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면서도 달력에 촘촘히 박힌 30개의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막막해진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한 달의 기준점이 월급날이 되었다. 달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월급날까지 얼마나 남았나, 주말을 몇 번 보내야 하나, 부터 헤아리게 되곤 한다. 스스로의 안목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는데다 쇼핑을 피곤해 하는 나로써는 지금도 엄마가 사다주는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돈을 쓰는 일에 자신없어 하지만 그래도 월급날은 왠지 기분이 좋고 뿌듯하다. 점점 안정되고 평범한 생활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하며 가슴 설레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런 느낌.

올봄부터 문학계간지를 하나 신청해서 보기로 했다. 진작부터 하고 싶었는데 늘 같은 비용으로 다른 책들을 구입하곤 했었다. 근래 들어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데에 있어 너무 대중없다는 느낌이 들고 그에 따라 나의 사고나 감성마저 뒤숭숭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문학과 관련된 이슈와 흐름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그 때 그 때 발표되는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방금 택배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빳빳한 종이냄새가 폴폴 올라오는 계간지를 받아드는 늦은 오후에 나는 기쁠 것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다. 무방비 상태로 일단 마음을 열고 나서 상대를 알아갔던 나의 교제 패턴에 자꾸 에러가 발생하는 것을 깨닫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상대를 천천히, 조금씩 파악해 가면서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마음을 열어줄 것인지 결정하곤 한다. 그것은 계산이 아니라 지혜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도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간혹 너무 좋은 사람이 되어버려서 상대를 너무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할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나 바보 옆에 있으면 평범한 어른도 시커멓게 때묻고 마음이 날근날근 닳아버린 사람으로 보이듯이. 짐짓 힘겨운 모션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나의 서투름과 무모함에서 모든 것이 기인했다고 보면 된다. 나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가장 현명한 길이다.

아이들이란 때로 천사같이 순진했다가 때로 악마처럼 사악해지곤 한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지어낼 때를 보면 세상에 저런 사악한 것이 있나 싶다가도, 해사한 얼굴로 손까지 떨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얼굴까지 붉어질만큼 예쁘고 감동적이다. 모든 실수가 용서가 되는 나이라서 부럽기도 하고 실수를 하면서 하나씩 배워가야 하니 스스로를 감당하기가 얼마나 버겁고 힘에 부칠까 싶어서 안쓰럽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올곧고 성실하게만 생활하지 않고 이런저런 실수들을 저지르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게 왠지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까닭은 그만큼 내가 아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기에는 여전히 나 자신 지나치게 답답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으나 내일은 또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해 두는 것은 그렇듯 나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고 더욱이 내가 매일 대하고 있는 아이들은 아직 말랑말랑한 영혼을 가진 미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늘 처음처럼 두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4-0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0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게 받아들여지셨나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안시스템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낯두꺼운 불법 사용자들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여과 없이 오픈했던 사람들이 도리어 푼수가 되곤 하니까요.

2006-04-06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4-0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저는 요즘들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던 제 자신이 참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느낌 몹시 쓸쓸해요. 하지만 저는 또 다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봐 그게 또 걱정이랍니다. 눈치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어디 내놓으면 아슬아슬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바로 저에요. ㅜ.ㅜ

2006-04-0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