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들이닥친 추위와 어떤 상황 때문에. 아슬아슬 재빠르게 내달리는 택시 안에서 혹 사고라도 날까봐 조마조마하는 나 자신이 참 우스웠다. 이미 벌어진 사고는 보이지 않는가. 몇 알의 신경안정제와 그 틈에도 챙겨들고 나온 곰돌이 새해 달력. 그리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 몇 개.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손에 쥐어진 것들이었다.
그래도 세상에 나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지나쳐 버릴 수는 없었다. 뽀로로 케익을 준비하고 촛불을 밝히고 북적이는 홀 한가운데 으리으리하게 서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구경하고 남편과 나는 그야말로 하루 종일 있는 힘껏 놀아주었다. 너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지 않기에 무슨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온몸이 욱씬거려 팔다리가 들어올려지지 않을 때까지 열렬히 놀고 또 놀았다.
어느해 이브엔 나를 위해 노트북을 샀고 어느해 이브엔 남편이 사들고 온 트리와 눈사람을 세워놓았다. 잊지 못할 만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잊혀지지 않을 만큼 비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해의 이브는 어떤 면에서 참 특별했고 어떤 면에서 썩 비참했다. 겪은 만큼 깨닫고 얻었지만 두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나갔다. 다른 모든 날처럼. 세밑의 공기는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