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사흘째, 그새 주말이다. 긴 휴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눈이 좀 피로하고 어깨가 아프다. 창밖으로 삼층 까치집이 보이는 내 자리가 익숙하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 맞어?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이 났을 때 문득 튀어오르는 생각. 나 여기에 있는 거 맞어? 너무 기뻐서 실감이 잘 안 난다던가, 너무 절망적이어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느낌이 아니라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묻혀 있는 가운데 그저 무덤덤한 기분 속에서 툭, 하고 떠오르는 질문. 내가 지금 여기에 있긴 있는걸까. 주변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일상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그렇듯 문득문득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씩 멍해지고, 멍해지는 시간이 없으면 못견뎌 하는 나의 고질병이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은 꽤나 슬렁슬렁 보낸 것 같아도 전혀 아무 변화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속을 썩이던 사랑니도 뽑았고 겸사겸사 입안의 충치를 모조리 치료했으며 다쳤던 발목도 거의 완쾌되었다. 개학을 하고 교무실에서 3학년 교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퐁당퐁당 뛰어내리며 괜히 설레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발목을 다쳤을 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게 바로 계단이었다. 올라가는 길이든, 내려가는 길이든, 계단만 마주하면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곤 했었다. 마음 속으로 여기서 더 다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젠 제법 체중을 싣고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해도 특별한 통증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온 것 뿐인데도 무슨 큰일을 해낸 것처럼 기쁘고 만족스럽다. 여기저기 잔병 치레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소용 없다는 교과서적인 교훈.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는 요즘 나는 행복하다.

일본일주를 다녀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해외에 나가본 것은 대학교 때 캐나다에 다녀온 이후로 두 번째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종종 떠올렸던 여행이었다. 곧 졸업을 맞는 우리 아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체험했던 여행이라서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빠듯한 일정 내에서 너무 많은 걸 보았고 순간순간 많은 걸 느꼈던 여정이어서 솔직히 정리가 잘 안된다. 기행문을 올리긴 올려야 하는데.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방문해서 속속들이 알고 싶어지는 나라다.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졸업 준비에 학년말 자료 정리 및 이관 등으로 학교는 요즘 바쁘다. 순간순간 멍해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오려고 날마다 머리를 굴리거나 떼를 쓰고 있으며 한 살 더 먹었다고 어찌나 느물느물 능글맞게 구는지. 나를 쌤이 아니라 그까짓꺼 맞먹어도 괜찮은 셋째 누나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아무튼 졸업을 하고 더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 던져질 앞으로를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마음에 모진 말을 못하게 된다. 일단 나이 어린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나의 습성도 한몫 하는 것 같다. 간혹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개 순수하고 예쁘다.

멍-한 가운데 다시 일거리가 밀려온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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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2-1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셋째 누나라는 표현이 맘에 듭니다.

깐따삐야 2006-02-1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암... 카리스마 안 섭니다. 요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