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엔 이번에 졸업한 아이들과 고기를 먹었다. 어찌나 잘들 먹어대는지 나중에 아들 삼형제만 낳으면 단번에 집안 거덜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맛있게 잘 먹는 자식들을 보는 부모 마음이 그런 것일까. 더 이상 고기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여서 보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고작 2년차 샘이지만 올해 만났던 아이들에겐 미안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병가 이후에 돌아간 교실은 그야말로 폭격 맞은 이후의 전쟁터 같았지만 나는 내 몸 돌보기에도 급급해 교실이나 반 분위기의 재정비에 제대로 힘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뭔가 미진한 상태로 어영부영 졸업을 맞게 되었는데 사내 아이들이라 그런가, 나에 대해 분명히 서운한 감정이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밝게 웃으며 헤어졌다. 우리 때문에 힘드셨죠? 라는 T의 말에 나 때문에 힘들었지? 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사실 너희들 보다는 나의 건강과 나의 연애에 훨씬 더 애를 쓰고 공을 들였단다. 그리고 미안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발령 첫해 아이들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규정짓고 열정을 쏟았던 것에 비해 작년엔 아이들과의 만남을 단지 '스치는 인연'이나 '하나의 과정' 정도로 밖엔 여기지 않았다. 나로써는 덜 상처 받기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오히려 상처보다도 더 깊게 오래 남을 것 같다.
어제 정오부터는 다른 학교로 전근가시는 샘들과의 송별회가 있었다. 학교란 곳은 매년 이런 풍경에 익숙하다. 누군가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웃으면서 담담하게 헤어질 수 있는 것은 같은 지역 내에서 또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인연인 셈이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만났던 박 선생님은 도관 신청을 내셔서 고향인 경북으로 가게 되셨다. 나와는 발령 동기인데 비슷한 시간에 교육청에 도착, 서로 뻘쭘하니 쇼파에 앉아 학교에서 픽업해 가기를 기다렸던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04년 발령동기들은 다들 타향살이를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뭉쳤고 결국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하나 결성해 꾸준히 만나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이 고향으로 가게 되신 것은 정말 잘된 일이지만 늘 먼저 연락을 해서 모임을 이끌고 부담 없는 성품으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좋은 선생님 한 분이 일부러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곳으로 멀리 가신다니 참 아쉬웠다. 아마 같은 아파트 한 동에 살았던 최 선생님은 보내는 마음이 더욱 남다를 것이다. 최샘과 나는 조만간 불시에 박샘을 찾아가기로 공모했다. 언제나 몰래카메라 같은 충격을 갈망한다는 박샘. 어디 한 번 놀라 보시라. 흐흐. 아마 우리의 박 선생님은 특유의 어설픔과 귀여움으로 무지막지한 여고생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을 것이다.
밤새 싸댕기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보내다 보니 편도선이 다 부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너무 아프고 따가워 병원에 갔더니 세상에 이렇에 아픈 주사도 있나 싶은 주사를 한 방 놔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나서 술을 마시러 나가고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약을 한 봉지 더 먹는 미친짓을 하다가 거의 혼수상태로 잠이 들었다. 오늘은 목은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이 휑하니 좀 그렇다. 업무 마무리를 하려고 학교에 나와 있는 지금 옆자리가 썰렁하다. 박 선생님도 지금쯤 짐을 싸서 떠나셨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일이 문득 쓸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목에 걸리고 마음에 걸리는 느낌, 그런 느낌으로 헤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목이 아직도 따끔하다. 그만 가서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