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낙산의 마음

 

- 김 광 규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운 날은

편안한 집을 떠나

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턱에 올라서면

세상은 온통 제멋대로

널려진 바위와 우거진 수풀

너울대는 굴참나뭇잎 사이로

살쾡이 한 마리 지나가고

썩은 나무 등걸 위에서

햇볕 쪼이는 도마뱀

땅과 하늘을 집삼아

몸만 가지고 넉넉히 살아가는

저 숱한 나무와 짐승들

해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꽃과 벌레들이 부러워

호기롭게 야호 외쳐보지만

산에는 주인이 없어

나그네 목소리만 되돌아올 뿐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도

산에는 아무런 중심이 없어

어디서나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

여울에 섞여 흘러가고

짙푸른 숲의 냄새

서늘하게 피어오른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없고

바위 틈에 엎드려 잠잘 수 없고

낙엽과 함께 썩어버릴 수 없어

산에서 살고 싶은 마음

남겨둔 채 떠난다 그리고

크낙산에서 돌아온 날은

이름 없는 작은 산이 되어

집에서 마을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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