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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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p.016 _ 드라마 [미생]의 대사

 

 

 

운동이 필요하다.

아니 운동이 간절하다.

그것을 몸의 주인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체력은 제로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져 버린 지 오래다.

오랜 시간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원래도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이 유일했던 사람이라 더더욱 '운동'과는 친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십 대에는 운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마이너스를 향해 달리진 않았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를 자주 했지만, 오래 걷는 일이 힘들지 않았고, 움직이는 일이 힘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내 집에만 붙박이처럼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자꾸만 눕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꼬박꼬박 나이도 먹었다.

삼십 대가 이제 끝나려고 한다.

드디어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내 몸이 버틸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른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 이제는 내 몸과 정말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그 이후 다닌 24시간 헬스클럽에서도 기부 천사로 승천했으니까. 운동을 다녀온 후 처리해도 되는 일과 운동 앞에서 나는 항상 일을 먼저 선택했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친구와의 약속이나, TV 프로그램 본방 사수,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에 밀려 운동은 일상이 아니라 '시간이 되면'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조건 앞에는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____________ p.106

 

 

 

그렇다. 문제는 바로 '시간이 되면'이다.

시간 나면 하겠다는 많은 것들 중 어느 것 하나 이룬 것이 없다.

나는 사실 시간이 많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여유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다, 게으르다, 바쁘다는 핑계들로 늘 그것은 뒤로 미뤄지고 만다.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관심이 없고, 의지가 없고, 흥미가 없다.

 

책에 대한 관심의 3분의 1만이라도 운동에 관심을 두었다면 나는 지금쯤 아주 건강하고 체력이 탄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는 것은 아주 절실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운동'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부터 캄캄하다.

어쩐지 두려움마저 인다.

 

 

어떤 공간이 나를 거부하거나 그 공간에 내가 섞여들지 못하는 감각은 꽤 익숙하다. 공간은 그곳에 '있어도 되는'사람과 아닌 사람을 감별하고 배제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____________ p.40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히 큰 나는 사실 운동을 하는 곳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며, 낯설고 어색한 타인과의 부딪힘에 대한 걱정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일 테지만, 사람마다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낯선 곳은 그곳이 어디라도, 어떤 공간이라도 공포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맨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데, 심각한 길치 때문인지 살면서 낯선 곳에 가보고 싶어 하는 열망마저 없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센터는 일단 보류하고, 기껏 운동이라고 선택한 것은 등산이었다.

물론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을 오르며 등산이라고 부르기는 좀 부끄럽지만, 정말 집에서 방과 거실과 부엌을 오가는 게 다인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운동인 게 현실이다.

문제는 자발적 의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도 힘들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헬스를 한다거나 댄스 학원에 다니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나의 운동 딜레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특히나 저자가 각종 운동센터를 전전하며 직접 체험한 운동의 기록들은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승리의 기록을 내보였다면 아마 나는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 앞에선 쭈글이가 되어버리는데, 누군가가 운동으로 빛나는 체력을 얻고 아름다운 몸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면 나는 더욱더 기가 죽어 운동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운동치인 우리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실패의 기록이며, 일종의 변명이지만, 그럼에도 포기의 기록은 아니며, 내일을 향한 걷기의 기록이다.

 

저자는 각종 운동에 열심히 도전하고, 보기 좋게 패배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패배인 거지 사실은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얻는다.

나의 몸과 운동과 나의 삶을 조화롭게 살아내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몸에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옷을 살 때, 디자인이 다르고 색상이 다른 옷들을 이것저것 몸에 대어 보고 입어보는 것처럼 그녀는 몸에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그리고 그 시작의 기록, 그 끝의 기록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눈물 나게 웃기고, 날카롭게 따끔하다.

 

 

또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라서 나의 몸에 동의 없이 손을 대기가 쉬웠을 것이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촘촘하고 미세한 권력 차에 기반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신체의 자율성을 쉽게 침범당한다. 성인은 함부로 아동에게 뽀뽀하거나 볼을 꼬집고, 정치인은 시장에서 만난 시민의 손을 덥석 잡고, 교사는 학생의 옷차림을 단속하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포옹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남성은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경제적 빈곤층은 후원을 요청하는 영상에서 초상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접촉과 침범이 '선한 의도'로 포장될수록 약자는 불쾌감을 드러내거나 거부하기 힘들다. 이해를 강요 당하기도 한다. _________________ p.060

 

인싸는 소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인사이더'의 준말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선뜻 다가가는 친화력이 강점이다. 하지만 다수와 잘 어울린다는 장점은 기존 사회의 감수성이나 보편의 기준에 충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생활양식이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인싸와 아싸로 우열을 나누고, 인싸를 권하고, 인싸를 불편해하는 아싸를 사회성이 결여된 자로 몰아간다. ______________ p.061

 

 

운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그 속에도 집단과 권력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날카롭게 꼬집어내는 그녀의 이런 시선들이 참 좋았다.

이전에 가끔 어떤 글들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철저히 여자의 시선, 페미니즘적 성격이 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거나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녀의 글이 어떤 지점은 확실하게 꼬집으면서도 어떤 선은 넘지 않고 있어서이지 않나 싶다.

 

앞부분에 좀 더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뒤로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산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혼자 잘 살기 위해서는 운동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 어차피 내 몸은 내 몫의 삶이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인듯하다)

비혼 여성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내 주위에도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이 많다.

그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줘야겠다.

물론 운동하지 않는 결혼한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이 책은 필요하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몸 관리로서의 운동이 아닌, 건강해지기 위한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외치는 그녀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특히나 나이가 사십 대쯤 된 여자라면 누구라도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S라인이 아니라 체력이, 에너자이저 같은 체력이 간절하다.

 

 

 

 

우울과 자기 비하는 여름날의 곰팡이처럼 빠르게 증식하고 세를 불린다. 펑펑 울다가 잠들면 당연히 다음 날 아침 기상은 망했다. 조교 근무나 수업에 지각하고, 주어진 일을 깜박하고, 내 계획에서 변수가 생겨 조금이라도 더 품이 들면 벌컥 화가 치밀었다. _______________ p.017

 

 

사실 이 책의 그 어떤 운동의 기록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들어 놓은 건, 마음과 몸의 연결고리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우울과 자기 비하, 무력감과 나태함.

그런 것들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것 같다.

그저 마음에서 오는 것들이라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애쓰기만 했지, 한 번도 그것이 몸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몸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몸이 무너지고 마음도 함께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던가 보다.

나에게 이제 운동은 더 이상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운동은 여전히 나에게 낯선 세계이지만, 이제부턴 차근차근 친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할 생각이다.

낯선 세계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봐야겠다.

더 이상 몸도 마음도 그만 누워있어야지.

나도 그녀처럼 내가 입주해 살고 있는 내 몸에 대한 책임감을 좀 더 깊이 느껴야겠다.

 

너무도 무섭기만 했던 운동의 세계가 그녀 덕분에 조금 덜 두려워진 것 같다.

무턱대고 어느 문턱이든 씩씩하게 넘어설 용기까지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 책이 분명하게 나에게 운동 의지를 이끌어 낸 것은 확실하다.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고, 그리고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라고, 쿨하게 그녀가 말해준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지는 날, 사소한 일에 서운함이 폭발하고 누군가 원망스러운 날, 살아보겠다고 운동을 꿈지럭꿈지럭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드는 날, 바로 그 순간에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달리거나 허벅지 근육이 터질 정도로 앉았다 일어나다 보면, 존재의 이유, 인생의 의미, 자신의 가치 같은 생각들은 땀과 호흡으로 배출되어버린다.

p.017~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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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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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전부를 건 거래.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꿀 수는 없다.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꿀 수만 있을 뿐.

나는 과연 나의 삶 전부를 누군가의 삶을 위해 포기할 수 있을까.

나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견딜 수 있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했던, 또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완벽히 잊혀진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일생일대의 거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짧은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은 워커홀릭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일과 부를 향해 달린 한 남자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성공과 명예와 부를 얻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이 그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오로지 위로, 위로만 향해 달리던 그가 멈추었을 때,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그가 시선을 둔 곳에는 아들이 있었다.

이미 너무 멀어져 버린 아들이.

미친 듯이 질주하던 생이 멈추었을 때,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삶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릴 때, 우리가 가치를 두었던 어떤 것들도 함께 멈춰버린다.

더 이상 그것은 가치를 가지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버려진다.

그리고 잊고 있던 진짜 가치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생이 더 이상 달리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경고 한순간.

바로 그 순간, 가장 빛나는 그것.

그게 우리가 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다섯 살짜리의 죽음은 기사로 다루어지지 않고, 석간신문에 추모사가 실리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은 아직 발이 너무 작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없었다.

_______ p.26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목숨을 연명할 뿐이야. 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없어. 물건에는 기대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한다.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1초는 언제든 1초고 거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_______ p.35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라는데, 죽음에게도 가치가 있는 건 오로지 그 시간뿐이었다.

목숨과 목숨을 맞바꾼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시간이 남지 않은 생과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생을 바꾼다는 의미다.

오직 시간만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더 이상 남지 않은 다섯 살 아이의 시간을 늘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시간을 늘려주려면 그의 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목숨과 목숨을 맞바꾼다는 건 절대 쉬운 거래가 아니다.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또 사랑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가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들어가 산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우리가 다녀간 흔적 같은 건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고서는 남겨지지 않는 법인데, 어디의 아무개로 죽더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흔적으로 남겨진다.

내가 세상에 살았던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지기 위해서는 아닐까 싶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토록 아득바득 삶을 살아낼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내 가슴속에도 사랑하는 이들이 남겨져 있다.

그들이 살다간 시간을 더 이상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내 기억하고 있다.

기억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증거니까.

그가 한 일생일대의 선택은 옳았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책장을 덮고도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의 관심은 절대 되찾을 수 없어." 네 엄마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기, 그 시기가 지나면. 그 시기가 맨 먼저 지나가 버리거든."

_ p.88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 아니었을까?

지금,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지금,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알면서도 자꾸만 놓치게 되는 많은 시간들.

그렇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이 바빠서, 먹고사는 일이 힘이 들어서, 실제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들을 고민하느라, 가장 소중한 시간을 지나치고 있다.

오늘 내가 아이와 몇 번이나 눈을 마주쳤던가.

오늘 내가 아이의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담아 대꾸해주었던가.

그런 나에게 작가는 속삭인다.

지금,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에는 더 이상 이런 시간은 없다고.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아이의 진심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될 기회가.

 

 

 

 

엄마도 엄마지만,

늘 바쁘고, 회사일에 지친 아빠들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더 자라버리기 전에, 더 이상 아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기 전에, 지금 당장 아이와 웃고 떠들고 눈을 맞춰주라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먹고사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느새 커버린 아이와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집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어떤 시간도 투자하지 않고, 뒤늦게 자신이 여유가 생겼을 때 아이와 갑자기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빠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에게 아빠가 가장 필요한 시간은 사실 아이가 어렸을 때다.

어릴 적부터 아빠와 시간을 보낸 아이는 자라서도 여전히 아빠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빠가 아이에게 내어준 시간만큼 아이와 아빠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법이니까.

너무도 바쁜 세상의 아빠들에게 프레드릭 배크만이 속삭인다.

오늘 아이와 눈 맞추고, 오늘 아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라고.

아이가 영영 멀어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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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낭만살롱 편 -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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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게 된다.

적당히 애매하게, 안다고 하기엔 많이 미흡하게, 모른다고 하기엔 이렇게 저렇게 주워들은 건 있는 그런 모호한 포지션에 내가 있다.

 

나는 클래식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정확하게 '피아노곡'을 좋아한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넘고 나서는 '바이올린 곡'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가곡이나 교향곡들은 잘 듣지도 않고, 딱히 취향도 아닌듯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곡가를 물으면 '리스트'나 '쇼팽' 정도를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왜 그들의 음악을 다른 유명한 작곡가들의 음악에 비해 좀 더 좋아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몇몇의 곡들이 그들의 것이었기에 그 이름을 말했던 것뿐이었다.

특히 '사랑의 꿈'이나 '라 캄파넬라', '녹턴' 같은 곡들은 평소에도 종종 찾아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다.

피아노의 파가니니 같은 연주를 볼 수 있는 곡이라고 해서 듣게 된 '라 캄파넬라'는 그 현란한 연주의 기교만큼이나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종소리.

바로 그 종소리가 피아노에서 났다.

그리고 그 종소리를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라 캄파넬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워낙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라 제대로 소화해내는 피아니스트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기까지 했었다.

피아노 소리가 아름다운 곡, 그런 곡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한 권의 책에서 내가 사랑하던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낭만 살롱 편』

 

부제를 보지 못하고 책 제목만을 보고, 클래식 전반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부재에서 정확하게 이 책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다.

'낭만 살롱'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살롱.

음악가와 화가, 문학가들이 모여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후원하고 독려하던 그곳.

그 살롱에 모여서 함께 음악을 하던 이들이 이 책 속에 모여있다.

친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자이기도 하고, 시기하고 질타하기도 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갔던 그들.

그들 중 여섯, 그리고 외전에 등장하는 멘델스 존까지 일곱 명의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클래식이 알고 싶다'라는 팟캐스트에서 출발한다.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클래식을 알리고 있는 피아니스트 '안인모', 그녀가 이 책의 저자이다.

실제로 책 또한 딱딱한 설명 방식을 피하고, 귀로 듣는 팟캐스트처럼 부드럽게 쓰여있다.

조근조근 곁에서 이야기하듯 옛날의 어느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 낭만 살롱의 의자에 앉힌다.

 

시간은 오래전 어느 날로 우리를 데리고 갔지만, 그녀는 요즘의 언어로 그것들을 해석해 준다.

딱딱한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작곡가들은 흥미롭지도 않고, 외워야 할 숙제로만 여겨졌었는데, 그녀가 들려주는 작곡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미있다.

현대의 눈높이로 설명해주는 그녀의 입담에 클래식을 질색할 누군가마저도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역시 '이야기'는 제대로 된 이야기꾼을 만나야 진정한 재미를 발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클래식을 수행평가로만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선생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안타까워해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바로 QR 코드!!

클래식 책을 읽으면서 내내 검색해가며 음악을 찾아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확 줄여준 QR코드, 반갑구나!!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에 딱 맞는 곡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어서 더욱더 좋았다.

 

 

 

 

 

 

게다가 마지막엔 각 작곡가의 곡 중 저자가 추천하는 목록을 묶어 들을 수 있다.

대부분 유명한 곡이거나, 알고 있으면 좋을 만한 곡들이라 음악을 틀어놓고 무언가를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서 클래식을 들으려 할 때, 같은 곡을 굉장히 많은 음악가들이 연주를 했기에 어떤 것을 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듣는 귀가 예민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시나 클래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골라준 연주곡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래알꼭알', '래알깨알'같은 것들을 중간중간 삽입해서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용어 설명이나 부연 설명을 더해주고 있어 책 읽기를 더 쉽게 만들어 준다.

작곡가별로 키워드 정리도 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기초 상식을 탄탄히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챕터는 역시나 쇼팽과 리스트였다.

두 사람이 친구 관계였다는 것도 놀라웠고,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서로 음악적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며 음악을 했던 둘은 그 음악으로 인해 결국 서로를 영영 안 보게 되지만 서로에게 분명한 영향을 끼친 사이였다.

 

 

실제로도 둘은 음악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주고받아요. 쇼팽은 리스트의 피아노 테크닉과 카리스마 그리고 큰 음량을 내는 체력을 부러워했고, 리스트는 쇼팽의 시적인 감수성과 서정적인 표현력에 감탄하며, 자신도 쇼팽과 같은 감성을 키워 가요.

 

____ 이별을 노래하는 피아노 시인 쇼팽 _ p.086

 

 

리스트의 화려한 기교와 테크닉은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쇼팽이 사실은 매우 허약해서(?) 힘 있고 강한 연주를 하기 힘들어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다.

쇼팽의 음악은 여리고 아름답다.

물론 모든 곡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쇼팽의 곡들 중 가장 사랑받는 곡들이 대체로 그런 감수성을 듬뿍 담은 서정적인 곡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곡들이 쓰여진 연유에 자신의 한계를 그런 방식으로 넘어선 쇼팽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느낀 고독과 좌절, 그리움과 울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의 음악은 그의 혼잣말이며 그의 속삭임이에요.

 

____ 이별을 노래하는 피아노 시인 쇼팽 _ p.103

 

 

작가의 해석을 들으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맞아, 쇼팽은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아.

설명할 수 없었던 쇼팽의 느낌, 그것이 혼잣말이며 속삭임이었던가 보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자꾸 듣게 되나 보다.

그의 혼잣말이, 그의 속삭임이 외로운 우리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특히나 녹턴은 더더욱 그런 속삭임 같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풀밭에 누워서 듣는 자연의 위로 같다.

 

 

 

 

 

리스트는 황홀한 기교만이 아닌, 카리스마와 쇼맨십 그리고 숨만 쉬고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었기에 리스트의 퍼포먼스는 분위기를 더더욱 고조시켰고, 청중들은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켰어요. 그야말로 리스트는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경지의 인기와 명성을 누린 클래식 음악가예요.

 

____ 사랑을 꿈꾸는 슈퍼스타 리스트 _ p.130

 

 

리스트의 피아노 곡들을 이것저것 찾아 들었었지만, 리스트라는 음악가의 일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의 꿈'때문에 리스트가 굉장히 로맨틱하고 섬세한 사람일 거라고 상상했었다.

이를테면 '쇼팽'의 이미지에 가까운 느낌?! 좀 가녀리고 연약한 이미지 같은.

그런데 저자가 들려주는 리스트는 말 그대로 '핵인싸'였다.

 

어디에서나 주인공이었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였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였다.

상상해 본적도 없는 이미지의 리스트가 등장했다.

게다가 왜 사랑은 매번 유부녀와 빠지는 건가.

(다른 예술가들도 사랑과 성에 관해서는 몹시도 자유로우니 딱히 리스트를 꼬집을 것도 없지만)

심지어 그는 말년에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무슨 인생이 이토록 익사이팅 한 것인가.

 

 

그는 근면함과 섬세함 그리고 사명감으로 각종 음악 사업을 추진하고 후배 음악가들의 생계를 도운 큰 스승이자 후원자였어요. 이런 리스트의 이타적 행동들이나 워커홀릭과도 같은 창작열 그리고 독실한 신앙심과 화려한 연애는 도무지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보기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리스트의 삶에서 보이는 여러 상반되는 면모들이 꽤 큰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며 후세에까지 이어지는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새로운 시대를 향해 과감한 도전의 창을 던진 사람이었어요.

 

____ 사랑을 꿈꾸는 슈퍼스타 리스트 _ p.151

 

 

저자의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모두 들어있다고 하기엔 너무 다른 모습들의 삶이 리스트에게는 공존했던 모양이다.

'라 캄파넬라'처럼 화려하고 기교 넘치고 자신감에 차 있는 리스트.

'사랑의 꿈'처럼 달콤하고 다정하고 섬세한 리스트.

음악으로 '순례의 해'라는 기행문을 써낸 천재적인 음악가 리스트.

나는 그 모든 리스트가 좋았다.

파격적인 행보를 일삼았더라도 그의 음악은 그의 진심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음악으로 들려주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들, 섬세한 감성과 커다란 울림을 부정할 수 있을까?

그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이 책의 다음 편이 나오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거장들의 이야기도 여전히 궁금하다

이미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그들의 삶을 다룬 많은 책들도 있지만, 피아니스트 안인모의 필터링을 거친 그들의 모습은 또 어떨지 그것이 궁금해진다.

오늘의 시간의 눈으로 바라본 오래전 거장의 삶은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니까.

 

궁금한 음악가들이 한가득이다.

솔직히 나에겐 이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취향 저격이지만, 고전주의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난히 그 시대의 음악가들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인 사람들이 많은듯해서 더 그 삶이 궁금한 모양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가들 또한 다 천재였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고, 음악에 탁월한 천재성을 보여주었던 이들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이 좀 더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

천재성이 주어진 대신, 그들에게는 짧은 생이 주어졌다는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물론 리스트나 클라라처럼 노년의 나이까지 삶을 지킨 이들도 있었지만)

 

 

 

 

 

 

어렵지 않은 클래식 이야기를 다정하게 건네는 책.

읽고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클래식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책.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꼭 함께 읽으며 같이 듣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

클래식 음악이 듣고 싶어질 때마다 들춰보게 될 책.

 

작가의 다정한 음성과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 함께하는 '클래식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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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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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놈펜에는 호텔 '원더랜드'가 있다.

호텔 원더랜드에는 절대 춤 따위 추지 않을 것 같은 고복희사장이 있다.

그녀는 어쩐지 좀 이상한 사람이다.

늘 딱딱하게 높임말을 사용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원리원칙만을 고수한다.

좋게 말하면 올곧고 반듯한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운영하는 호텔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그리고 그것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일까? 손님은 점점 줄어들고, 이러다 호텔이 망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때 하나뿐인 직원 린이 '한 달 살기'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한다.

고복희에게는 어림도 없어 보이는 이 제안은 결국 받아들여진다.

호텔을 유지하려면 손님이 필요하니까.

 

한 달 살기를 신청하고 한국에서 오게 된 이상한 손님 박지우.

그녀는 고복희의 눈에 너무 한심하고 이상한 손님이다.

앙코르와트가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프롬펜으로 숙소를 잡은 모자란 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빈둥빈둥 호텔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한심한 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젊은 여자.

 

그렇게 고복희와 박지우, 그리고 린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된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며 산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당신의 도덕성을 시험하려 들 거예요. 부당한 상황에 밀어놓고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겠죠. 좌절하는 당신을 조롱하고 헐뜯을지도 몰라요."

상관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니까. 자신에게 떳떳하면 그걸로 족하다.

P.205

 

 

 

정확한 원칙이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고복희보다는 차라리 박지우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저 흐르는 대로 상황에 맞춰 적당히 대처하며 살아간다.

확고하고 올곧은 원칙이나 정확한 삶의 방향을 나침반 삼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상상해 본적도 없다.

늘 삶의 거센 바람 앞에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아슬아슬함으로 삶을 간신히 견디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고복희는 신세계에 가깝다.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

 

그녀의 딱딱한 말투와 무표정한 얼굴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이 그녀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늘 곧다.

사람을 바라볼 때도 뒤틀리지 않는다.

그녀만의 원칙이 존재하지만 그것에 흔한 편견은 없다.

그냥 상대를 그대로 바라봐 준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꾸만 누군가를 구부러진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편견과 의심과 짐작을 멋대로 주물러 내 방식대로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

짐작이라는 게 참 무서운 영역이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나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았던 상대를,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완벽히 다른 시선으로 재단하고 있는 순간을 마주할 때 당혹스럽다.

저 사람의 말이, 저 사람의 행동 어디가 그런 결론에 이르게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끙끙 대곤 한다.

다른 사람들의 짐작과 짐작이 만나 말도 안 되는 전혀 다른 인물이 탄생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스트라이크로 정직하게 받아들인 내가 잘못된 건지, 변화구를 제대로 읽어낸 그들의 해석이 잘못된 건지 알 길이 없다.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심지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우리들은 이렇게도 다르다.

 

그런 점에서 고복희 무심함은 되려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남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는 법이 없다.

그게 무관심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삶을 제대로 존중하는 법이 아닌가 싶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고복희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장영수는 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할 뿐이었다. 타인의 소중한 것을 부러뜨릴 자격은 없다. 그건 그녀의 삶의 원칙이었다.

_ P.196

 

 

 

이 문장은 그녀가 후회를 말하는 문장과 닿아있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읽다가 울컥했다.

'타인의 소중한 것을 부러뜨릴 자격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참 쉽게도 부러뜨리고 산다.

그것이 때로는 너무도 사랑하는 내 아이의 꿈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신념일 때도 있고,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일 때도 있다.

그것을 폭력이라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채 아주 쉽게 입 밖으로 뱉어낸다.

그렇게 부러진 내 소중한 것들은 결국 시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자존심, 자존감, 사랑, 믿음, 신념, 꿈....

타인에 대한 예의가 없는 우리들은 서로의 소중한 것들을 손쉽게 부러뜨리며 관계를 이어간다.

아파도 웃으면서, 인간관계라는 건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믿으면서.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의 신념을 지켜준 고복희.

그 원칙을 지킴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의 삶의 원칙이 몹시도 마음에 든다.

괴짜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딱딱한 말투가 아니라, 모든 삶을 소중히 여기는 그녀의 보드라운 마음, 그것이 고복희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한 사람, 장영수.

춤추는 고복희를 만들기 위해 몹시도 애썼던, 다정한 사람.

그 사람을 잃고 그녀는 프롬펜에 왔다.

 

 

 

 

 

한국에서 백수로 지내던 박지우.

그녀는 남들의 빛나는 삶을 지켜보다가 자신도 여행을 통해 한순간이라도 빛나는 삶을 보여주고 싶어서 프롬펜에 왔다.

앙코르와트를 꿈꾸며 도착한 프롬펜은 앙코르와트와 너무 많이 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서울에 불국사가 없는 것처럼, 수도인 프롬펜에도 앙코르와트는 없었다.

 

완전히 망한 여행.

호텔 사장도 괴짜에, 한인 사회도 이상한 것 같고, 한국에 돌아가서 뭐 대단한 무용담을 들려줄 것도 없어 보인다.

인생이 잿빛이더니 이젠 여행마저 잿빛이다.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로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난 것인데, 한국에서의 백수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서 과연 무언가를 깨닫고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어른들이 봤을 땐 제가 웃기겠죠. 나라 탓만 한다. 그런 생각이시겠죠? 그치만 저도 노력하거든요? 제 나름대로 하고 있다고요. 근데 다들 저만큼은 한단 말이에요. 모두가 빡세게 살아서 제가 빡세게 사는 건 티도 안 나요. 안 빡세게 사는 애들은 잘 사는 집 애들이에요. 빡세게 살 필요가 없는 거죠."

 

… 중략 …

"뭔가 이루고 싶으면 죽도록 하라고 하는데. 제가 봤을 때 죽도록 하는 사람들은 진짜 죽어요. 살기 위해 죽도록 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P.093

 

 

 

청년실업률에 대한 뉴스가 이제는 너무 익숙한 시대다.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 또한 깊어지겠지.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 대의 청춘들이 팔자 좋게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참 열심히 스펙을 쌓고 쌓는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이제는 그런 고 스펙자가 넘쳐난다.

너도 나도 다 잘났다. 똑똑한 애들도 노력하는 애들도 넘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밀려 낙오하는 젊음들이 점점 쌓여간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 더 가진 사람들만이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다.

그 가운데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감에 고개 숙인 청춘들.

 

더 쥐여줄 돈이 없는 부모는 그런 부모라서 마음이 아프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달렸는데도 번듯한 직장에 안착하지 못한 자식들은 면목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소설은 결국 현실의 이야기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달아 읽었던 두 소설 모두 치솟는 청년 실업 데이터에 치인 청춘들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가 지금 같이 아파해야 할 문제가 이것이라고 보여주는 것만 같다.

패배자가 아니라고, 사회가 자꾸만 그들에게 패배자의 이름표를 달아 놓으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한심해서 게을러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들의 그동안의 노력을 우리는 알아줘야만 한다.

 

취업의 문턱에서 넘어졌다고 인생이 넘어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 느끼는 좌절감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청춘들에게 우리들의 한숨까지 얹을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스스로를 믿고 일어설 때까지의 휴식인지도 모르겠다.

박지우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복희는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인간이었고 나 역시 그녀의 방식으로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생각을 교묘하게 흐리거나 장황한 문장에 숨는 일을 경계했다. 두꺼운 화장을 벗어던진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썩 마음에 든다.

P.264 _ 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도 실상 세상을 완벽히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다들 그냥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짐짓 아는체하는 것일 뿐.

허울좋은 똑똑한 척일 뿐인 것이다.

 

고복희가 되고 싶어서, 고복희 눈으로 보고 쓰기 위해서 정면을 마주하기로 한 작가의 노력이 와닿았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일은 참 쉬운 것 같아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외면하고 싶은 많은 것들, 그냥 슬쩍 흘려보고 싶은 순간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치기엔 두려운 것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그 속에서 곧은 시선을 유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겨운 싸움이다.

그럼에도 허영을 벗어던지고, 나를 빛내줄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내려놓고, 나아닌 다른 것들의 뒤로 숨지 않기로 한 작가의 문장은 고복희를 닮았다.

아름답게 빛나는 문장을 좋아하지만, 담백하고 담담한 문장 또한 좋다.

그런 문장들은 오랫동안 먹어온 쌀밥처럼 오늘 먹고, 내일 다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작가가 거울 속에서 바라본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나'가 이 한 권의 책이었다면, 나는 그녀의 다음 책도 읽게 될 것 같다.

 

 

 

 

어릴 때 똑똑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을 수밖에 없다.

P.156 

 

 

 

우리는 어리석다.

지혜롭고 싶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리고 서툴기 때문에 기어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만다.

세상의 말들에 너무 쉽게 휘둘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걷기 위해 늘 종종거린다.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한 확신은 자꾸만 작아지고,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느라 오늘을 허비한다.

나이를 먹어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던 믿음마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원칙을 올곧게 지켜나가는 고복희의 성실함이다.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곧게 정면을 응시하며, 비굴하지도 무례하지도 않게 삶을 영위하는 것.

남을 할퀴지 않고도, 헐뜯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가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고복희는 보여주고 있다.

 

괴짜 같고 무언가 이상해 보이는 고복희의 삶이야 말고 진정 떳떳하고 올바른 삶의 모습은 아닐까.

나에게도 고복희의 단단한 원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것을 기어코 지키는 의지가 가장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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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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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폭력의 역사를 끝내는 데 60억이면 충분했다.

『 이 땅의 모든 제니 할머니에게 바치는 소설 』

 

 

그러니까 67년 만에 할머니가 돌아왔다.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서 죽었다던 그 할머니가 부활했다.

'충남 부여 명문가 장남''독립운동에 투신했던','빈궁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조선의 선비 정신을 잃지 않고 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로 했던, 이 시대 지식인이며 교양인인 할아버지'가 '더러운 잡년'이라는 상스러운 말과 교양 떨어지는 패악을 부리게 만드는 할머니의 등장이었다.

 

독립군이었던 할아버지를 고발하고 일본 헌병과 눈이 맞아 도망 친 할머니를 갈아 마셔버려도 시원치 않을 분노로 맞이한 할아버지.

갓난아이 때 엄마에게 버려진 설움을 간직한 아버지와 고모.

67년 전에 죽었다 살아난 시어머니와 할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든 엄마와 이 글의 화자인 동석, 그리고 동생 동주.

 

이 가족에게

67년 만에 '부활'하신 할머니는 필요치 않았다.

'깃털 달린 기괴한 밤색 벙거지 모자'와 '동전만 한 은빛 반짝이가 잔뜩 달린 요상한 원피스 정장' 입은 노란 머리 할머니의 등장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평온한 일상이 깨어질 것만 같은 불안을 할머니는 함께 몰고 왔다.

(물론 그들의 일상이 진정으로 평온했는가는 나중의 문제다. 어쨌든 지금의 삶이 분명 흔들리게 생겼으니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머니의 존재는 말 그대로 가족에겐 상처,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가족의 거부가 환대로 바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나,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60억 유산을 들고 금의환향할 줄이야.

그 긴 시간 동안 할머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60억의 유산은 누구에게 얼마씩 상속되는 것일까.

 

 

 

 

 

그러나 인생이란 원래 정의롭지도 않고 인자하지도 않아서 가장 중요한 순간엔 늘 이렇게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p.178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운데, 그리 오래되지 않는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의 슬픔을 이 글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할머니의 인생과 지금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손자의 인생.

그리고 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쩐지 패배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아버지의 인생과 생계를 책임지느라 허덕이는 어머니의 인생.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누구도 물을 수 없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휘몰아치듯 정신없이 우리나라는 바닥에서 일어섰고, 끝없이 눈부시게 발전되어 왔지만, 그 엄청난 저력의 역사 속에 개인의 인생은 많은 부분 희생당해야 했다.

우리의 사고가 폭발적으로 넓어지는 동안, 아픈 시간을 맨발로 걸어온 분들의 생이 여전히 살아있다.

한국은 그런 나라다.

아직도 아픔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존재하고, 먹고사는 일에 일생을 바쳐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하고, 노력을 해도 가닿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나자빠지는 아들과 딸들이 공존하는 그런 나라.

그래서 세대 간의 갈등이 고름처럼 고여서 자꾸만 앓는 소리를 내뱉게 되는 지금의 시간에 이 소설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이라고만 느껴지는 시간을 살아온 노년과 열심히 하면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었던 희망의 시대를 건너온 중년과 취업의 문턱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씁쓸한 젊음이 부딪히는 오늘의 한국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 세대는 같은 한국에 살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개인의 잘못된 선택 여부를 넘어,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살아내는 것뿐이다.

그 시대와 이 시대가 다르다는걸,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걸,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서로가 이해할 수 있다면 세대 간의 갈등은 좀 덜 아프지 않을까?

 

작가는 그것을 블랙코미디적인 서사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 세대가 우리 세대를 이해해주기를, 또한 우리 세대가 이전 세대를 이해하게 되기를.

여전히 화해하지 못한 수많은 갈등들 속에서 적어도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주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진 않았을까.

(물론 무능력한 남자를 먹여살리며 악착같이 삶을 살아내야 했던 '어머니'의 이름과 손가락질 받고 억압받아야만 했던 지난 세월의 '여자'의 이름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페미니즘적인 해석은 많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나는 조금 다른 방향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할머니의 시대를 돌아보며 여전히 우리나라의 바뀌지 않는 시선들에 대해 지적하고 있지만, 또 할머니만큼이나 중요하게 손자인 동석의 인생을 깊이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 축척된 좌절과 무기력의 슬픔이 배어있다.

나날이 높아져가는 청년실업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동석.

그의 삶이 너무 많은 청춘들을 대변하는 삶이라는 게 서글프다.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는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눈부시게 빛나는 게 청춘인 거라고, 꿈을 이야기할 수 있고 내일을 반짝이는 눈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청춘의 이름인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너무 일찍 현실을 알아버려서 꿈을 꾸지 않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그 아이들이 누려야 할 청춘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대를 만들기까지 앞선 어른들이 아프고 힘들어 눈물 흘리면서도 기어코 참아낸 것은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아픈 시대를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테니까.

 

 

 

 

 

왜? 도대체 왜? 남자 새끼들은 힘들어지면, 무서우면, 불안하면 밖에선 찍소리도 못 하다가 집에 와서,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자기 여자를 때리고 모욕하고 괴롭히는 것이냐? 왜? 도대체 왜? 세상엔 그렇게 못나고 비겁한 새끼들만 바글대는 것이냐?

p.254 

 

 

 

이 책 속에는 폭력의 역사도 담겨있다.

그 시절, 여자가 맞고 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어릴 적에 주위에서 부부 싸움이든 주사로 인한 폭력이든 부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흔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부모 세대를 보면서 왜 맞고 사냐고, 이혼을 하든 도망을 가든 맞고 살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자식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컸을 때 이야기겠지만)

그런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다시 부부가 되었을 때, 놀랍게도 폭력은 다시 발굴되곤 했다.

이 시대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가정폭력의 모습은 땅속 깊이 묻혀있다가, 덜컥하고 감정의 어떤 뿌리가 파헤쳐 질 때 불현듯 다시 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일상의 폭력의 역사는 그래서 무섭다.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래도 되는'것으로 둔갑할 때 폭력은 감정 표현의 한 방식으로 인식되어 버린다.

그러면 쉬워지고 마는 것이다.

화가 났으니까, 분노가 치밀어 오르니까, 네가 나를 무시했으니까, 네가 나보다... 약하니까.

무엇도 폭력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언제쯤 깨닫게 될까.

 

그 시절에는 그랬다 해도,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건 결국 우리 모두 망하는 길일뿐이다.

이제는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범죄라는 것을 말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와의 지난 시절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김수영 시인이 떠올랐다.

모던한 지식인이었던, 심지어 그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던 시인 김수영은 요즘 말로 가정폭력범이었다.

아내를 때렸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다.

그 말은, 잘못을 알면서도 행했다는 것이다.

그를 극한으로 몰고 갔던 두려움이나 불안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폭력의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시절에 부인을 때리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김수영은 자신의 치부를 시를 남기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욕먹기를 자처했다.

그 만의 속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치를 느꼈던 그는 '아내를 당연하게 때렸던' 그 시대의 남자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던 걸까.

 

그러면서 이 책 속의 할아버지도 한 번쯤은 지난 시절의 폭력에 대한 사과를 건넸다면 좋았겠다 싶었다.

충분히 지식인의 삶을 사셨던 분이었으니 분명 폭력의 그름 또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속에 분명 아내를 때렸던 순간의 수치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그러고 보니 책 속에는 '폭력'은 존재하지만 '사과'나 '인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 속 누구도 자신의 폭력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폭력에 노출된 여자의 삶을 비출 뿐이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에서 멈춰있기 때문인 것일까.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사회도 좀 더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끄러워할 용기가 필요하다.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지만, 늘 웃음 끝에는 쓴맛이 돈다.

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자본주의 앞에 선 우리의 졸렬함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누구라도 재미있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책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은 그렇게 가볍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10초마다 빵빵 터지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라는 띠지의 카피만 봐도 알 수 있다.

쉬운 말로는 '웃픈'것이겠지만, 사실 10초마다 나는 웃음보다 자꾸 나는 눈물이 더 중요한 소설 같다.

 

어쩌면 아주 무거웠을 소재를 누구보다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작가의 배려 같기도 하다.

책은 일단 읽혀야지 무엇이든 전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숨 나는 일이 천지인 일상에 더 한숨 나는 역사를 들이밀며 그들의 상처를 돌아보라고 한다면, 책 읽기는 내일로 미뤄질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재미와 즐거움, 오늘의 피곤을 날려줄 박카스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열심히 웃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은 끝장에 가 있고, 책장을 덮고 나면 그제서야 무언가가 묵직하게 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말이다.

웃음 속에 숨겨져 있던 그 묵직한 펀치는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 책 너머의 세상을 응시하도록 할 것이다.

 

할머니의 60억 유산 뒤에 감춰진 진실을 우리가 궁금해했던 것처럼.

 

 

 

 

 

그게 그렇더구나. 사람이 아무리 머리로 산다고 해도 한번 가슴이 동하면 머리 같은 건 정말 쌀 한 톨보다 못한 게 되더라고. 나중에 후회를 해도,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또 가야 하는 길. 이제 죽을 때가 돼가니 비로소 알 수 있단다. 그게 사람 사는 길이야. 뜬구름 같은 거 말이야.

p.218

 

 

 

우리는 가슴이 시킨 길을 따라 걷다가 많이도 넘어지고 다치곤 한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을 매번 후회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실은 나에게는 결국 그 선택이 전부였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애초에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을.

 

후회로 가득한 모든 살아있는 삶을 응원한다.

늘 후회로 가슴이 아픈 내 삶 또한 조용히 다독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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