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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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전부를 건 거래.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꿀 수는 없다.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꿀 수만 있을 뿐.

나는 과연 나의 삶 전부를 누군가의 삶을 위해 포기할 수 있을까.

나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견딜 수 있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했던, 또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완벽히 잊혀진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일생일대의 거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짧은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은 워커홀릭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일과 부를 향해 달린 한 남자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열심히 일한 대가로 성공과 명예와 부를 얻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대가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이 그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오로지 위로, 위로만 향해 달리던 그가 멈추었을 때, 더 이상 위를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그가 시선을 둔 곳에는 아들이 있었다.

이미 너무 멀어져 버린 아들이.

미친 듯이 질주하던 생이 멈추었을 때,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삶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릴 때, 우리가 가치를 두었던 어떤 것들도 함께 멈춰버린다.

더 이상 그것은 가치를 가지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버려진다.

그리고 잊고 있던 진짜 가치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생이 더 이상 달리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경고 한순간.

바로 그 순간, 가장 빛나는 그것.

그게 우리가 생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다섯 살짜리의 죽음은 기사로 다루어지지 않고, 석간신문에 추모사가 실리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은 아직 발이 너무 작고,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없었다.

_______ p.26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목숨을 연명할 뿐이야. 그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없어. 물건에는 기대치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이 있을 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사업을 한다.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야. 1초는 언제든 1초고 거기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_______ p.35

 

 

지구상에서 가치가 있는 건 시간뿐이라는데, 죽음에게도 가치가 있는 건 오로지 그 시간뿐이었다.

목숨과 목숨을 맞바꾼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시간이 남지 않은 생과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생을 바꾼다는 의미다.

오직 시간만이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 발자취를 남길 시간이 더 이상 남지 않은 다섯 살 아이의 시간을 늘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 아이의 시간을 늘려주려면 그의 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목숨과 목숨을 맞바꾼다는 건 절대 쉬운 거래가 아니다.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또 사랑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가 죽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으로 들어가 산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우리가 다녀간 흔적 같은 건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고서는 남겨지지 않는 법인데, 어디의 아무개로 죽더라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흔적으로 남겨진다.

내가 세상에 살았던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지기 위해서는 아닐까 싶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토록 아득바득 삶을 살아낼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내 가슴속에도 사랑하는 이들이 남겨져 있다.

그들이 살다간 시간을 더 이상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내 기억하고 있다.

기억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증거니까.

그가 한 일생일대의 선택은 옳았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책장을 덮고도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의 관심은 절대 되찾을 수 없어." 네 엄마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기, 그 시기가 지나면. 그 시기가 맨 먼저 지나가 버리거든."

_ p.88

 

 

사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 아니었을까?

지금,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지금,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알면서도 자꾸만 놓치게 되는 많은 시간들.

그렇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시간을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이 바빠서, 먹고사는 일이 힘이 들어서, 실제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들을 고민하느라, 가장 소중한 시간을 지나치고 있다.

오늘 내가 아이와 몇 번이나 눈을 마주쳤던가.

오늘 내가 아이의 이야기에 얼마나 진심을 담아 대꾸해주었던가.

그런 나에게 작가는 속삭인다.

지금, 지금이 아니라면 나중에는 더 이상 이런 시간은 없다고.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아있기를 바라본다.

아이의 진심 어린 관심의 대상이 될 기회가.

 

 

 

 

엄마도 엄마지만,

늘 바쁘고, 회사일에 지친 아빠들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더 자라버리기 전에, 더 이상 아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기 전에, 지금 당장 아이와 웃고 떠들고 눈을 맞춰주라고.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먹고사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느새 커버린 아이와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집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게 된다.

아이에게 어떤 시간도 투자하지 않고, 뒤늦게 자신이 여유가 생겼을 때 아이와 갑자기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것은 오로지 아빠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에게 아빠가 가장 필요한 시간은 사실 아이가 어렸을 때다.

어릴 적부터 아빠와 시간을 보낸 아이는 자라서도 여전히 아빠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빠가 아이에게 내어준 시간만큼 아이와 아빠의 거리는 가까워지는 법이니까.

너무도 바쁜 세상의 아빠들에게 프레드릭 배크만이 속삭인다.

오늘 아이와 눈 맞추고, 오늘 아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라고.

아이가 영영 멀어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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