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개봉시기에 맞춰 영화를 보는 편은 아니다. 좋은 영화는 언제 봐도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같아선 영화관 출입도 꺼려져 철지난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중이다. 첫 느낌만으로 좋아질 것 같은 영화도 있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스토리도 그렇고 신민아, 공효진이라는 두 여배우의 이미지도 한몫했다.
학부 시절, 교양철학 시간에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다. 모계 가족 형태를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었는데 이 영화는 어쩐지 그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처음엔 아버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두 자매가 서로 화해의 순간에 이르는 평범한 로드무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의 절정 부분에 이르러 상상치도 못했던 서늘한 반전을 보여준다. 명은(신민아 분)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되짚어가고 관객은 몇 가지 복선들을 알아차리며 속았다, 라기 보다는 아, 그랬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 이후 안쓰럽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담담한 재회. 이 장면에서 배우 신민아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자매는 없고 오빠가 하나 있다. 그런데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란 나이를 먹을수록 아버지와 딸 같은 관계로 화해가는 면이 크다. 주변에서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보기는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에 자매라는 관계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올케와 시누이도 있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동지 의식을 느끼는 순간보다는 오빠의 아내이자, 남편의 동생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사회에 나와 언니처럼 대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깊숙한 속내까지 드러낼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간접경험이라면 엄마와 이모들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엄마 곁에는 네 명의 개성 뚜렷한 자매들이 있다. 현명하신 큰 이모, 천사병 둘째 이모, 셋째인 엄마, 깍쟁이 넷째 이모, 오지랖 넓은 막내 이모, 마지막 자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냥하고 자상한 외삼촌까지. 그 가운데 엄마가 가장 솔직해지는 상대는 큰 이모다. 엄마는 큰 이모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한 가지씩은 배우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반면에 둘째 이모에 대해서는 엄마의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찮아 하신다. 엄마의 말을 빌자면, 혼자 고상한 척 하면서 주변사람 고생시키는 타입이라고. 넷째 이모는 조카인 내가 봐도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인 사람. 복잡한 것 싫어하고 실리를 중시한다. 어쩐지 드러내놓고 깍쟁이 짓을 해도 귀여운 면이 있다. 막내 이모는 그 나이 먹도록 엄마한테 가끔 혼이 나는데 구박을 받아도 심신에 밴 오지랖 병은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이모들이 모이면 정말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왁자지껄하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 서로 뭉치는 걸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자매들이 부럽다. 순전히 나의 이기심일까. 지금은 여자로서 겪어야 할 모든 일을 엄마와 상의하지만 점점 쇠약해지는 엄마에게 미안할 때, 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없을 때, 엄마가 이모에게 하는 것처럼 함께 수다를 떨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자매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처럼 어딘가 엄마의 모습을 닮아 있고, 엄마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엄마의 솜씨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낼 줄 아는 자매 말이다. 애증 섞인 대화를 남발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그래도 언니밖에 없어, 그래도 내 동생이 최고야,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영화 속 명주와 명은의 모습에서 이율배반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명은처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주변 사람과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주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그렇게 사는 거야,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 고통에만 눈이 팔려 가까운 가족의 상처쯤은 안중에 없을 때도 있고, 사는 일이 문득 지겨워져 술이나 마셨으면, 할 때도 있다. 그렇듯 내가 느끼는 삶이란 것도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색깔이 다른 두 자매와 같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는 이상한 삶과 화해할 수 있을까. 그런 자매애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