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을 홍 세트 - 전3권
김정화 지음 / 청어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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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집이 욕망한 것은 생(生)이다.

2권/166p

 

 

 

「조선의 맨 밑바닥, 기생 중에서도 천하디천한 창기(娼妓)」

「조선의 맨 꼭대기, 사대부 중의 사대부라는 귀한 공자(公子)」

 

 

조선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의 나라에서,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가장 낮은 곳의 여인과 너무 높은 곳의 도령이 하필이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저 적당히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도도했던 두 사람은 끝없이 부딪히는 수많은 벽과 경계를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경계와 규범을 깨트리고 싶었다.

사랑하였으므로.

 

 

하필이면 조선 땅에 여자로, 가난한 양인으로, 결국에는 창기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여인 홍은 다른 세상을 꿈꿨다.

하얗게 폭설로 뒤덮인 겨울의 어느 날 마주친 한 사내로 인해, 그녀는 신분이 없는 세상을 꿈꿨고, 스스럼없이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 사내 앞에 오직 홍으로, 그 무엇도 아닌 여인 '홍'으로 마주 서고 싶었기에.

 

사내는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룰 자유를 갖지 못했다.

높은 신분에 많은 재산을 지녔지만, 꿈은 좌절되고, 숨 막히게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어머니를 견딜 수 없었다.

중전의 남동생이라는 자리는 꿈을 잃게 했고, 독단적인 어머니의 사랑은 그를 삐뚤어지게 했다.

그렇게 전주로 쫓겨내려온 사내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여인, 홍.

하지만 그녀는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파는 창기가 될 동기였다.

참을 수 없게 가지고 싶었지만, 하찮은 계집은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양에서 수많은 기방을 들락거리며 난봉꾼으로 살았던 사내는 처음으로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욕망일까, 연모일까.

 

 

 

 

 제가 팔려 온 곳이 하필 기방이라는 것 따위 상관없었다. 월야관이 창기나 다름없는 은근짜들의 기방이라는 것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홍, 자신이 제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잔혹한 사실이었다.

1권. 195페이지

 

 

 

가장 낮은 신분을 가진 여인, 홍은, 누구보다 뜨겁게 생을 소망했다.

무엇도 뜻대로 할 수 없고, 누구에게든 짓밟히는 천한 생이 아닌, 귀하고 귀한 생을 원했다.

높아지는 것이 아닌, 다 같이 평등해지는 생을 간절히 원했다.

조선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뜬구름 같은 꿈을 잡으려 했다.

 

귀천이 없는 세상.

그것은 감히 조선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내뱉는 것조차 죄가 되고 마는 위험한 욕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내에게 말한다.

내가 천한 신분인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신이 천해 질 수는 없는 거냐고.

당신과 내가 다를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나는 내가 귀하다고. 당신이 귀한 것처럼.

 

사내는 그녀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사대부로써 살아온 삶으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 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그녀로 인해 꾸게 된다.

그녀와 함께 하는 세상에는 반드시 자신도 그녀도 지금의 굴레를 벗어던져야만 했으므로.

 

부서지고 깨지고 구르면서,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그 앞에 무엇이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지 알지도 못한 채 오직 사랑만을 믿고 나아간다.

홍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기 위해.

 

 

 

 

 

이 책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1권과 2권은 『독을 품은 꽃』이라는 명제로 묶여있고, 3권은 『콩쥐팥쥐 잔혹사』라는 독특한 소제목을 달고 있다.

갑자기 콩쥐 팥쥐 잔혹사가 왜 튀어나오나, 나처럼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루어 짐작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3권에는 콩쥐 팥쥐의 이야기가 비틀려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콩쥐팥쥐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1권과 2권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담고 있는 두 권의 책은, 두 인물의 내밀한 심리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끊임없는 생각과 가치관의 충돌, 서로를 향한, 혹은 생을 향한 갈망과 욕망, 그리고 숨겨지지 않는 사랑.

그런 생각과 고민들로 가득 채워진 1, 2권은 읽고 있노라면, 3권이 혹시 생뚱맞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슬며시 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3권에서 비로소 사건과 사건이 만나고, 음모와 진실이 밝혀지는 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게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외따로 떨어지지 않고, 이질적으로 겉돌지 않으면서, 우리가 알던 콩쥐 팥쥐 이야기는 기묘하게 비틀린다.

왜 3권만 소제목이 다른 건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글의 내용이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분명히 다른 이야기였었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더라는 말씀.

1,2권과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3권이었다.

 

 

 

 

 

굉장히 공들여 잘 쓰인 글이라는 것이 문장마다 느껴지는 글이었다.

시대물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문체나, 풍경의 묘사 같은 것들이 읽으면서 참 좋구나 싶었다.

눈앞에 그 겨울이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한옥에 앉아 겨울 눈이 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아마도 여주인공인 홍이 아니었을까.

현대에서도 가장 극렬하게 페미니즘을 외칠 것 같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것 같은 그녀는 사실 조선시대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생각과 사상이 조선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라 마치 현대의 인물을 조선 시대의 가장 낮은 계급에 구겨 넣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경험조차 해보지 않은 자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했던 시대라 남들은 높아지기를 원할 때, 그녀는 같아지기를, 모두 함께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자유와 평등,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과연 담장 너머도 꿈꾸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여인에게도 그런 당연함이 주어졌을까.

 

물론 그 시대에도 분명 그런 꿈을 꾸었던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처럼 선명하고 정확하게 시대의 틀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마치 잔다르크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칼을 뽑아들고, 오직 자신의 생을 위해서 기어코 그것을 쟁취해 내고야 마는 스스로를 위한 잔다르크.

 

 

시대의 흐름을 드라마도 영화도 반영한다.

남자에게 더 이상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의 걸음으로 삶을 쟁취해내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 덕분에 행복해졌지만, 뮬란은 스스로 칼을 들고 싸워 행복을 이뤄냈다.

2019년판 알라딘의 자스민은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다짐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른다.

가장 꽉 막힌, 여자들에게 가장 가혹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쓴 로맨스 소설에서도 이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이 당연해지는 시대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뭐 어떤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여자들의 삶의 행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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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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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예쁜 단어를 골라

예쁜 칭찬을 하고

예쁜 밤을 만들 것

결혼에 대하여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하고

좋은 집을 갖는 것

 

나 그게 어려워

 

< 문문 - '결혼' _ 가사 中 일부>

 

 

 

가수 문문의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결혼이 어렵다는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공감이 되었다.

내가 이미 결혼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혼은 현실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하고 예쁜 단어를 골라 예쁜 칭찬을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인 연인들도 사실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 경우가 드물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도 어렵고, 좋은 사랑을 하는 일은 더더욱이 어렵다.

그저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랑 안에서 예쁜 단어를 골라 칭찬을 하는 일도 그리 쉽지가 않다.

타박하고 원망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결혼은 아름답지도 영원하지 않다.

결혼은 꿈과 사랑을 이뤄주는 네버랜드가 아니다.

그저 현실이고 일상일 뿐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이해해야만 간신히 유지되는 복잡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줄에서 내려선다.

맨바닥으로 추락하기 전에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줄에서 내려서는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영원히 함께 하기를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저버렸다고 그들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결혼에 상처받은 사람들.

결혼에 지친 사람들.

결혼에 질린 사람들.

 

그 사람들이 찾아가는 사람.

이혼 전문 변호사 최유나.

 

그녀가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슬픔에 대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혼한 이들의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결혼하면 불행해질 거라는 뜻이 아니다.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지만, 그 행복을 얻으려면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 그러니까, '각오하라'는 말 아닐까.

 

P.313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결혼을 왜 하냐? 그냥 혼자 살아. 이제와서 피곤하게 뭐하러...'라고 말하는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가장 웃기는 건, 내가 아주 평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다.

누가 봐도 사이좋아 보이는 부부인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묻는다.

'넌 결혼해서 행복한 거 아니었어?'

맞다. 행복하다.

연애라는 불안정한 관계를 너무 힘들어했던 나에게는 결혼이라는 안정된 관계가 너무너무 찰떡처럼 잘 맞으니까.

더 이상 감정의 일렁거림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온전한 내 편이 생겼다는 안도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말 결혼이 모두에게 좋은 제도일까.

나처럼 감정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좀 더 단단한 결속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전히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 생활에서 더 많은 희생을 강요 당하는 것은 여자다.

물론 돈을 버는, 더럽고 치사한 밥벌이가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이해한다.

가장으로서의 부담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부채감이 얼마나 큰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요즘엔 여자들도 남자들 만큼이나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가사에서 여전히 여자들이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희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발적인 경우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스스로의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인내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제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물론 오로지 '결혼'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외도, 폭력, 폭언 같은 너무 명백한 이혼 사유도 많다.

그렇지만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사람들 중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 또한 많아 보인다.

게다가 당사자가 아닌 그의 가족들 때문에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장인, 장모 때문에, 시부모님 때문에, 시댁 식구들 때문에, 결혼이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결혼이라는 제도 때문에 갑자기 가족이 된 사람들의 선을 넘는 참견 때문에.

 

어렵다.

결혼을 하기도 어렵지만, 지켜내기도 참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몇십 년 동안 지키고 지키다가 70세가 되어서 이혼을 하기도 한다.

지금의 70대는 그러니까 너무 서럽고 힘든 결혼생활을 견디신 분들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그래도 참아야만 하는 세월이었으니까, 너도 나도 다 그렇게 참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고야 말았다.

참는 게 미덕인 줄 알았던 시대는 이제 지고 없다.

맞으면서 참고, 외도를 알면서도 눈 감고, 무시와 폭언도 일상인 듯 참아내던 그 어머니들이 더 이상 참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 가슴에 맺힌 한을, 응어리를 이제라도 토해내고 싶은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연들 중에 의외의 이야기도 있었다.

(외)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다가 부부 중 한 명의 사망으로 인해 아이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경우다.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깊이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혼자 남은 며느리나 사위의 입장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도 할머니나 외할머니의 마음 또한 알 것만 같아서 애잔해졌다.

 

남남이 결혼으로 가족이 되었다가, 가족에서 다시 남남이 되는 일.

그 일이 참 어렵고 또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이혼을 권장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이혼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좀 더 똑바로 이혼의 얼굴을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이혼까지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의 존재감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불편하게 걸었던 길을 멈추는 현명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혼이 때로는 더 옳은 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이혼이 실패의 경험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실패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상처와 치유의 영역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해 본다.

결혼을 선택한 마음들이 그렇게 가볍지 않았을 텐데 그 마음을 다시 뜯어내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책을 읽으며 이혼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너무 명백한 이혼 사유가 아닌 경우, 나도 모르게 '좀 더 참아보지', '좀 더 이해해보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남의 인생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바라본 적이 있었다.

특히나 1~2년 안에 이혼한 사람들이 주위에 늘어날수록 자꾸만 그런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혼전문 변호사가 들려주는 이혼 이야기들은 무겁기만 하다.

나는 알 수 없던 그들의 속 이야기, 그 속마음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들어있어서 '이혼'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모두들 행복해지고 싶은 것뿐이다.

그 결혼이 행복의 열쇠라고 믿었지만, 내 행복의 열쇠가 아니었던 것뿐이다.

행복하겠다고 새로운 열쇠를 찾는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행복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니까.

 

 

 

"너의 삶은 너의 선택만이 정답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던 명대사이다. 이 대사가 약간은 충격적으로 들렸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내가 선택하는 삶이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듣고 살지 않았을까?

 

P.283

 

 

 

 

 

결혼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어차피 어려운 일이다.

타인과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내겠다는 결심을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많은 부부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변덕스러운 감정을 지닌 우리가 사랑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

나와는 다른 가치관과 생활 습관을 가진 사람과 한 공간에게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몇 십 년 동안 남이었던 사람들을 가족으로 품는 일,

무엇 하나 결혼이라는 이름 아래 쉬운 게 없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넘어지고 구르고 다치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한 결혼을 통해서만 느끼고 깨닫게 되는 어떤 것들이 있다.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사위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빠와 엄마가 되어야만 겪을 수 있는 마음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한다.

결혼으로 알게 될 진실들, 새롭게 발견하게 될 깨우침들, 모르고 살았던 마음들.

그렇게 한 뼘 한 뼘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남과 손을 잡고 가족이 된다.

 

결혼은 옳다.

이혼도... 옳다.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불행해지기 위해 결혼을 하고, 불행해지기 위해 이혼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당신의 선택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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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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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지식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착각에서 시작해 다양하게 문답을 나누고 음미해나가는 중에 차츰 수정되는 것이다. 철학의 역할은 착각을 타파하고 더욱 커다란 사고로 고양시켜가는 방식을 제공하는 데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20. 헤겔 _ 절대적 관념론

 

 

 

 

철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려움을 먼저 호소하지 않을까.

내게도 역시 철학은 어쩐지 조금 어렵고 난해한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들여다 보고 싶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것만 같고, 내 그릇의 한계를 되려 먼저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지레 뒷걸음질 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철학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가깝게 철학이라는 학문에 손 닿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좀더 쉽게 적히고 쉽게 읽히는 즐거운 철학책.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다.

많은 철학 용어와 정의가 나오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다.

되려 어디선가 들어 본 단어들의 등장에 놀라게 된다.

나는 철학과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가까이 철학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했다.

 

한 권의 책으로 철학을 통달하기엔 너무 방대하게 넓고 한없이 깊은 학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읽는 순간 최대한 많은 사유와 고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쉽게 쓰였다고 그 의미까지 쉬운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 한마디 말이 가지는 무게와 깊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철학은 고민과 사유의 문학이라고 믿으니까.

 

 

 

 

이 책은 철학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누구라도 이름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부터 처음 듣는 듯 낯선 현대의 철학자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철학의 길,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없이 부서지고 다시 재정립되는 철학의 다양한 의미들을 잘 정리해 보여준다.

한 학파의 주장만을 연구하고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다양성과 하나의 절대적 진실로는 메워지지 않을 허기를, 다양한 학파의 다양한 주장과 생각들로 가득 채워 '다채롭게 빛나는 철학'을 맛보여주었다.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었던가.

 

물론 학문으로써의 철학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

어려운 철학 용어들과 철학의 여러 갈래의 특징들을 기억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책 속의 지식들, 철학을 알고 있노라 입밖에 내고 싶을때 사용해야 할 철학의 정의와 명칭들, 그런 것들이 중요할까.

그것을 취하려 했다면 수험생처럼 열심히 외우는데 치중했을것이다.

왜를 묻지 않고,

그들이 알려주는 여러 사유의 방식들을 고민해보지 않고,

그저 '지식'만.

 

물론 이 책은 철학이 지니온 길을 보다 쉽고 빠르게 이해시켜주기 위해 존재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 속에서 발견하는 철학의 다양한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

그 얼굴 속에서 내 얼굴을 발견 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이해하는 방법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의 어떤 얼굴을 분명히 마주했다고 말하고 싶다.

 

 

 

 

 

잘 살펴보면 상대주의는 개인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늘날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가 정한 기준들보다 그들이 직접 느끼는 진실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진실보다 자기 내면의 쾌적함을 중시한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주위에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며 젊은이를 야단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없는가? 사실 그리스시대에도 '사람은 다 제각각이라는 생각은 좋지 않아'라고 청소년들에게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른이 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20. 소크라테스 _ 윤리적 주지주의

 

 

 

 

지금의 사고로 해석하고 바라본 오래전 철학의 얼굴들은 놀랍게도 그 오랜 시간을 지나 현재의 모습과 닮아있다.

완벽히 같거나 완벽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오랜 시간동안 전혀 녹슬지 않고 바래지 않은 채 우리곁에 있다.

마치 지금 탄생한 새로운 얼굴인 것 마냥, 젊고 싱싱하다.

생을 다하고 사라져버린 재가 아닌 여전히 끝없이 불타오르는 불꽃으로 존재한다.

그 점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너무 오래되어 낡아버린 생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여전히 그 철학적 사유들에 공감하게 되고 고개 끄덕이게 된다.

이미 뒤집어져 재정립된 사상마저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철학적 옳음에 오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오류 때문에 완전해지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여전히 철학적 의문을 가진채 끝없이 사유하고 고민하고 완전해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다.

그 몸부림의 과정 중에 새로운 철학적 주장이 생성되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새로운 철학적 인류가 탄생된다.

우리는 그 오류를 통해, 그 완전하지 않음을 통해,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신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절대적 존재라고 믿었던 신이나 자연보다도, 철학적 사유의 증거들이, 그들의 외침이 더 오래 우리 곁에 살아남는 건 아닐런지...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왜 옳은지를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재판관과 피고가 동일 인물인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옳다고 지적하는 것도 자신이라면, 그것은 독선적인 옳음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이 객관을 올바로 포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주관의 입장에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주관을 객관에 적중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92. 데카르트 _ 방법적 회의

 

 

 

 

당신에게도 이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진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어긋나버리는 경우는 일상다반사다.

자신이 논리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다른 결론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각각 자신의 생각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은 여기에 이성의 속임수가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진리란 그것 없이는 어느 특정한 종의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오류다.

- 《유고 Ⅱ, 8.306》

결국 우리가 뭔가를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전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단지 그것을 믿고 있으면 살아가기 편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174. 니체 _ 힘에의 의지

 

 

 

 

 

 

끊임없는 반증을 통해 철학은 발전되어 왔다.

그 철학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끊없이 질문 해야만 한다.

왜냐고.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달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 모든 곳에 철학이 있고, 우리의 생각 대부분이 철학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았다.

대단한 지식인들의 소유물이지도 않았다.

우리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철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내가 오늘 했던 생각, 사소한 행동들도 철학의 한 형태였다.

가까이 있는 철학.

내 일상의 철학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다.

 

철학은 별게 아니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삶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삶 속에서 누구나 다 철학자인 것이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철학자가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의 긴 흐름을 짧은 시간 이해하고 싶은 사람.

철학이 어떻게 발전해오고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한번에 알고 싶은 사람.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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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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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바뀐 완벽한 엄마들의 단 하룻밤 일탈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생후 6주 된 아기가 사라졌다

 

두 달 전 아기를 낳고 모임 '맘동네'에 가입한 초짜 엄마들,

한순간도 쉴 수 없는 고된 육아에 시달리던 엄마들은 기분 전환을 위해 아기를 맡기고 잠시 외출하기로 한다.

그날 밤, 베이비시터가 잠든 사이 싱글맘 위니의 아기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20년 전 TV 드라마의 하이틴 스타였던 위니의 과거와 그날 밤 엄마들이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납치 사건은 뉴욕 전역을 뜨겁게 달구는데 …

그리고, '자격 없는 엄마들'이란 꼬리표를 단 악몽이 시작되었다.

 

<책 뒤표지 소개글 >

 

 

 

 

 

이 책은 스릴러다.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들은 범인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아이는 유괴당했고, 시간은 흘러간다.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유괴범은 누구인지 무엇도 알 수가 없다.

스스로의 기억마저 혼란스러워하고, 감추고 싶은 개인적인 비밀 때문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면서 인물들은 사건을 더 미궁 속에 빠트리는 역할을 한다.

프랜시, 콜레트, 넬, 이 세 명의 초보 엄마들은 익숙하지 않은 '엄마' 역할을 하기에도 벅차면서, 아이를 잃어버린 위니의 비통함을 알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무엇보다도 아기 '마이더스'의 생존을 굳게 믿고 싶기에, 조급함과 불안한 마음이 육아로 지친 그녀들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집착적으로 사건에 매달리게 되는 그녀들.

과연 그녀들은 유괴범을 잡고, 마이더스를 엄마 품으로 돌려줄 수 있을까.

 

스토리만 보자면 이 책은 완벽한 스릴러 소설이 맞다.

그에 걸맞은 짜릿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상상하지 못한 인물이 주는 쾌락.

추리, 스릴러 소설의 즐거움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이 스릴러보다 르포나 사회소설의 영역에 발 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내가 그런 초보 엄마의 시간을 뼈아프게 겪으며 자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것 아니냐는 너무 폭력적인 생각을 나도 어렸을 때는 했던 것 같다.

모성애는 원래부터 존재하는 당연한 성품이라 여겼다.

무엇을 포기하면서, 어떤 감정들과 싸우면서, 얼마나 많은 인내와 좌절과 실망과 분노를 거쳐 엄마가 되어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내가 건너온 15년의 시간들.

그리고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그녀들.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스릴러의 쫄깃함보다 연민과 안쓰러움을 먼저 느꼈다.

내 시간이 파괴되고 내 생활이 엉망으로 뒤엉켜,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오로지 잠들고 싶었던 시간들.

그럼에도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투쟁의 순간들.

그 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나의 민 낯, 인내심 없고 히스테릭한 스스로를 견뎌내야 했던 순간의 실망들.

그러니까 그 시간들은 자신과의 투쟁이기도 하고,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고, '나'를 버리고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산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간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들의 히스테릭과 불안과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여자들의 심리, 불안, 공포, 거기에 더해진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존재.

심지어 그 원인이 된 자리에 함께 있었던 그녀들은 더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은 끝끝내 유괴범을 추적해나가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녀들은 가장 연약한 순간, 가장 아픈 상처들을 다시 마주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지긋지긋한 시선, 시선, 시선.

손쉬운 질타와 예의 없는 힐난들.

매스컴의 악영향 또한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의 진짜 얼굴은 바로 이런 사회의 그릇된 시선이 아닐까.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화두 또한 유괴보다도 바로 이런 사회의 비난들일 테니까 말이다.

 

 

 

엄마는 성녀가 아니다.

엄마는 그저 한 명의 여자일 뿐이다.

좋은 엄마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폭력의 시선을 견디고 있었던 걸까.

 

모성애라는 말로 우리를 더이상 억압하지 않기를.

아이와 함께 나눈 감정과 시간이 우리를 엄마로 이끌어주는 것이지, 타인의 잣대가 우리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는 건 아니니까.

 

나는 좋은 엄마말고,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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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안아주듯 나를 안았다
흔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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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를 사랑할 차례입니다."

 

 

요즘의 화두는 '나'인 것 같다.

늘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 속에서 튀지 않고 적당히 섞이며 살아가는 것을 강조했던 시대가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위하느라 정작 나는 늘 뒷전이었던, 우리 부모님의 시대.

누구의 자식으로, 누구의 형제로, 누구의 부모로, 어딘가의 일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던 그 시절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분들은 '나'를 제대로 사랑할 시간이 있었을까.

늘 누군가를 위해 물러서고 배려하고 희생하면서 스스로를 얼마나 아낄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참 고마운 시대에 우리가 태어난 모양이다.

우리들은 '나'를 찾는 여정에 좀 더 쉽게 걸음 옮길 수 있으니까.

타인의 눈보다 나의 감정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한국의 정서 속에는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있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처럼 여겨지고, 면전에 대고 NO를 외치기가 껄끄럽고, 남들이 '네'라고 할 때 '아니오'를 말하는 걸 머뭇거리게 되는 한국적인 분위기.

배려와 겸손을 최고의 미덕이라 칭하던 시대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여전히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남을 위하느라 소비한 시간만큼 나를 위하고 나를 아끼며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상처의 말들은 너무 쉽게 내뱉어져 서로를 할퀴고, 누군가의 인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예의고 배려고 다 내던지고 '악'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모든 상처와 무례를 참는 것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때로 상처를 넘어 모욕도 참아내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어진 관계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나를 상처 내고, 내가 곪아가면서까지 유지하고 껴안아야 하는 관계라는 게 존재할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를 위해서, 나를 기꺼이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겠다.

누군가를 위해 힘껏 참아준 시간들을 이제는 나를 껴안아주는데 힘껏 사용해야겠다.

 

 

'우리가 실패라 부르는 것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십 대에게 가장 필요할 것 같은 책인데 반대로 이십 대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을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내내 힘을 빼라고 말한다.

불행도 좌절도 실패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몸에 힘을 주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울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더 심하게 넘어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천천히 하고 그 모든 것들에서 떠오르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사실, 인생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있는 나이가 이십 대가 아닐까?

힘을 빼는 법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이 넘치는 시절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 보는 나이도 이십 대가 유일하고, 세상과 맞서서 이길 수 있다는 의지가 가장 활활 타오를 때도 이십 대일 테니까.

십 대에는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를 더 크게 부풀리느라 바쁘다.

스스로의 진짜 부피를 가늠할 수 없어서 젠체하느라 바쁘거나 고독한 아웃사이더인척하느라 바쁘다.

실제의 나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거나 훨씬 더 절망적이기 쉽다.

그렇게 우리는 이십 대가 된다.

그리고 이십 대를 보내는 동안, 공기로 가득 찬 가짜 몸피가 여기저기에 부딪혀 툭툭 터지고 진짜 우리의 부피가 세상에 얼마를 차지하는지 알게 된다.

그 낯설고 낯 뜨거운 부끄러움을, 알몸으로 내던져진듯한 창백한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한 귀띔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울 때 누군가가 걸어간 길 위의 흔적이 안도를 안겨준다.

그 시절을 벗어난 누군가의 뒷모습,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흔들림,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동질감이 우리를 안심하게 만든다.

책이, 때론 그런 안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십 대에게 가장 이 책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 책 속의 조언이 이십 대에게 가장 어울리는지는 미지수지만.

하지만 책 속에서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만난 이십 대의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울림을 선물해 줄 책이 되어줄 것 같다.

내게도 이십 대에 그런 책이 있었으니까.

이미 세상과의 끝없는 타협과 포기에 지친 삼십 대나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좌절과 실패를 건너는 방법을 익힌 사십 대에게는 자칫 알고 있는 것들의 나열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들을 담고 있는 책이었지만, 곧 사십이 되는 나에게는 가슴을 시큰하게 울리는 문장은 없었다.

특히나 에세이는 공감을 크게 느끼는 각각의 나이대가 있는 것 같다.

책과 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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