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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p.016 _ 드라마 [미생]의 대사
운동이 필요하다.
아니 운동이 간절하다.
그것을 몸의 주인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체력은 제로에서 마이너스로 떨어져 버린 지 오래다.
오랜 시간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원래도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이 유일했던 사람이라 더더욱 '운동'과는 친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십 대에는 운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마이너스를 향해 달리진 않았다.
감기 같은 잔병치레를 자주 했지만, 오래 걷는 일이 힘들지 않았고, 움직이는 일이 힘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내 집에만 붙박이처럼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자꾸만 눕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꼬박꼬박 나이도 먹었다.
삼십 대가 이제 끝나려고 한다.
드디어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내 몸이 버틸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른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 이제는 내 몸과 정말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그 이후 다닌 24시간 헬스클럽에서도 기부 천사로 승천했으니까. 운동을 다녀온 후 처리해도 되는 일과 운동 앞에서 나는 항상 일을 먼저 선택했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친구와의 약속이나, TV 프로그램 본방 사수,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에 밀려 운동은 일상이 아니라 '시간이 되면'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조건 앞에는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____________ p.106
그렇다. 문제는 바로 '시간이 되면'이다.
시간 나면 하겠다는 많은 것들 중 어느 것 하나 이룬 것이 없다.
나는 사실 시간이 많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여유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다, 게으르다, 바쁘다는 핑계들로 늘 그것은 뒤로 미뤄지고 만다.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관심이 없고, 의지가 없고, 흥미가 없다.
책에 대한 관심의 3분의 1만이라도 운동에 관심을 두었다면 나는 지금쯤 아주 건강하고 체력이 탄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는 것은 아주 절실하게 느끼고 있음에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운동'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부터 캄캄하다.
어쩐지 두려움마저 인다.
어떤 공간이 나를 거부하거나 그 공간에 내가 섞여들지 못하는 감각은 꽤 익숙하다. 공간은 그곳에 '있어도 되는'사람과 아닌 사람을 감별하고 배제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____________ p.40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히 큰 나는 사실 운동을 하는 곳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며, 낯설고 어색한 타인과의 부딪힘에 대한 걱정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일 테지만, 사람마다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낯선 곳은 그곳이 어디라도, 어떤 공간이라도 공포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맨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데, 심각한 길치 때문인지 살면서 낯선 곳에 가보고 싶어 하는 열망마저 없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센터는 일단 보류하고, 기껏 운동이라고 선택한 것은 등산이었다.
물론 동네의 야트막한 뒷산을 오르며 등산이라고 부르기는 좀 부끄럽지만, 정말 집에서 방과 거실과 부엌을 오가는 게 다인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운동인 게 현실이다.
문제는 자발적 의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것도 힘들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헬스를 한다거나 댄스 학원에 다니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나의 운동 딜레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특히나 저자가 각종 운동센터를 전전하며 직접 체험한 운동의 기록들은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승리의 기록을 내보였다면 아마 나는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 앞에선 쭈글이가 되어버리는데, 누군가가 운동으로 빛나는 체력을 얻고 아름다운 몸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을 했다면 나는 더욱더 기가 죽어 운동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이라고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운동치인 우리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실패의 기록이며, 일종의 변명이지만, 그럼에도 포기의 기록은 아니며, 내일을 향한 걷기의 기록이다.
저자는 각종 운동에 열심히 도전하고, 보기 좋게 패배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패배인 거지 사실은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깨닫고 얻는다.
나의 몸과 운동과 나의 삶을 조화롭게 살아내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몸에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옷을 살 때, 디자인이 다르고 색상이 다른 옷들을 이것저것 몸에 대어 보고 입어보는 것처럼 그녀는 몸에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그리고 그 시작의 기록, 그 끝의 기록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눈물 나게 웃기고, 날카롭게 따끔하다.
또 상대적으로 '어린 여자'라서 나의 몸에 동의 없이 손을 대기가 쉬웠을 것이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촘촘하고 미세한 권력 차에 기반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신체의 자율성을 쉽게 침범당한다. 성인은 함부로 아동에게 뽀뽀하거나 볼을 꼬집고, 정치인은 시장에서 만난 시민의 손을 덥석 잡고, 교사는 학생의 옷차림을 단속하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포옹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남성은 여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경제적 빈곤층은 후원을 요청하는 영상에서 초상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 접촉과 침범이 '선한 의도'로 포장될수록 약자는 불쾌감을 드러내거나 거부하기 힘들다. 이해를 강요 당하기도 한다. _________________ p.060
인싸는 소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인사이더'의 준말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선뜻 다가가는 친화력이 강점이다. 하지만 다수와 잘 어울린다는 장점은 기존 사회의 감수성이나 보편의 기준에 충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생활양식이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인싸와 아싸로 우열을 나누고, 인싸를 권하고, 인싸를 불편해하는 아싸를 사회성이 결여된 자로 몰아간다. ______________ p.061
운동을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그 속에도 집단과 권력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날카롭게 꼬집어내는 그녀의 이런 시선들이 참 좋았다.
이전에 가끔 어떤 글들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철저히 여자의 시선, 페미니즘적 성격이 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하거나 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녀의 글이 어떤 지점은 확실하게 꼬집으면서도 어떤 선은 넘지 않고 있어서이지 않나 싶다.
앞부분에 좀 더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고, 뒤로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산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 혼자 잘 살기 위해서는 운동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 어차피 내 몸은 내 몫의 삶이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인듯하다)
비혼 여성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내 주위에도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이 많다.
그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줘야겠다.
물론 운동하지 않는 결혼한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이 책은 필요하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몸 관리로서의 운동이 아닌, 건강해지기 위한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외치는 그녀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특히나 나이가 사십 대쯤 된 여자라면 누구라도 그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S라인이 아니라 체력이, 에너자이저 같은 체력이 간절하다.

우울과 자기 비하는 여름날의 곰팡이처럼 빠르게 증식하고 세를 불린다. 펑펑 울다가 잠들면 당연히 다음 날 아침 기상은 망했다. 조교 근무나 수업에 지각하고, 주어진 일을 깜박하고, 내 계획에서 변수가 생겨 조금이라도 더 품이 들면 벌컥 화가 치밀었다. _______________ p.017
사실 이 책의 그 어떤 운동의 기록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들어 놓은 건, 마음과 몸의 연결고리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우울과 자기 비하, 무력감과 나태함.
그런 것들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것 같다.
그저 마음에서 오는 것들이라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애쓰기만 했지, 한 번도 그것이 몸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몸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몸이 무너지고 마음도 함께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던가 보다.
나에게 이제 운동은 더 이상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운동은 여전히 나에게 낯선 세계이지만, 이제부턴 차근차근 친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할 생각이다.
낯선 세계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봐야겠다.
더 이상 몸도 마음도 그만 누워있어야지.
나도 그녀처럼 내가 입주해 살고 있는 내 몸에 대한 책임감을 좀 더 깊이 느껴야겠다.
너무도 무섭기만 했던 운동의 세계가 그녀 덕분에 조금 덜 두려워진 것 같다.
무턱대고 어느 문턱이든 씩씩하게 넘어설 용기까지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 책이 분명하게 나에게 운동 의지를 이끌어 낸 것은 확실하다.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해도 된다고, 그리고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라고, 쿨하게 그녀가 말해준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지는 날, 사소한 일에 서운함이 폭발하고 누군가 원망스러운 날, 살아보겠다고 운동을 꿈지럭꿈지럭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드는 날, 바로 그 순간에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달리거나 허벅지 근육이 터질 정도로 앉았다 일어나다 보면, 존재의 이유, 인생의 의미, 자신의 가치 같은 생각들은 땀과 호흡으로 배출되어버린다.
p.017~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