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새소리

- 이 성 복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 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이성복 시집, << 아, 입이 없는 것들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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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로 내어놓은 화분들.

봄빛으로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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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시간을 가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 가려져서 그저 대강의 이해 선에서 끝나버린 것이 사실이다.

win-win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위해서 목소리를 낮추고 자중할 시간인 것 같다.

이만큼 온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더욱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 어느 때 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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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다.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점심 식사를 마쳤다. 봄바람 향기가 난다. 즐겁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엄습한다. 오늘도 평소처럼 사람들과 농담을 하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을 먹어야 하고, 오히려 힘든 일이 있으면 밥을 더 많이 먹어야 하고, 그리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죽지는 않는다.   

아침에 엄마와 언쟁이 있었다. 언쟁이라기보단 무차별 공습 즈음 되었다. 커피잔의 손잡이를 꼭 쥔 채로 나는 거의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항상 무한히 자유롭기를 갈망해 왔는데 막상 무한한 자유를 주겠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심장 한 켠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버렸고 가슴은 허했다. 자유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건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시험문제로도 종종 나왔던 것이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란 것도. 하지만 대개 그렇듯 머리로 이해하는 정답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돌아보면 지금껏 나는 상당히 순종적이면서 고분고분한 딸이고 동생이었다. 겉으로는 고집을 부리고 반항을 했지만 그건 그저 결정 이전의 하찮은 모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생의 고비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한 번도 내 뜻에 따라 결정해 본 적이 없었다. 크게는 학교 진학 문제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쉬는 날 누군가를 만나는 일까지 일일이 가족과 의논을 거쳤고 허락을 받은 이후에 실행에 옮겼다. 나는 오래도록 그런 과정에 매우 익숙해 있어서 불편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엄마는 네 마음대로 했다가 일이 틀어졌을 경우 책임은 고스란히 너 혼자 져야 한다고 어릴적부터 누누히 강조하셨고 나는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왠지 막막하고 두려워서 혼자 버텨보던 과정 중에도 종종 엄마의 품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컴백하곤 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링 위로 수건을 던지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아, 도와줘요. 

그 이후 가족들은 상처 입은 나를 보듬고 내가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해 주면서 나에게 다짐을 받곤 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내 마음대로 혼자서 결정하지 않기를. 나는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가 일러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승낙을 하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편하고 순조로왔다. 실수는 드물었고 실수를 하고나서도 멋지게 넘기는 방법을 익혔으며 꼼꼼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간혹 엄마가 싫어할만한 일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면 엄마가 물어오기도 전에 늘 먼저 무릎을 꿇고 참회를 했다. 누구와도 상관 없이 이건 정말 아니다, 라는 스스로의 판단이나 느낌보다는 나를 향한 가족들의 표정이나 염려에 더 많이 흔들리곤 했다. 어떤 일에 마주했을 때 할 수 있을거야, 라는 확신은 잠깐 뿐이었고 너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한다, 너는 똑똑하고 튼튼한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라는 주술과도 같은 엄마 말씀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빙빙 맴돌곤 했다. 그런데도 참으로 모순인 것은 나는 늘 범상치 않은 상황, 넘기 힘든 산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간다는 그 점이다. 나 자신 여리고 무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도 귀가 닳도록 이야기 하는데도 나는 언제나 강한 사람도 피해가고 싶어하는 평범하지 않은 길, 어려운 길을 자초할 때가 많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길, 그런 상황, 그런 사람에게 더 애정을 가지게 되고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 한동안 조용히 고분고분 지내다가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으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 곤란한 상황에 심신을 내맡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같은 풍경이 또 다시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불행해지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이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살아오질 않았다. 언제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보듬었고 운명공동체처럼 똘똘 뭉쳐 지냈다. 이미 결혼을 해서 독립을 한 오빠도 중요한 사항을 의논할 때는 아내 이전에 여전히 부모님부터 찾는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자타가 인정할만큼 현명한 분이고 피로와 긴장으로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절대 허투루 판단을 내리실 분이 아니다. 오빠와 내가 능력 이상을 발휘하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공헌이 크다. 나는 지금껏 그런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며 푹신 기대어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원하는 결정을 밀고 나가려면 엄마로부터의 독립 이외엔 방법이 없게 되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어릴 때처럼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는 막막함이나 두려움 때문에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나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나와 분리됨으로써 엄마가 느끼게 될 상실감 내지 배신감, 그리고 비록 떨어져 지낼지언정 마음 속으로는 더 간절하게 나를 향해 마음을 쓰고 염려하실 게 분명한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당신 걱정은 말라고,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독립한 이후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내가 내 결정을 접고 지금처럼 지내길 바라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이미 훌쩍 커버린 딸에게 회초리를 들 수도, 자존심 다치는 심한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엄마도 무척 괴로우실 것이다. 오로지 결정은 나에게 달렸다.

내 뜻대로 밀고 나가서 행복해질 자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의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지냈던 가족의 품을 떠나서 과연 독하게 마음을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해지든 불행해지든 뒷감당을 충실히 해내며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마 내 삶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엄마의 품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혼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해 독립도 서슴지 않는 최초의 선택이 될 것이다. 엄마한테 나 혼자서도 정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예전과는 달리 골똘하게 무언가에 신경 쓰다보면 금방 지쳐버리는 엄마에게 이 무슨 못되먹은 짓거린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내 인생은 내꺼라지만 지금껏 수혜받은 것은 싸그리 무시하고 이제부터 내 인생이니 내멋대로 하겠다니 과연 그래도 되나 싶다. 나는 정말 나의 미래는 두렵지 않다. 멋모르고 철모르는 나는 이 길이 내 길인가 보다 하고 미련하게 그 길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은 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가족들이 나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일이 가슴 아프고 두려울 뿐이다. 그리고 과연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할만한 선택인가, 지금 고민에 빠져있다. 정말로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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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엔 이번에 졸업한 아이들과 고기를 먹었다. 어찌나 잘들 먹어대는지 나중에 아들 삼형제만 낳으면 단번에 집안 거덜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맛있게 잘 먹는 자식들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일까. 더 이상 고기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고작 2년차 샘이지만 올해 만났던 아이들에겐 미안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병가 이후에 돌아간 교실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이후의 전쟁터 같았지만 나는 내 몸 돌보기에도 급급해 교실이나 반 분위기의 재정비에 제대로 힘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뭔가 미진한 상태로 어영부영 졸업을 맞게 되었는데 사내 아이들이라 그런가, 나에 대해 분명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우리 때문에 힘드셨죠? 라는 T의 말에 나 때문에 힘들었지?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사실 너희들 보다는 나의 건강과 나의 연애에 훨씬 더 애를 쓰고 공을 들였단다. 그리고 미안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발령 첫해 아이들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규정짓고 열정을 쏟았던 것에 비해 작년엔 아이들과의 만남을 단지 '스치는 인연'이나 '하나의 과정' 정도로 밖엔 여기지 않았다. 나로써는 덜 상처 받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오히려 상처보다도 더 깊게 오래 남을 것 같다.

어제 정오부터는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샘들과의 송별회가 있었다. 학교란 곳은 매년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누군가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웃으면서 담담하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은 같은 지역 내에서 또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인연인 셈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만났던 박 선생님은 도관 신청을 내셔서 고향인 경북으로 가게 되셨다. 나와는 발령 동기인데 비슷한 시간에 교육청에 도착, 서로 뻘쭘하니 쇼파에 앉아 학교에서 픽업해 가기를 기다렸던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04년 발령동기들은 다들 타향살이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뭉쳤고 결국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하나 결성해 꾸준히 만나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이 고향으로 가게 되신 것은 정말 잘된 일이지만 늘 먼저 연락을 해서 모임을 이끌고 부담 없는 성품으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일부러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곳으로 멀리 가신다니 참 아쉬웠다. 아마 같은 아파트 한 동에 살았던 최 선생님은 보내는 마음이 더욱 남다를 것이다. 최샘과 나는 조만간 불시에 박샘을 찾아가기로 공모했다. 언제나 몰래카메라 같은 충격을 갈망한다는 박샘. 어디 한 번 놀라 보시라. 흐흐. 아마 우리의 박 선생님은 특유의 어설픔과 귀여움으로 무지막지한 여고생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것이다.

밤새 싸댕기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보내다 보니 편도선이 다 부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너무 아프고 따가워 병원에 갔더니 세상에 이렇에 아픈 주사도 있나 싶은 주사를 한 방 놔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나서 술을 마시러 나가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약을 한 봉지 더 먹는 미친짓을 하다가 거의 혼수상태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목은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이 휑하니 좀 그렇다. 업무 마무리를 하려고 학교에 나와 있는 지금 옆자리가 썰렁하다. 박 선생님도 지금쯤 짐을 싸서 떠나셨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이 문득 쓸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목에 걸리고 마음에 걸리는 느낌, 그런 느낌으로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목이 아직도 따끔하다. 그만 가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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