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천의무봉의 글솜씨라 알려진 바와 같이 박완서는 연애 소설을 써도 어쩌면 이렇게 맛깔스럽고 애잔하게 쓸 수 있는지.

누구나 가슴 한 켠에 묻고 살지만 뱉어내고 나면 너무도 허전해질까, 꽁꽁 비밀처럼 숨겨두기보다는 간직하고 사는 첫사랑.

대개 평균치의 인간들이 함께 베토벤이나 멘델스존을 듣고 감동할 수 있는 사람보다 살림에 구멍내지 않을 생활력 탄탄한 사람을 최종 선택한다지만, 암묵리에 자타가 인정하듯 비루한 살림이 있기 훨씬 전부터 꿈꾸고 욕망하던 최초의 선택이 있었다.

작은 떨림 하나에도 온몸이 전율할만큼 예민하고 풍부한 청춘에는 상대가 누구인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혼란스럽고 누추하지만 넘치고 남아도는 젊음을 소진할 어떤 대상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첫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건 첫사랑의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어설프고 너무나 어리석고 한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잘도 흘러 대상에 대해서는 물처럼 담담하게 완벽해질 수 있으나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은 언제나 나를 달뜨게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처음은 show처럼 안된다.

마냥 수줍고 마냥 설레고 마냥 어설프다.

하지만 16mm 카메라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촬영한 인디 영화처럼 뭔가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에서 그 떨림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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