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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간.신.히. 보낸 하루. 머릿 속에 곤충 한 마리가 설설 기어다니는 것처럼 귀찮고 심란했다.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눈빛은 숨기지 못하겠다.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삶. 속사포처럼 말을 잔뜩 쏟아놓다가, 다시 풍경처럼 고요해지곤 하는 조울 증상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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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산다면 어땠을까, 를 상상해 본다. 보다 현실적인, 완벽한 생활인으로 거듭나고 있을지. 아니면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을지. 현재의 생활을 보존하는 것과 인생의 제2막을 꿈꾸는 것. 지금으로부터의 연장선상에 있는 삶이 아니라 전혀 다르고, 전혀 새로운 삶. 그런 삶을 위해 현재의 나를 바꾸거나 버리는 것.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해묵은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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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胎生)의 삶.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 94

<쨍한 사랑노래>의 해설 부분에서 발췌한 글귀.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 는 말은 그 사람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사랑에 가리워져 오히려 다른 것들의 실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인다 해도 사랑에 훼방을 놓는다면 때론 질끈 눈감아버리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태생의 삶. 실체는 없는 가장 근원적 삶.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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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겪어봐야 아는 것. 식당에서 음식 타박을 하는 사람 집을 방문해서 식탁 위에 차린 것들을 보면 별 것 없듯이, 어떤 사람이든 한 공간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함께 공유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유보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유독 고집을 부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너무 마음이 좋고 헤픈 것이 아니라 저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누구 때문에 힘들어진다거나 불행해진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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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룰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쇼 프로그램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영화배우처럼. 하지만 그 룰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활자화된 룰도 아니고 체화된 삶 속에서 얻어지는 진짜 룰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잘 피해왔다 싶으면 후에 더 큰 덩치가 되어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시기에 겪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겪어야 한다. 누군가의 힘을 빌어, 혹은 누군가의 보호막 속에서 피해왔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로 피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겪을 건 겪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룰을 체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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