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금방 비나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는데 오늘 아침은 자욱했던 구름이 걷히고 반짝 햇볕이 난다. 라디오에서는 벌써 겨울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몇 년 전 이맘때는 건스앤로지스의 November rain을 참 열심히 들었는데. 싱글인 친구들은 서울로 조만간 그들의 내한공연을 보러 간단다. H가 새로 산 차로 직접 운전을 하고 기타를 치는 K선배까지 동행한다고. 요즘 애들 말로 완전 대박. 부럽지만 별 수 있나. 묘사 잘하는 E에게 전해 듣는 수밖에.
E는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미니홈피에 이상한 글을 써 놓아서 근황을 물었더니 “아 놔. 나는 왜 이렇게 애프터가 없지. 이젠 부모님까지 창피해 하신다.” 그런 말을 한다. 상대가 마음에 들던, 마음에 들지 않던, 일단 애프터는 받아야 안심이 되는 남녀생활백서에나 나올 법한 여자 심리. E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누군가를 사귀기 시작해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을 못 보았다. 온몸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나 연애하고 있소, 라고 사방팔방 표내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나도 한때는 나 자신, 연애와 잘 맞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노랫말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을 마음에 두면 성실히 몰두하는 타입이었지만 그만큼 사소한 일에 쉽게 지치기도 했다. 들끓던 감정이 차가운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 만남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래 가고픈 인연일수록 더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면 무턱대고 좋아하기부터 했던 과거와는 달리 좋은 사람일수록 조금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사랑을 하는 나 자신도, 사랑 자체도 믿지 못했기에 그만큼의 만남까지 망치게 될까봐 마음 단속을 철저히 했다. 그러다보니 상대의 감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모르는 채, 내 마음 역시 확실히 드러내지 않은 채, 놓아버린 인연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잘한 것이 없다. 내 나이 서른, 여전히 젊은 나이인데 그때 좀 더 불태웠어야 했다. 그 무렵 나를 향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등장한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가 두터운 콩깍지를 덮어쓴 채 내게 올인하지 않았다면, 둘 다 뜨뜻미지근한 감정이었다면, 만남이 인연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E는 시큰둥해할지 모르겠지만 사람 앞에 소심 가득한 것보다는 사랑 앞에 수심 가득한 편이 낫다. 이것은 결혼한 자의 호기가 아니라 이미 품절된 자의 질투 어린 조언이다. 가끔 거리를 지날 때 손을 잡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남녀를 보곤 한다. 주변을 아우르는 아우라로 보건대 사랑할락 말락 할 즈음의 커플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챈다.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눈빛 한 점까지 조심스러웠지만 스멀스멀 차오르는 감정까지는 숨기지 못하던 그때. 막상 결혼을 하면 점점 능숙한 생활인으로 변모해가는 것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보면 부러움만큼이나 그리움이 앞선다. 살아가는 동안 그렇듯 기억할만한 설렘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나는 이제 모험이 두렵다 하고 남편은 모험이 귀찮다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점점 더 그리 될 것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E의 푸념이 신선하게 들릴 정도라니 그새 확 늙어버린 느낌. 이쯤 되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노화가 진행되는 사고가 문제다. 이것저것 가늠하느라 E가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에 대해 저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실은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 했다. 셸 실버스타인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안에 너무 많은 나 때문에 많이 주고 많이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연애도 화장품 지르듯 과감하게 해보라구. 화장품 덜 써도 젊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