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다 도망치다 타다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게으름인지, 무관심인지 그 때 그 때 나오는 신간이나 신작영화를 챙겨볼 줄 모르는 나는 뒷북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경린의 소설이 뜨고 있을 때 김승옥의 초기단편집을 읽는다든지 키아누 리브스가 콘스탄틴에서 열연 중일 때 매트릭스 시리즈를 다시 보며 혼자 감탄한다든지 하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전경린의 소설을 읽고 영화 콘스탄틴을 보며 아, 하고 뒤늦게 뭔가를 느끼곤 한다. 굳이 이렇게 하자고 룰을 정해놓은 바도 없을 뿐더러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뎌내는 작품이야말로 이 몸이 읽을만한 것이리라, 하는 고집이나 철학도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버린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유미리의 책도 그랬다. <가족시네마>는 새로 발굴한 헌책방에서 찾았고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헬스장의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이제껏 작가 유미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실은 재일교포라는 것,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것, 유부남과 사귀다가 미혼모가 되었다는 것,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한창 주목받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 정도였다. 내가 구한 책은 1997년 고려원에서 나온 <가족시네마>인데 지금은 절판된 상태였다. 1997년이면 고등학교 시절인데 그 때는 유미리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좀더 관심이 있을 때여서 그랬는지 유미리의 책은 읽지 않았다. 신문에서 유미리의 책을 홍보하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도 있고 긴 머리에 눈을 내리깔고 찍은 사진을 보고 일본여자처럼 생겼군, 슬퍼 보이는군, 정도밖엔 느끼지 못했다. 책과의 인연이란 건 가끔 의아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처럼 만나게 될 책은 기어이 만나게 되는 것일까.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는 유미리만의 어록이자 사전이다. 유미리는 사랑이란 <피를 흘릴 만큼 타자에게 관여하는 일>이란 정의도 있을 수 있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사전을 만들고자 생각하였다. (p. 8) 고 말한다. 사전에는 인생이 없다는 말에 공감했다. 인생이 있긴 있되 지극히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설명 뿐이라서 영 마뜩치가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하다는 선한 전제를 차치하고라도 유미리는 특별하다. 그녀의 태생이 그러하고 살아온 여정이 그러하다. 일본에서 그녀의 삶은 철저히 이방인이자 주변인의 삶이었다. 늘상 불화하던 부모가 일찌감치 별거하는 바람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유미리는 재일교포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외모나 분위기에서 배어나오는 독특한 무언가 때문에 어딜 가나 이지메를 당한다. 동년배 친구에게서 동성애적 감정을 느끼는가 하면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그걸 거부하지 않고 즐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40대 이상의 남자와만 연애를 하며 저축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별난 삶의 단면들이 하나씩의 화두를 제목으로 해서 이 책에 담겨 있고 <가족시네마>에도 담겨 있고 아마 아직 읽어보지 못한 유미리의 다른 책들 속에도 담겨 있을 것이다. 누군가 유미리에게 너의 불행을 팔아먹는 짓은 그만두라고 했다는데 유미리 자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발표하는 일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한갓 동정이나 얻자고 글을 쓰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글이라면 누군가 미리부터 싸잡아 비난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될 것이다. 유미리 자신이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의 불행을 좋은 글로 승화시켜 공감을 얻고 있다면 그 선에서 그녀와 그녀의 글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짤막한 단상과 정의들을 모아놓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삶의 내공이 느껴졌다. 읽다보니 그녀가 이 책을 쓸 때 즈음이 스물여덟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나이에 생의 이면을 이만큼이나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그만큼 상처와 고통이 많았다는 이야기니까. 직업의식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유미리의 부모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연극무대 위에서 갑자기 도망을 쳐버린다거나, 가정이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거나,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저축은 커녕 몽땅 써버리고 빈털털이가 되어야만 마음이 놓인다거나, 안정적인 인간관계나 경제상태에 대해서 일견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 일관되고 지속적인 애정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기본적인 신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얼마전 아이를 낳은 후 그녀가 많이 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냉소 섞인 슬픔이 아이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하다. 긴장과 고독만이 좋은 글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차가운 이면 뿐만이 아니라 따듯한 이면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려 다시 태어난 유미리를 보고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6-09-0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화라고 불리우는 영화나 명작으로 불리우는 책들을 꼭 물이 올랐을 때 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난다고 그 의미가 퇴색된다면 명화나 명작이 아니지
않을까요.^^..그런데 저 작가...이 세상 사람 아니지 않나요.?

깐따삐야 2006-09-0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처음 듣는 얘긴데요? 저만 모르는 건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