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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안아주듯 나를 안았다
흔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평점 :

"이제는 나를 사랑할 차례입니다."
요즘의 화두는 '나'인 것 같다.
늘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 속에서 튀지 않고 적당히 섞이며 살아가는 것을 강조했던 시대가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위하느라 정작 나는 늘 뒷전이었던, 우리 부모님의 시대.
누구의 자식으로, 누구의 형제로, 누구의 부모로, 어딘가의 일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던 그 시절의 부모님이 생각난다.
그분들은 '나'를 제대로 사랑할 시간이 있었을까.
늘 누군가를 위해 물러서고 배려하고 희생하면서 스스로를 얼마나 아낄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참 고마운 시대에 우리가 태어난 모양이다.
우리들은 '나'를 찾는 여정에 좀 더 쉽게 걸음 옮길 수 있으니까.
타인의 눈보다 나의 감정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한국의 정서 속에는 여전히 그런 문화가 남아있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처럼 여겨지고, 면전에 대고 NO를 외치기가 껄끄럽고, 남들이 '네'라고 할 때 '아니오'를 말하는 걸 머뭇거리게 되는 한국적인 분위기.
배려와 겸손을 최고의 미덕이라 칭하던 시대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여전히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남을 위하느라 소비한 시간만큼 나를 위하고 나를 아끼며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상처의 말들은 너무 쉽게 내뱉어져 서로를 할퀴고, 누군가의 인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예의고 배려고 다 내던지고 '악'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모든 상처와 무례를 참는 것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때로 상처를 넘어 모욕도 참아내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어진 관계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나를 상처 내고, 내가 곪아가면서까지 유지하고 껴안아야 하는 관계라는 게 존재할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를 위해서, 나를 기꺼이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야겠다.
누군가를 위해 힘껏 참아준 시간들을 이제는 나를 껴안아주는데 힘껏 사용해야겠다.

'우리가 실패라 부르는 것은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십 대에게 가장 필요할 것 같은 책인데 반대로 이십 대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을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내내 힘을 빼라고 말한다.
불행도 좌절도 실패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몸에 힘을 주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울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더 심하게 넘어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천천히 하고 그 모든 것들에서 떠오르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사실, 인생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있는 나이가 이십 대가 아닐까?
힘을 빼는 법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이 넘치는 시절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 보는 나이도 이십 대가 유일하고, 세상과 맞서서 이길 수 있다는 의지가 가장 활활 타오를 때도 이십 대일 테니까.
십 대에는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를 더 크게 부풀리느라 바쁘다.
스스로의 진짜 부피를 가늠할 수 없어서 젠체하느라 바쁘거나 고독한 아웃사이더인척하느라 바쁘다.
실제의 나보다 훨씬 더 희망적이거나 훨씬 더 절망적이기 쉽다.
그렇게 우리는 이십 대가 된다.
그리고 이십 대를 보내는 동안, 공기로 가득 찬 가짜 몸피가 여기저기에 부딪혀 툭툭 터지고 진짜 우리의 부피가 세상에 얼마를 차지하는지 알게 된다.
그 낯설고 낯 뜨거운 부끄러움을, 알몸으로 내던져진듯한 창백한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한 귀띔이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두려울 때 누군가가 걸어간 길 위의 흔적이 안도를 안겨준다.
그 시절을 벗어난 누군가의 뒷모습,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흔들림,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는 동질감이 우리를 안심하게 만든다.
책이, 때론 그런 안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십 대에게 가장 이 책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 책 속의 조언이 이십 대에게 가장 어울리는지는 미지수지만.
하지만 책 속에서 마음을 흔드는 문장을 만난 이십 대의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울림을 선물해 줄 책이 되어줄 것 같다.
내게도 이십 대에 그런 책이 있었으니까.
이미 세상과의 끝없는 타협과 포기에 지친 삼십 대나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좌절과 실패를 건너는 방법을 익힌 사십 대에게는 자칫 알고 있는 것들의 나열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들을 담고 있는 책이었지만, 곧 사십이 되는 나에게는 가슴을 시큰하게 울리는 문장은 없었다.
특히나 에세이는 공감을 크게 느끼는 각각의 나이대가 있는 것 같다.
책과 나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