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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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가해자의 가족의 삶.

그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범죄를 바라볼 때 늘 피해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극히도 당연하게 피해자를 동정하고, 피해자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며 분노하고 슬퍼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가해자는 악, 피해자는 선을 대변하게 마련이라 우리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善'의 카테고리에 우리를 집어넣어 버린다.

자신을 악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과연 우리는 매번 피해자 일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삶이 나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상황은 정말 없을까.

스스로가 가해자가 되지 않더라도 가족 중 누군가가 바로 그 끔찍한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일은?

그렇다.

나는 늘 피해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가해자의 카테고리 안에 이미 묶여있는 사람이라면?

범죄를 저질렀고, 그 범죄가 살인이라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면.... 우리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죽음을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것인지.

지독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매일매일 누군가의 목숨을 기억하며 견디고 참회하고 반성하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인지.

심지어 그것이 내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저지른 범죄라면.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하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나오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가 온다.

교도소에 있는 형으로부터.

형은 나오키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일했고, 그래서 몸이 망가졌고, 더 이상 돈을 벌기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동생의 장래를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그것이 누군가의 돈을 훔치는 일이라 해도.

최악의 상황과 내일을 꿈꿀 수 없는 가난, 아픈 몸, 그 모든 것이 형을 범죄로 내몰았다.

무책임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 순간, 그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이 없었다.

최악이 최악을 불러오고, 다시 마주친 최악이 더 극악한 최악을 불러와 그의 인생을 끝없는 나락으로 내동댕이 쳤다.

그렇게 형은 어쩌다 보니,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결국에 살인자가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동생을 위해 훔쳐야 했던 남의 인생(돈) 또한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나오키는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의 동생이 되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형은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고,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오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형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로부터 질타와 외면을 받아야 했다.

새로운 희망을 만나면 여지없이 꺾여야 했고, 사랑도 범죄자의 동생이라는 이름으로는 가질 수 없었다.

꿈도, 사랑도, 희망도, 모든 것을 매번 포기해야 했던 나오키.

그는 그 굴레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니까. 자신의 잘못이 아니니까.

하지만, 진짜 그럴까.

가해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일은 숙명처럼 그 죄를 함께 나눠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해자 혼자만의 속죄로는 도저히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슬픔을 애도할 수는 없을 테니까.

불합리함 속에서 고통을 겪고, 차별받는 가족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의 깊이를 제대로 인지하도록 사회는 더욱더 가혹해야 하는 걸까.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한 책이다.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 그리고 우리들의 시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이 그러하듯, 이 책 또한 가독성이 무척 좋은 책이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꼬여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렵다.

한참을 생각하고 더듬어도 정답을 알 수가 없다.

책은 정답을 일러주지 않는다.

그저 묻고 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라면 어떨 것 같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가.

너무 어려운 문제를 너무 쉽게 내주고는 책은 끝이 났다.

읽는 우리들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이라는 건 만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판타지라는 걸 우리들은 이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도덕을 오지선다형으로 배운 우리들은 자꾸만 도덕적인 정답에 동그라미를 친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1번도 2번도 3번도 4번도 틀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1번도 2번도 3번도 4번도 5번도 모두 틀린 답 같다.

참 어려운 문제인데 누군가가 이미 정해준 정답을 달달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문득 내가 가지고 있던 '도덕적 잣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죄를 옹호하고 싶진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은 용납되지 않을 범죄다.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은 또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고 통곡하는 삶을 살게 되겠나를 생각해보면 용서라는 게 불가능해진다.

이해도 묵인도 어렵다.

피해자의 가족을 생각하면

가해자 가족의 차별당하는 삶에 대해 어떤 동정도 보내고 싶지 않다.

차디찬 냉대를, 차가운 냉소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옳은가에 대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편지'는 바로 그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있는 책이다.

각자의 답이 모두 다를 테고, 그 누구의 답도 틀리지 않다고 믿는다.

때론 1번이 정답이기도 했다가 어떤 날엔 2번이 정답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도덕적 가치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임에 확실하지만 ( 바로 그 도덕성이 우리를 죄짓지 않도록, 타인의 삶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멈춰주는 브레이크일 테니까) 가끔은 관대할 필요도, 다른 답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귀 기울여 본다.

게이고~ 내게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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