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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 쉽게 읽고 깊게 사유하는 지혜로운 시간 ㅣ 하룻밤 시리즈
토마스 아키나리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9월
평점 :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지식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착각에서 시작해 다양하게 문답을 나누고 음미해나가는 중에 차츰 수정되는 것이다. 철학의 역할은 착각을 타파하고 더욱 커다란 사고로 고양시켜가는 방식을 제공하는 데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20. 헤겔 _ 절대적 관념론
철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려움을 먼저 호소하지 않을까.
내게도 역시 철학은 어쩐지 조금 어렵고 난해한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들여다 보고 싶지만 이해하기 어려울 것만 같고, 내 그릇의 한계를 되려 먼저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지레 뒷걸음질 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철학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가깝게 철학이라는 학문에 손 닿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좀더 쉽게 적히고 쉽게 읽히는 즐거운 철학책.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다.
많은 철학 용어와 정의가 나오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다.
되려 어디선가 들어 본 단어들의 등장에 놀라게 된다.
나는 철학과 멀리 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가까이 철학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했다.
한 권의 책으로 철학을 통달하기엔 너무 방대하게 넓고 한없이 깊은 학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읽는 순간 최대한 많은 사유와 고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쉽게 쓰였다고 그 의미까지 쉬운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 한마디 말이 가지는 무게와 깊이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철학은 고민과 사유의 문학이라고 믿으니까.


이 책은 철학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누구라도 이름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부터 처음 듣는 듯 낯선 현대의 철학자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철학의 길,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없이 부서지고 다시 재정립되는 철학의 다양한 의미들을 잘 정리해 보여준다.
한 학파의 주장만을 연구하고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다양성과 하나의 절대적 진실로는 메워지지 않을 허기를, 다양한 학파의 다양한 주장과 생각들로 가득 채워 '다채롭게 빛나는 철학'을 맛보여주었다.
철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학문이었던가.
물론 학문으로써의 철학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
어려운 철학 용어들과 철학의 여러 갈래의 특징들을 기억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책 속의 지식들, 철학을 알고 있노라 입밖에 내고 싶을때 사용해야 할 철학의 정의와 명칭들, 그런 것들이 중요할까.
그것을 취하려 했다면 수험생처럼 열심히 외우는데 치중했을것이다.
왜를 묻지 않고,
그들이 알려주는 여러 사유의 방식들을 고민해보지 않고,
그저 '지식'만.
물론 이 책은 철학이 지니온 길을 보다 쉽고 빠르게 이해시켜주기 위해 존재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 속에서 발견하는 철학의 다양한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일.
그 얼굴 속에서 내 얼굴을 발견 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철학이라는 학문을 이해하는 방법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의 어떤 얼굴을 분명히 마주했다고 말하고 싶다.

잘 살펴보면 상대주의는 개인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늘날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 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제멋대로'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가 정한 기준들보다 그들이 직접 느끼는 진실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객관적인 진실보다 자기 내면의 쾌적함을 중시한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주위에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라며 젊은이를 야단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없는가? 사실 그리스시대에도 '사람은 다 제각각이라는 생각은 좋지 않아'라고 청소년들에게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른이 있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20. 소크라테스 _ 윤리적 주지주의
지금의 사고로 해석하고 바라본 오래전 철학의 얼굴들은 놀랍게도 그 오랜 시간을 지나 현재의 모습과 닮아있다.
완벽히 같거나 완벽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오랜 시간동안 전혀 녹슬지 않고 바래지 않은 채 우리곁에 있다.
마치 지금 탄생한 새로운 얼굴인 것 마냥, 젊고 싱싱하다.
생을 다하고 사라져버린 재가 아닌 여전히 끝없이 불타오르는 불꽃으로 존재한다.
그 점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너무 오래되어 낡아버린 생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여전히 그 철학적 사유들에 공감하게 되고 고개 끄덕이게 된다.
이미 뒤집어져 재정립된 사상마저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철학적 옳음에 오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오류 때문에 완전해지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여전히 철학적 의문을 가진채 끝없이 사유하고 고민하고 완전해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다.
그 몸부림의 과정 중에 새로운 철학적 주장이 생성되고, 그것을 토대로 또 다른 새로운 철학적 인류가 탄생된다.
우리는 그 오류를 통해, 그 완전하지 않음을 통해,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신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절대적 존재라고 믿었던 신이나 자연보다도, 철학적 사유의 증거들이, 그들의 외침이 더 오래 우리 곁에 살아남는 건 아닐런지...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왜 옳은지를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재판관과 피고가 동일 인물인 것이다. 자신의 판단을 옳다고 지적하는 것도 자신이라면, 그것은 독선적인 옳음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관이 객관을 올바로 포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주관의 입장에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주관을 객관에 적중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92. 데카르트 _ 방법적 회의
당신에게도 이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진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어긋나버리는 경우는 일상다반사다.
자신이 논리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다른 결론이 된다. 그리고 모두가 각각 자신의 생각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실은 여기에 이성의 속임수가 있다고 니체는 말한다.
진리란 그것 없이는 어느 특정한 종의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오류다.
- 《유고 Ⅱ, 8.306》
결국 우리가 뭔가를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전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단지 그것을 믿고 있으면 살아가기 편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룻밤에 읽는 서양철학> p.174. 니체 _ 힘에의 의지

끊임없는 반증을 통해 철학은 발전되어 왔다.
그 철학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끊없이 질문 해야만 한다.
왜냐고.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달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 모든 곳에 철학이 있고, 우리의 생각 대부분이 철학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았다.
대단한 지식인들의 소유물이지도 않았다.
우리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철학으로 점철되어 있다.
내가 오늘 했던 생각, 사소한 행동들도 철학의 한 형태였다.
가까이 있는 철학.
내 일상의 철학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다.
철학은 별게 아니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삶이 있는 한 우리는 그 삶 속에서 누구나 다 철학자인 것이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철학자가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의 긴 흐름을 짧은 시간 이해하고 싶은 사람.
철학이 어떻게 발전해오고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한번에 알고 싶은 사람.
철학에 관심은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했던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