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거나 질려갈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방학이 찾아온다. 몇몇 동료들은 출석 연수도 신청하고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과 회포를 풀 예정인가 본데 나는 그저 한없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혼자 있고 싶었다.

 

방학 시작과 동시에 일찌감치 근무조를 마쳤고 아름다운 가게로 보낼 물품들을 정리했다. 곧이어 알라딘 중고샵에 판매할 책들을 켜켜이 쌓아두니 어느만치 홀가분해진 느낌. 영달이는 다음주부터 방학이라 오늘은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간식을 먹고 조금 쉰 후에 놀이터에 나가 원없이 놀다 온다.

 

놀이터에서 얼굴을 익힌 엄마들은 내가 선생이라는 이유로 대단한 노하우라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것저것 물어오지만 뭐가 있을 턱이 있나. 오히려 육아에 대한 자세 및 유용한 팁을 얻는 것은 내쪽이다. 이따금 젊은 엄마들의 우렁찬 주장들을 듣다 보면 다들 저렇게 자식 잘 키우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는데 교육현장이나 나라꼴은 왜 이럴까 싶다가도 또또 인간에게 하릴없이 기대를 건다 싶어 마음을 접곤 한다. 삼십대 중반에 처해 있는 지금, 나 자신을 포함 모든 것을 향한 환멸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환한 빛을 뿜으며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분명 내가 지나온 시간일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뭇잎 한 장, 돌멩이 한 덩어리를 가지고도 수억년 전을 상상하고 수억년 앞을 희망한다. 무궁화꽃 한 송이를 보고도 자신만의 비밀 동화를 풀어내고 흔하디 흔한 나뭇가지 두 개로도 새로운 역할을 꾸며낸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놀이시설 하나에 다 올라타고는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이 되기도 한다. 종종 놀이터에 나와 아이들에게 과자를 풀어주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계신 백발의 할머니,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아이들의 소음과 열기가 그리운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사춘기도 아니련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분열로 미칠 것 같다가도 누군가 따듯하게 건네는 말 한 마디, 무심코 흘린 말을 기억했다가 나누어먹는 음식, 아이들의 해맑은 함성 소리, 상념으로 끈적한 이마를 시원하게 헹구어주는 바람, 쨍하니 귓전에 울리는 친정엄마의 건강한 꾸지람... 그렇듯 소소한 것들로 위안을 받고 다시 버텨나갈 힘을 얻는다. 약간의 시간 차와 개인 차가 있을 뿐, 결국 내가 아는 것들은 남들도 이미 다 아는 것이거나 알게 될 것이라는 부질없음이, 그 부질없는 깨달음이 도리어 서늘한 용기를 준다. 체념의 두번째 뜻이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나를 괴롭히는 분열증의 해답은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결국 비슷하다면 내 나이 즈음에 남편도 참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가 말했을 때,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영달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경청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남편의 선명한 말보다 영달이의 무언의 몸짓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이럴 때 그는 남자고, 아빠니까 괜찮았을 거라고 얼버무리기엔 석연치 않다. 그가 힘들다고 했을 때 엄마인 나보다 당신이 더 힘든가, 나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예정이니 나한테 그딴 말 걸지 마시오, 하는 차가운 눈빛을 쏘아주진 않았던가. 그때 그 남자는 혼자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식으로 단념했기에 지금 저런 얼굴을 하고 다닐까. 어쩌면 내가 주장하는 나보다 나와 같이 살아온 저 남자가 나를 더 잘 아는 건 아닐까.

 

그렇듯 요즘은 무심한 듯 일상을 조율하고 근근이 관계를 엮어나가는 사람들을 경외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삶과 사람에 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사는 나같은 인간에게 그들은 창조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상의 반복, 또는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사건들을 무척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묵묵하고 인내심 강한 그들을 숙주 삼아 물적, 심적 호사를 누리며 잘난척 해왔던 내가 마치 고급 기생충은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는 데에는 신선한 감성 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다져진 근육이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이다.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새로운 날들을 준비해야 하는 방학.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격려와 치유가 필요하다. 학교에 갇혀 있는 동안 함께 갇혀 있었던 생각들을 풀어내고 자연의 여유로운 기운도 받아와야겠다. 내 안의 숱한 상념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에게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의 가치가 새삼 고마운 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