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다.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점심 식사를 마쳤다. 봄바람 향기가 난다. 즐겁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엄습한다. 오늘도 평소처럼 사람들과 농담을 하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을 먹어야 하고, 오히려 힘든 일이 있으면 밥을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리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는다.
아침에 엄마와 언쟁이 있었다. 언쟁이라기보단 무차별 공습 즈음 되었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꼭 쥔 채로 나는 거의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항상 무한히 자유롭기를 갈망해 왔는데 막상 무한한 자유를 주겠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심장 한 켠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버렸고 가슴은 허했다.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시험문제로도 종종 나왔던 것이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란 것도. 하지만 대개 그렇듯 머리로 이해하는 정답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돌아보면 지금껏 나는 상당히 순종적이면서 고분고분한 딸이고 동생이었다. 겉으로는 고집을 부리고 반항을 했지만 그건 그저 결정 이전의 하찮은 모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생의 고비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한 번도 내 뜻에 따라 결정해 본 적이 없었다. 크게는 학교 진학 문제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쉬는 날 누군가를 만나는 일까지 일일이 가족과 의논을 거쳤고 허락을 받은 이후에 실행에 옮겼다. 나는 오래도록 그런 과정에 매우 익숙해 있어서 불편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엄마는 네 마음대로 했다가 일이 틀어졌을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너 혼자 져야 한다고 어릴적부터 누누히 강조하셨고 나는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왠지 막막하고 두려워서 혼자 버텨보던 과정 중에도 종종 엄마의 품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컴백하곤 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링 위로 수건을 던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아, 도와줘요.
그 이후 가족들은 상처 입은 나를 보듬고 내가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해 주면서 나에게 다짐을 받곤 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내 마음대로 혼자서 결정하지 않기를. 나는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일러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승낙을 하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편하고 순조로왔다. 실수는 드물었고 실수를 하고나서도 멋지게 넘기는 방법을 익혔으며 꼼꼼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간혹 엄마가 싫어할만한 일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면 엄마가 물어오기도 전에 늘 먼저 무릎을 꿇고 참회를 했다. 누구와도 상관 없이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스스로의 판단이나 느낌보다는 나를 향한 가족들의 표정이나 염려에 더 많이 흔들리곤 했다. 어떤 일에 마주했을 때 할 수 있을거야, 라는 확신은 잠깐 뿐이었고 너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한다, 너는 똑똑하고 튼튼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라는 주술과도 같은 엄마 말씀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빙빙 맴돌곤 했다. 그런데도 참으로 모순인 것은 나는 늘 범상치 않은 상황, 넘기 힘든 산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 그 점이다. 나 자신 여리고 무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도 귀가 닳도록 이야기 하는데도 나는 언제나 강한 사람도 피해가고 싶어하는 평범하지 않은 길, 어려운 길을 자초할 때가 많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길, 그런 상황, 그런 사람에게 더 애정을 가지게 되고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 한동안 조용히 고분고분 지내다가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으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곤란한 상황에 심신을 내맡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같은 풍경이 또 다시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불행해지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살아오질 않았다. 언제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보듬었고 운명공동체처럼 똘똘 뭉쳐 지냈다. 이미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한 오빠도 중요한 사항을 의논할 때는 아내 이전에 여전히 부모님부터 찾는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자타가 인정할만큼 현명한 분이고 피로와 긴장으로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절대 허투루 판단을 내리실 분이 아니다. 오빠와 내가 능력 이상을 발휘하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공헌이 크다. 나는 지금껏 그런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며 푹신 기대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원하는 결정을 밀고 나가려면 엄마로부터의 독립 이외엔 방법이 없게 되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어릴 때처럼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막막함이나 두려움 때문에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나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나와 분리됨으로써 엄마가 느끼게 될 상실감 내지 배신감, 그리고 비록 떨어져 지낼지언정 마음 속으로는 더 간절하게 나를 향해 마음을 쓰고 염려하실 게 분명한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당신 걱정은 말라고,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독립한 이후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내가 내 결정을 접고 지금처럼 지내길 바라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이미 훌쩍 커버린 딸에게 회초리를 들 수도, 자존심 다치는 심한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엄마도 무척 괴로우실 것이다. 오로지 결정은 나에게 달렸다.
내 뜻대로 밀고 나가서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의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지냈던 가족의 품을 떠나서 과연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해지든 불행해지든 뒷감당을 충실히 해내며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마 내 삶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엄마의 품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혼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독립도 서슴지 않는 최초의 선택이 될 것이다. 엄마한테 나 혼자서도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예전과는 달리 골똘하게 무언가에 신경 쓰다보면 금방 지쳐버리는 엄마에게 이 무슨 못되먹은 짓거린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내 인생은 내꺼라지만 지금껏 수혜받은 것은 싸그리 무시하고 이제부터 내 인생이니 내멋대로 하겠다니 과연 그래도 되나 싶다. 나는 정말 나의 미래는 두렵지 않다. 멋모르고 철모르는 나는 이 길이 내 길인가 보다 하고 미련하게 그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은 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가족들이 나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일이 가슴 아프고 두려울 뿐이다. 그리고 과연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할만한 선택인가, 지금 고민에 빠져있다. 정말로 어찌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