다.

단순해지고 싶고, 가벼워지고 싶다.

 

간결한 말속에 담긴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가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양이다.

 

 

 

 

 

 

정말 너무 귀여워서 비명을 지르게 만든 식사 중과 출장 중.ㅎㅎ

(휴가 중은 직접 확인하시는 걸로!)

 

편집자님 센스가 우주 최강인 걸로!!!!!

엄지 척!!!!!^^

 

 

 

 

 

스티커도 두 장 함께 있어서 ㅎㅎ 새로운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주는 푸우 일력.

재미도 감동도 다정함도 놓치지 않았다.ㅎ

제일 많은 건... 역시 귀여움!!!! >_<

넘친다, 넘쳐~!!

 

 

 

2019년,

하루에 1분쯤은 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 같다.

그 1분의 위로가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닐 것만 같은 기분.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반드시 배신을 하는 존재다. 나를 포함해서."


어두운 가정환경 속에서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다쿠야.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임원실 직원인 야스코에게 접근하여 내연 관계가 된 그는 전무의 정보를 얻어내어 전무 딸과 결혼할 기회를 얻는다. 어느 날, 야스코의 임신 소식을 듣고 초조해하던 다쿠야는 뜻밖의 호출을 받게 되고, 자신의 처치와 같은 두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의 아버지일지도 모를 세 남자는 야스코가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여 '릴레이 살인'을 모의한다. 오사카에서 야스코를 죽이고 도쿄까지 그녀의 시체를 릴레이 하듯 운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쿠야가 전달받은 시체는 야스코가 아니었는데 ….

 

 


"완벽한 성공에 마음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책 뒷면 소개 글 >

 

 

 

다쿠야는 성공하기를 갈망하는 남자다.
좀 더 높은 곳으로, 바닥의 인생을 버리고 상류층의 인생으로 편입되고 싶어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나시나 가문의 딸 호시코의 비위를 맞추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보다 더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바로 그 갈망이 그를 이 살인 릴레이의 일부가 되게 만든다.

임원실 여직원이었던 야스코.
그녀는 그에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정보를 가져다줄 발판이었다.
그렇게 정보를 주고받던 그들은 어느 사이 몸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감정이 아닌 쾌락을 위해 서로를 갈구하던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겨버렸다.
끝까지 아이를 낳겠다는 야스코.
다쿠야는 고민한다.

바로 그때, 나시나 가문의 장남인 나오키가 그를 호출한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사위 후보인 하시모토가 함께 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야스코의 남자였다.
그들 중 한 명은 야스코의 뱃속 아이의 아버지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야스코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자 이제 살인 릴레이가 시작된다.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줄 그들의 주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체를 옮겨 싣던 그 순간 다쿠야와 하시모토는 공황 속에 빠져버린다.
이 시체는 야스코가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의 계획은? 이 시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뜻밖의 시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자,
좁혀오는 경찰의 수사망.
공모자들은 불안에 떤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처음부터 살인자를 알려주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인자가 무사히 살인을 끝마칠 수 있도록 응원하며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살인 릴레이가 시작되는 순간 함정에 빠지고 만다.

살인 모의에 동의한 순간, 그리고 시체를 운반하는 시점부터 다쿠야는 분명 살인자였다.
하지만 계획이 어긋나고, 살인자였던 그가 피해자의 길로 내몰리는 순간, 독자는 의아해진다.
그는 살인자인가 살해 위협을 받는 피해자인가.
진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 거지?
정답을 알고 시작한 줄 알았지만, 우리는 오답지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속임수로 우리를 속인 인물은 누구였을까.

 

 

 

자신의 패를 까보이고 시작하는 작가의 당당함에 의구심이 들었었다.
되려 그 솔직함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면서, 범인은 너냐? 자꾸만 묻게 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미스터리물에서 범인이 중요치 않다니.
망언인 것 같지만, 이 책이 꼭 그렇다.

이 책에서 보아야 할 것은 범인의 정체가 아닌 것만 같다.
로봇처럼 차가운 두뇌만을 가진 이들.
권력과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
그들이 1%의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
그 1%의 삶을 좇기 위해 망가져가는 인간적인 마음들. 그렇게 무너져버린 인간의 최후.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책 속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인간적인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티브이 속, SNS 상에서 보여지는 화려하고 빛나는 삶을 동경하느라 정작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차가워져가는 심장을 다시 데워야겠다고 문득 생각하게 된다.

결핍은 우리를 더 성장하게 하지만, 자꾸만 우리의 온도를 떨어트려 차가워지게 만든다.
빛나는 두뇌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지만, 뜨거운 심장 또한 반드시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마음을 잃은 똑똑함은 로봇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지 않나.

 

 

'트릭을 독자에게 먼저 알려주고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 도서형 추리소설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결정짓는 원형과도 같은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1989년에 발표되었다.
발표 시기를 꼭 유념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CCTV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할 만큼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불가능한 소설이니까.
올드 한 추리소설의 매력을 흠씬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CCTV 때문에 요즘 추리소설은 참 피곤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ㅋㅋ
과학의 빛나는 발전이 추리 소설의 발목을 잡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