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왈. 예전엔 누가 딴지를 걸면 청산유수로 응수했는데 이젠 아무 말도 생각 안 나고 그냥 멍해요. 머엉-해.
그래서 지금 그게 내탓이란 말이에요?
아니. 꼭 그럴라구. 나이 탓이겠지.
실은 내탓이다. 속사포 같은 비난의 공격과 맞닥뜨렸을 때 잠자코 가만히 있기, 외에 별다른 방법이 있을 턱이 없다. 문득 측은지심이 발동했지만 약해지면 지는 거다, 이걸 노리는 거다, 연탄가스 탓이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재래시장 모퉁이의 허름한 부속구이집. 남편과 나는 돼지껍데기에 상추겉절이를 얹어먹으며 저런 대화를 나눴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부속물들을 보고 있자니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눈 맵고 코 맵고 냄새 쾌쾌. 구리고 적나라했다.
엘모님 서재에서 본 테스트를 걸어봤더니 남편은 임전무퇴란다. 나는 적반하장일세. 남편은 이러니 우리가 다툴 수 밖에 없다며 파안대소를 했다. 나는 좀 심각했는데 그는 웃었다.
남편이 산사춘을 시키려는데 나는 그냥 소주 먹으라고 저지했고 내가 <채근담>을 들이대니 다른 버전을 사달라고 툴툴거렸다. 그는 가끔은 내가 자기 하는대로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그가 과거를 돌아보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부속구이의 힘인지 자꾸 솔직해졌다.
소주 한 병 비우고 돌아오는 길. 우리 가끔 부속구이 먹으러 오자, 고 했고 남편은 그러자,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