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에스더 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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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의외로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경우가 많다.

길 가다 발견한 작고 예쁜 꽃 한 송이, 몽글몽글한 털로 뒤덮인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와의 마주침, 피곤할 때 혀끝에 닿는 진한 달콤함, 향기 좋은 커피 한 잔의 여유, 문득 바라본 하늘의 푸르름.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에 우리는 웃음 짓고 행복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을 처음 받고, 페이지를 넘기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다.

대단한 내용이 담긴 것도 아니고, 엄청난 깨우침을 전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핑크색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데, 핑크빛 표지와 내지를 보는 내내 기분이 즐거워졌다.

왜 나는 즐겁지? 왜 나는 웃고 있지? 왜 단순한 몇 줄의 글에 위로 받는 기분이 드는 거지?

낯설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책이, 솜사탕 같았다.

너무 달아서, 끈적여서 사실 잘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핑크빛 솜사탕을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오곤 한다.

보는 것으로도 '달콤한 행복'의 맛이 혀끝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으니까.

핑크 토끼의 몽글거림, 밝음과 긍정, 노력과 웃음이, 솜사탕을 보고 내가 유년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아이 같은 웃음이 튀어나와 버리는 것처럼, 그런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너무 다정하고 따뜻한 핑크다.

 

 

 

 

 

이민자 2세로 자라온 작가는, 한국과 미국, 일본, 이 세 나라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외로움, 정착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나 」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야 했고, 「 아무도 나를 이해 못 할 거라는 고립감 」에 빠지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좋은 리스너'가 되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자신을 닮은 캐릭터 '에스더버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누군가를 위한 좋은 리스너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를 위한 좋은 리스너가 되기로 결정한다.

 

늘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배려해야 했던 안테나를 '에스더버니'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기로 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도 자신의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의 내면에는 한 명의 에스더버니가 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수많은 버니들이 존재했고,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처음에는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했지만

모든 버니들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다양한 나의 모습을 즐기기로 했어요.

♥ 23

 

 

우리 속에도 너무 많은 '다른 나', 혹은 '낯선 나'가 존재한다.

내 속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당혹스러운 순간마저 마주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좀 부족하거나 밉더라도, 내 속에 숨어있던 또 다른 나를 너무 업신여기거나 모른체하지는 말자.

저자가 자신의 모든 버니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의 또 다른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부끄러운 나, 우울한 나, 상처받은 나를 더 다정하게 다독이며 안아줄 필요가 있다.

어떤 한 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 틀 속에 스스로를 꾸역꾸역 밀어 넣으려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

그것도, 이것도, 저것도 모두 나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나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우리는 모두들 자신 안에 또 다른 '나'를 가지고 있고, 그 '또 다른 나'가 늘 익숙하거나 친숙한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다.

'낯선 나'의 모습을 좀 더 똑바로, 좀 더 다정히, 좀 더 깊이 바라보며 스스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 사이에 좀 더 나은 '나'가 되어있지 않을까.

 

 

 

 

 

느리게 가더라도

나답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어요

 

속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인생을 살아가는 중이에요.

움푹 파인 곳에 떨어지거나

가장 길고 느린 경로로 가는 경우도 많지만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자 나만의 길인걸요.

 

♥38

 

 

 

불쾌한 상황에 나를 맞추지 말아요.

 

 

날 미워하지 말아요

 

 

하지만 내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요

♥140

 

 

 

 

 

무엇을

가장 많이 보는지가 중요해요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

자꾸만 울적해지는 주말에는

내 마음에 좋은 것들을 공급해야 해요.

가끔씩 내 머릿속에 무엇을 넣는가를 확인했으면 해요.

보는 대로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무엇을 제일 많이 보았나요?

 

♥167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무엇을 가장 많이 보았는지 묻는 질문에 뜨끔해졌다.

내가 보는 대로 된다는 것, 내가 소비한 것이 결국 내가 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소비했던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아마 나처럼 뜨끔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내가 소비한 것이 결국 내가 되는 것이라면, 나는 좀 더 가치 있는 소비를 해야겠다.

내가 보는 대로 내가 되어진다면, 나는 좀 더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고, 좀 더 가치 있는 것들에 눈을 오래 두어야겠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 짧은 문장으로 너무 쉽게 우리에게 일러준다.

내가 오늘 보고, 듣고, 소비한 것이 결국 '나'가 되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허투루 살 수가 없는 건가 보다.

 

나는 이제 더 다정하고, 더 사랑스럽고, 더 따뜻한 것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

 

 

 

 

 

모든 것을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늘 상대방의 입장이 되고는 했어요.

하지만 그런 나의 행동이 내 건강을 해친다는 걸 알았어요.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나의 행동을 끝없이 수정하다가는

결국 내가 사라져버리고 말아요.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내버려 둬야만 해결되는 일도 있고,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다른 관점을 갖고 다시 마주할 때서야 해결되는 일도 있어요.

 

♥79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사랑스러움과 다정함이 듬뿍 담긴 책, '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지칠 때마다 초콜릿처럼 꺼내 먹고 싶은 책이다.

혀끝에서 녹아들며 지친 나를 다독여줄 것만 같은, 잔뜩 다정한 책.

 

어른에게도 이렇게 손끝의 온도에 사르륵 녹아버린 것 같은 달콤한 위로가 필요하다.

 

 

 

 

 

'잘'하는 것보다

'계속'하는 게 중요해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세요.

계속 꿈꾸세요.

계속 노력하세요.

계속 찾으세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잘'이 아니라 '계속'이에요.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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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1일 1페이지 시리즈
데이비드 키더.노아 D. 오펜하임 지음, 허성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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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간접 경험을 얻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기를 희망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좁은 독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읽는 책의 대부분이 소설과 시, 에세이에 국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책을 왜 읽느냐고 물으면, 첫 번째가 재미있어서이고, 두 번째가 감정의 공명을 원해서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왜 읽느냐고 물으면, 누군가의 삶을, 누군가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어서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되어 책 속에서 들려주는 누군가의 속내를 들어야만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다양성을 나는 책을 통해 경험하고, 그렇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긍정하게 되고는 한다.

 

그런 내게 지식을 위한 책 읽기는 솔직히 좀 멀리 떨어진 이야기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나의 독서 편식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만 보고 읽는 게 뭐가 나쁘냐고 자기 합리화를 했었는데,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비단 누군가의 삶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지식들이 책을 통해 오랜 시간 쌓이고 전해져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전해진 지식과 현명함으로 인해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굳건한 것을 믿는다.

 

나도 이제 감성적인 독서에서 조금 다른 발을 옮겨 볼까 싶다.

나의 무지가 부끄러울 지경은 아니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더 알게 된다면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니까 나처럼 갑작스런 독서 패턴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에게 아주 필요한 책을 발견했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일단 제목부터 부담이 적다.

하루에 한 페이지만 읽어도 된다면, 어떤 어려운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게다가 역사, 문학, 미술, 과학, 음악, 철학, 종교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쌓을 수 있다면 더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제목에서 진입장벽을 확 낮춰주니, 책을 선뜻 손에 들기가 쉬워졌다.

 

 

 

 

 

 

이 책의 처음은 마치 고심해서 어떤 시작을 고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파벳.

그러니까 문자의 기초다.

책을 읽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

바로 거기서부터 책은 시작되고 있다.

 

지식백과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각각의 글들은 전문가의 감수를 거쳐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연달아 쭉 읽다 보면 약간의 딱딱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매 페이지마다 전혀 다른 분야가 등장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완충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역시나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즐기는 분야를 훨씬 더 재미있고 편하게 읽었다.

문학과 미술 분야는 기초적인 지식부터 작품과 건축물, 작가와 화가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한 페이지에 등장했던 작품은 실제의 미술품으로, 화가는 그 화가의 다른 그림들로 나를 인도했다.

책을 좋아해서 문학 작품은 그래도 많이 알고 있다고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지식들로)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작품과 작가들 중 낯선 이름들이 꽤 많아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한 권의 책이, 아니 짧은 한 페이지의 지식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 줄 것만 같다.

 

철학은 어려운 분야지만 늘 읽을 때마다 흥미가 있는 분야라서 관심 있게 읽었다.

물론 역시나 호락호락한 분야는 아닌지라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라고 1일 1페이지라는 제목을 붙여 놓은 것이겠지만.ㅎ

 

생각지 못하게 의외로 내게 어렵게 느껴졌던 분야는 과학이었다.

신기하고 재밌게 읽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읽고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부분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도 있고, 생소한 것도 있었다)

과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라 읽는 순간 글로는 이해가 되었다 해도 지식으로서 나에게 남겨지기엔 좀 모자랐던 것 같다.

원론적인 설명 보다 좀 더 쉽고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의 설명이 내게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관심이 있는 분야는 좀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반면, 무지에 가까울 만큼 관심이 없던 분야에 대해서는 내 것으로 흡수되는 느낌이 현저히 흐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한 번에 이 모든 지식을 내게 몰아넣으려는 욕심보다는 제목처럼 천천히 차근차근 하루하루 읽어 나가는 독서법이 좀 더 좋을 것 같다.

한 페이지는 좀 적고 하루에 서너 장쯤, 내 것으로 스며들 만큼씩 읽기를 추천한다.

 

무엇보다 바쁜 직장인들이 짬짬이 이동시간에 읽기에 너무 좋을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짧은 시간만큼 읽고, 또 다음날 그다음 장을 읽어도 전혀 무관하니까 말이다.

나는 곁에 두고 매일 밤 하루 한 장씩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서평 때문에 급하게 읽느라 놓친 부분들을 천천히 다시 곱씹어 봐야겠다.

너무 방대한 지식의 양을 짧은 시간에 읽어내느라 제대로 저장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

이 책 속의 지식들이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매일매일 느린 독서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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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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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은 명성이나 해석을 무조건 신뢰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박물관의 오디오 가이드와 안내 책자, 전시장 벽에 붙어 있는 설명이나 해석을 도와주는 온갖 자료에 의지한 채 자신의 눈으로 보려는 의지는 없는 관람자의 잘못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그게 걸림돌이 되어 무감각한 눈으로 그림을 본다. 스스로의 감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온갖 자료에만 의지하는 게으른 관람자가 되어 버린다.

프롤로그 中 _

 

 

 

 

그림은 시와 같다.

사과를 그렸다고, 우리가 사과만을 체감하는 것은 아니다.

사과의 색, 맛, 향, 그리고 그 그림 속 사과만이 가지는 '분위기',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그림을 통해 체감하게 된다.

때로는 사람에 따라 사과에 관한 어떤 기억들을 불러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같은 그림 앞에 서서,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슬프고, 괴롭고, 그리울 테고, 누군가는 평온하고, 담담할 수도 있다.

몹시도 주관적인 해석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감상'이라는 행위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유명한 작품들은 아주 많은 정보로 범람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그 그림의 역사와 배경, 그에 얽힌 이야기, 심지어 그 그림의 은유적 뜻까지 아주 자세하게 접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누군가 속삭여주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오로지 그림과 나만의 어떤 교감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백지의 상태에서, 정보를 배제한 채 그림을 바라볼 때, 그림과 나 사이에 싹트는 우리만의 은밀한 감정들.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감각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권하는 백지상태에서의 그림 감상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자면,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시간 Time, 관계 Association, 배경 Background, 이해하기 Understand, 다시 보기 Look Again, 평가하기 Assess를 순서에 상관없이 거치고, 다음 단계인 리듬 Rhythm, 비유 Allegory, 구도 Structure, 분위기 Atmosphere를 적용해서 그림을 해석하고 이해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그림을 직접 한 페이지씩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편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대단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책을 읽고 그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

 

특히나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그림들에서는 그가 안내해주는 방식이 탁월한 효과를 발휘해 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풍경화나 정물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가 설명하고 있는 감상법에서 '구도'나 '분위기'에 좀 더 많이 치우친 감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역사화나 종교화를 바라볼 때는 그의 접근법이 확연하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그림 속 인물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배경, 관계를 이해하고, 비유와 리듬을 찾아낼 수 있다면, 어떤 그림을 바라보더라도 '명작'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움츠러드는 소극적 자세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들에겐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따르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고전 미술 작품, 특히 20세기 전의 화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유독 종교화와 역사화가 많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들이 많고, 결국 그것은 상상화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은유와 풍자의 서사가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결국 성경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그림 자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한 일처럼 여겨진다.

특히나 종교화와 역사화에서는.

 

시간과 관계, 배경, 이 세 가지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알아야 하고, 그림 속 인물들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배경이 되는 사건이 무엇인지, 혹은 배경이 되는 책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면 그다음부터는 개별적인 이해의 바다가 펼쳐진다.

거기서부터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어떤 분위기를 읽고, 어떤 은유를 발견하고, 어떤 리듬을 찾게 될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내가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대로 그림은 그 의미가 되어 준다.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감각한다는 점에서 역시나 그림은 시를 닮았다.

'저항시'들을 배우며, 무엇이라도 '조국'으로 해석하도록 강요당했던 학창시절.

시는 재미없었다.

그저 어렵고 난해하고 지루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강제된 해석만이 옳다면 그것이 입시교육과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그냥 외우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인의 감상을 달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감정과 리듬과 감각으로 나만의 시를 읽고, 나만의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나와 그림의 교감, 나와 시의 교감.

그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특히나 나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분위기'와 '감정'에 치우친 감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오로지 감정에 집중한 그림 감상을 하는 나에게 '혼자 보는 미술관'은 새로운 방식의 그림 감상을 제안한다.

시대적 지식이 부족한 내게 고전주의 화가의 그림은 여전히 조금 어렵게 읽힌다.

그렇지만 인상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그림들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이해는 분명 내게 도움이 되었다.

고전 미술을 바라볼 때 그가 일러준 방식을 따라서 천천히 접근해 본다면 좀 더 쉽게 그림에 가닿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스스로의 자발적 감각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서 같은 '혼자 보는 미술관'이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눈도 좀더 넒어졌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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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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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_ p.034

 

 

 

언제나 여름인 남태평양의 외딴섬 보라보라.

그곳에는 넘치는 자연이 있다.

쏟아지는 별과 까마득한 밤하늘과 아름다운 석양과 부드러운 바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열대의 자연에서 풍요롭게 열리는 과일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넘치게 허락하는 만큼 문명의 혜택은 느리다.

종종 혹은 자주 정전이 되고, 내가 사고 싶은 것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것만을 살 수 있는 곳.

인터넷 비용은 비싸고, 무엇이든 천천히 느리게 채워지고 소비되는 곳.

문명으로부터의 어떠한 결핍이 바로 보라보라섬의 진짜 매력이라고 믿는 부부가 그곳에 살고 있다.

정전이 되면 초를 켜고, 냉동식품을 꺼내서 먹어치우고, 캄캄한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실컷 포식하며 그들은 보라보라섬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나는 그런 섬의 생활을 이미 알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뚜렷이 지니고 있는 한국의 어떤 섬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섬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섬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의 불편과 문명의 결핍으로부터의 아쉬움을 몸소 겪으며 살았다.

인터넷과 택배의 눈부신 성장으로 인해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섬에서도 예전 같은 불편은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살던 그 옛날엔 딱 보라보라섬에서의 생활 같았다.

기후가 달라서 열대의 느긋함은 없었을지 몰라도, 섬 생활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닮은 모습을 지닌 것 같다.

 

특히나 여름 내내 바다에 둥둥 떠다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느 밭에서나 자라던 싱싱한 채소와 곡식들도.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던 바다 위로 지는 석양,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땅을 모두 아름답게 적시던 그 빛깔.

이국의 보라보라 하늘과 우리나라의 하늘은 또 다른 색감을 지니고 있을 테지만, 읽으면서 내내 나는 이국의 어떤 나라의 바다와 내가 자랐던 작은 섬의 바다를 함께 떠올렸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이국적이면서도, 어릴 적 향수를 함께 불러일으켰다.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막상 한집에 살았을 때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으면서, 사소한 일로 미워하고 지겨워했으면서. 가족이란 정말 뭘까. 사랑하고 미워하는, 힘 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약이고 병인 사람들.

_ p.269

 

 

 

멀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까이에선 도저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 물어선 후에야 그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족인 것 같다.

때로는 그 무게에 눌려 숨이 막히다가 어떤 날에는 나를 세상에 발 딛게 해주는 무게에 감사하기도 한다.

짐 같고 보물 같고, 병 같고 약 같은 그런 존재.

너무 가까워서 때로는 더 큰 상처가 되고, 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지만, 멀어지면 가장 따뜻한 이불이었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게도 가족은 그런 존재였었다.

 

 

'할머니'라고 쓰고, 제일 처음 써진 단어는 '미안해'였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한 번도 할머니가 필요한 적이 없었다. 아마 할머니는 어른이 된 내가 필요했을 텐데, 그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려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달아나고 싶었고, 끝내는 성공했다. 그래놓고 사과를 하면 안 되는 거였다. 할머니가 용서해줄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용서했으니까. 늘 그랬으니까.

_ p.194~195

 

 

나는 '엄마'라고 쓰고, '미안해'라고 쓴다.

엄마가 아프고부터는 늘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늘 그렇다.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만큼 어른이 아니었던 나는 엄마를 잃고, 뒤늦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이 된 내가 필요했을 엄마에게서 나는 도망친 것만 같다.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서, 자꾸 마음이 아리다.

그럼에도 자꾸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은, 엄마가 용서해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그랬으니까.

매번 자식들을 용서했으니까.

그리고 자식이란 존재는 늘 이기적이니까.

 

책을 읽다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마음이 일렁였다.

바다 건너 멀리멀리에 살아서 볼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죽음으로 떠나버린 엄마와 나의 관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질 수 없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참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내가 만든 가족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기 같은 것이, 내가 떠나온 가족으로부터 남겨지는 것 같다.

 

 

 

 

 

어느 새벽, 자려고 누워 있는 내게 남편이 '친구 스위치'를 켜달라고 했다. 우리 부부의 작은 약속이었다. 한 사람이 요청하면, 아내나 남편의 역할은 모두 내려놓고 친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친구란 대화를 하는 동안 절대 객관적으로 판단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어주고, 격하게 공감해주며, 무조건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A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힘들게 해"라는 말에 평상시라면 "너도 잘못한 부분이 있네"라든지 "이렇게 해봐"와 같은 판단과 조언이 가능하다. 그런데 친구 스위치를 켜게 되면 할 수 있는 말은 "저런, A가 똥(실제로는 더 심한 말을 한다)이네. 너무 힘들었겠다. 걔가 너한테 그러면 안 되지"와 같은 추임새들뿐이랄까.

_ p.042~043

 

 

 

지금 내게 가장 간절한 것은 바로 "친구 스위치"다.

제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렇게 해", "내가 봤을 땐 말야~" 같은 말들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에게 원한 것은 해결책이나 충고,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그저 '속상했겠다'라는 위로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나는 분명 누군가의 '속상함'에 '공감'하며 '괜찮냐고', '많이 속상하겠다'고 대꾸를 하는데, 어째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자기식의 잣대로 재단하고 결정해서 내 감정까지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객관적이고 현명한 사람이고 싶은 그 사람의 욕구는 다른 곳에서 충족하면 좋겠다.

나의 위로는 그렇게 달게 삼켜놓고, 뱉어내는 건 죄다 현명함을 가장한 날카로운 악의뿐이다.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상대방의 상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막말에 가까운 악의들)

나는 그저 '위로'하고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사람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위로를 바라는 사람에게 자기식대로의 행동 패턴을 강요하고, 단정 지어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지쳤다.

그것이 가까운 사이라면 더더욱.

 

'친구 스위치'

부부 사이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너무 쉽게 남의 상처에 칼질을 하는 사람들의 무수한 혀에 '친구 스위치'를 달아주고 싶다.

정말 위로가 필요한 날, 제발, 닥치고, 위로만 해주는 사람이 ... 우리에겐 간절하니까.

충고도 조언도 모두 좋다.

하지만 그런 건 누군가 상처받은 날에 상처 위에 뿌리는 소금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는 품, 그런 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남편과 나도 '친구 스위치'를 서로에게 달아줘야겠다.

조언이 필요한 날도 있지만, 살다 보면 위로가 필요한 날들이 더 많으니까.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는 말이 무책임이 아니라 묵묵함으로 들리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스칼렛의 대사가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이 말도 내게는 희망의 언어로 들린다.

내일 일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열심히 제대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로 들리니까 말이다.

 

내일 일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 모른다.

그럼에도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느라 오늘 하루를 허비해버리는 일이 너무 많다.

나 또한 가끔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오늘 하루를 소진해버리고 만다.

 

어떤 내일이 와도, 오늘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내일은 그냥 내일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오늘을 묵묵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삶은 그런 것이다.

내일에 무엇이 담겨있든, 오늘에 온전히 집중하며,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삶.

보라보라에서 건져올린 행복은 바로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는 삶이 아닐까 싶다.

지금에 온전히 머무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바다에 떠 있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처음이었다. 내가 지구를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그것도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보라보라섬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 그러니까 섬, 바다, 만타레이 같은 자연은 그럴 의도가 없다. 아름다울 때 아름다우려는 의도가 없고, 모든 것을 앗아갈 때도 앗아가려는 의도가 없다. 그저 그곳에 늘 있다.

_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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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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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네들은 환상을 부풀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걸세. 멋대로 부풀린 환상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게 될걸세."

___ p.196

 

 

 

허물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생겨났다.

피부가 허물로 덮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그래서 도시는 D 구역으로 그들을 격리하고 도심부에 커다란 방역센터를 세워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치료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각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T 프로틴'을 만들어 공급하고, 그럼에도 허물에 점령당해버린 사람들은 방역센터에 입원해서 강제로 허물을 벗는다.

하지만 허물은 끝없이 다시 생겨난다.

그리고 허물을 가진 사람들은 허물 때문에 외면당하고, 격리되고,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그들에겐 이 재난 같은 질병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을 꿈꿀 수 있는 '소망'이 필요했다.

그게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커다란 뱀 '롱롱'이라고 해도.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다.

하지만 산사태로 인해 사설 동물원이 무너지면서 그녀 또한 직장을 잃고 거리의 부랑자가 되었다.

허물로 인해 다시 직장을 얻기가 어려웠다.

T 프로틴을 살 돈이 없으니 허물을 나날이 늘어가고 단단해져갔다.

참을 수 없는 가지러움과 고름과 피가 새어 나오는 허물을 짊어지고 사는 삶은 절망이었다.

결국 무성한 소문에 싸여있는 '방역센터'에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허물을 벗는 치료를 받으며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도시에는 전설이 있다.

'롱롱'이라는 뱀이 허물을 벗으면 그것을 본 사람들의 허물이 함께 벗겨지고 영원히 허물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아주 예전에 일어났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롱롱'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환상 속의 용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롱롱'만큼 큰 뱀을 보았다고 말하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뱀을 잡으러 가서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 허물을 벗어던지자고 제안하는 다른 남자의 부추김을 받는다.

그녀는 파충류 사육사다.

그 뱀이 '롱롱'이든 아니든 그렇게 커다란 뱀이 있다면 그녀는 그 뱀을 살리고 싶었다.

 

방역센터에서 허물을 벗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들은 또다시 허물이 자라기 시작하자 뱀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궁의 아궁이에서 만난 믿을 수없이 커다란 뱀, '롱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 뱀을 그녀는 D 구역으로 데리고 온다.

허물을 벗을 수 있다는 1%의 희망만으로도 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니까.

 

 

 

 

이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고 존재하게 될지도 모를 미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들은 SF적인 거짓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쩐지 현실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이런 사건이 우리 삶에서 정말 벌어지지 않을 환상 속 이야기이기만 할까?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은 편리함과 긴 수명을 보장해줬지만, 또한 우리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독을 품고 있다.

무지한 사람들은 정부가 우리를 위해 배려할 때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과 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없고, 절망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이 아주 자그마한 희망과 호의에도 감동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우리의 희망을 이용해, 우리를 더한 절망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역 센터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언제까지나 개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발을 멈춰도 안되고, 개발에 성공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이 도시의 생산 동력은 시민들이 허물을 입고, 허물을 벗는 데서 나옵니다. 백신이 개발되면 이 도시는 생산 동력을 읽게 되는 겁니다."

___ p.153

 

 

 

 

 

"Big brother is watching you"

나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문장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은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보여주면서도 소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대적 희망이 아닌, 간절한 소망.

이루어질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은, 이루고 싶은, 꿈꾸고 싶은 소망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작은 바늘구멍이 모이고 모여, 이 잿빛 디스토피아를 찢고 나갈 수 있는 구멍의 시발점이 되어준다.

소망은 환상처럼 보이지만, 너무 작고 무력해 보이지만, 힘이 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놓지 않는다면 어쩌면 소망의 끝에 희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거움 속에 가벼움이, 사실 속에 환상이, 거짓 속에 진실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이 책은 마지막에서도 환상 속 유토피아만을 보여주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답답한 진실을 묵묵히 던져주고 있어 더 믿음직했다.

현실이 무거울수록 환상은 더 거세지는 법이니까.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결국 환상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좀 더 깨어 있어야겠다고,

좀 더 간절해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으로 남겨졌으니까.

 

 

 

*** 독자에게 보내는 작가님의 친필 메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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