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좋은 날 -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전망 없는 밤을 위한 명랑독서기
이다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하루하루 비슷하게 살다 보면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나를 비롯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짠한 소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날마다 다른 옷을 입으면 뭐하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인데. 홍삼란이나 유정란이나 알고 보니 다 그게 그거였더라는 뉴스도 들려온다. 며칠 전 영달이는 베스킨라빈스의 슈팅스타를 먹다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더니 희한한 표현을 했다. 엄마! 아이스크림이 웃고 있어! 나는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는 지루한 글을 쓰는 작가들을 향해 코웃음을 쳤고 새로운 문장을 찾아 헤매는 스스로를 쥐어박았다. 이 책은 그 와중에 골라든 책. 씨네21의 이다혜 기자는 직업의 특성 상 나보다는 많은 사람들,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테고 영화를 잘 보기 위해, 잘 본 영화에 대해 잘 쓰기 위해, 나보다 더 다양한 책을 읽고 참신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길에 듣는 이숙영의 방송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전화목소리, 그 담백함과 수수함이 좋았고, 한편씩 골라주는 영화 또한 백퍼센트 재미있어서, 얼굴도 모르지만 믿음이 생겼다.

 

  서점주인 아저씨 왈, 이 책이 신문에 났나요? 나 말고도 찾는 사람이 또 있었는지 책 표지에 전화번호가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입맛을 다시며 서점을 나왔고 그 다음날에야 이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책은? 재미있었고, 좋은 문장도 있었고, 알퐁스 도데의 어린왕자니 하는 엉터리 구절만 없으면 곁에 두고 보기 괜찮은 책이었다. 물론 헤밍웨이나 나쓰메 소세키 같은 거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조금 더 나아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급선회해서 꾹, 맺어버리는 글을 읽을 때는 기자근성인가 싶기도 했지만 요즘 <테레즈 데케루>와 <밤의 종말>을 연달아 읽어내며 테레즈의 캄캄한 마성에 휘둘렸던 나로서는 이 두툼하지만 부담없이 상큼한 책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꽃이 아닌 꽃받침으로. - p.23

 

즐기는 게 이기는 것이다. - p.44

 

그렇다. 맛있는 건 언제나 옳다. - p.72

 

인간은 사랑받을 타이밍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얻어맞을 타이밍을 알아챌 수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적응이란 그런 것. - p.150

 

야구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예술품 같아서 기쁨의 순간은 있어도 궁극의 만족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 p.201

 

종교는 우리의 고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때로는 잔인한 눈속임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218

 

여자는 연애도 글로 배우려들고, 남자는 '기분' 대로만 하려고 든다. - p.271

 

감정을 통역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아찔한 고독. - p.301

 

세상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라고 하면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 p.357

 

  인용한 문장들 외에도 한번 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이 별다른 꾸밈없이 경쾌한 글 속에 맛있게 어우러져 있다. 고전 위주로 솎아놓은 무겁고 빤한 서평집이나, 최근에 읽고 좀 실망한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처럼 제멋대로의 스타일도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혼이든, 비혼이든, 여성이라면 한뼘 점도 더 공감할만한 재미있는 리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거의 4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인데도 가지고 다니며 읽었을 정도면 뭐.

 

  특히 부록으로 실린 다혜리의 책 정리법은 심하게 공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