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흔한 이별노래들론 표현이 안 돼.
너를 잃어버린 내 느낌은
그런데 들으면 왜 눈물이 날까.
거실 바닥을 닦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에 잠시 회상에 잠겼다. R.ef의 이별공식. 지금도 내 입술은 자연스럽게 흥얼흥얼. 권투선수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체육 선생님은 실기 시험으로 스포츠댄스? 에어로빅? 어쨌든 5분가량의 체조를 짜 오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친구 몇몇은 우선 배경음악부터 고르자 했고 나와 H가 FM라디오 덕후였던 덕분에 이런저런 노래들을 좀 아는 편이었다. 적당히 리듬감도 있으면서 후지지도 않는 이별공식으로 낙점. 안무를 짜는 과정에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며 삐지기도 했지만 틈만 나면 팔다리를 휘두르며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연습한 결과 우리 조는 ‘수’를 받았다. 체육선생님은 구성지게 잘 짰다면서 조회 시간에 단상에서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우리는 그 또래 여자아이들답게 꺄악, 어후, 도리도리, 요란법석 거절을 했다. 사실 나는 이제와 고백하건데 비 오는 체육시간을 기다리던 소녀였다. 뛰는 게 싫어서, 쥐뿔도 없는 권투선수 출신 체육선생님의 인생사가 듣고 싶어서. 단단하고 까무잡잡한 차돌멩이 같던 선생님의 입에서 팡세의 주옥같은 명언들이 막힘없이 흘러나올 때, 작지만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시골중학교의 나른해 빠진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볼 수 없는 정열과 의지가 번뜩일 때, 남몰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 것도 같다. 이제는 이름 석자도 잊었지만 영화 ‘코코’에서 이야기하듯 내가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한, 그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좀 더 나중에 선생님이 주로 결손 가정 아이들로 이루어진 권투부를 꾸려 지역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때 역시 선생님답다, 싶었다. 겸손한 인터뷰 내용도 여전했다. 나는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이었고, 공이나 던져주고 사라지는 몇몇 체육 선생님들에게 실망한 참이었고, 선생님 눈에 사랑스런 학생으로 보여질만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R.ef의 노래처럼 아련하고 따듯한 향수에 젖는다. 화창한 날에는 게으른 소녀들이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도록 열렬히 뛰어다니고 비오는 날에는 나를 생각하는 갈대로 만들어주셨던 선생님. 제 직업에서 사기를 치는 너절한 인간들을 볼 때, 그리 될까 경각심이 들 때, 선생님의 한결 같던 직업정신을 떠올리면 풀려버린 사지와 척추가 꼿꼿이 다시 서는 느낌이다.
영화 남한산성을 뒤늦게 찾아보며 남편은 내게 그랬다. 당신은 김상헌 같은 사람이고 나는 최명길 같은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에 견줄만하냐고 서로를 실컷 비웃어준 다음 맞다고, 잘 봤다고, 나는 스스로 뱃가죽을 가르는 한이 있어도 항복은 못한다고, 그러니까 까불지 말라고 응수했다. 남편은 철없는 애송이 보듯 나를 향해 코웃음을 친 다음 자신의 얍삽한 기회주의가 나라를 구할만한 융통성이라도 되는 듯 거만을 떨었다. 나는 일평생 저런 사람들을 존경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저런 사람들 덕택에 생명과 자리를 유지하고 사는 것 같은 불쾌미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같으나 그 가치가 다를 때 우리는 얼마만큼 타인을 존중할 수 있을까. 한 줄기의 강이 가로막는 가소로운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는 진리, 저편에서는 오류! 체육선생님의 인생 도서. 팡세의 명언이다. 일찍이 R.ef도 아래와 같이 노래했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책을 읽을 필요도 없이, 새로운 사람을 사귈 필요도 없이, 그 허망한 욕심들은 접어두고 과거의 페이지들을 숙독하여 그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다면 현자가 되고도 남겠다.
모두가 다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는 거라 생각을 해.
저마다 감정은 각자 다 다른 거니까.
각자 나름대로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