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 아기의 돌잔치에 다녀왔다. K가 만삭의 몸으로 우리 결혼식에 왔던 것이 일 년 전인데 그새 아기가 돌이 되었다. 홀에 들어서자 세 가족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런 풍경들이 나에게 항상 낯설다. 친구들의 결혼식, 집들이, 출산, 돌잔치 등 쟤가 수년 전에 나랑 같이 술에 취해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르던 그 애 맞는가? 서로의 나이 듦에 대하여 당최 언제쯤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입덧이 잦아들고 있어서 모처럼 잔치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 많은 곳, 음식 냄새 나는 곳은 질색이었는데 기사로 대동한 남편, 다른 친구 둘과 함께 수다를 떨며 저녁을 즐겼다. 아직 미혼인 친구들은 남편이 잘해주는가에 대해 궁금해 했지만 내 대답이 가관이어서 모두가 민망해했다. “이 사람은 특별히 잘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못하는 것도 없고 그냥 살아갈 뿐이야.” E는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고 S는 얘가 원래 직설적인 편이라며 웃어 넘겼다. 밖에만 나가면 더 자상해지는 남편은 별로 신경 안 쓴다는 듯 점잖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이벤트 퀴즈에서 아기의 혈액형을 맞히는 바람에 선물도 받았다.

  아기는 돌잡이에서 아빠의 바람대로 실타래를 잡았다. 엄마인 K는 연필을 잡았으면 했지만 두 번째 찬스에서 아기는 골프공을 잡았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모가 원하는 걸 잡을 수 있도록 센스를 발휘한다던데 그 날 옥의 티라면, 이벤트 진행하는 아가씨의 무신경이었다. 말만 많을 뿐 경험이 부족한지 주위 사람 얼굴 벌개지게 하는 데 뭐가 있었다. 멀리 포항에서 온 여고생 손님한테 “교복 참 안 예쁘지?”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면, 엄마인 K가 보기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뉘앙스의 말을 내뱉기도 했다. 좋은 말만 오가도 부족한 잔칫집에서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급기야 퀴즈 상품 받으러 나간 나한테까지 막말을 일삼는다. K가 친구라고 소개하자 “어머, 선배 언니 같은데요?” 이런 말을 한다. 순간 어질어질. 어디 가서 나이 들어 뵌다는 말은 또 처음 듣는다. 내가 슬슬 배가 불러와서 나름 감추느라 굽 낮은 신발에 낙낙한 옷을 입고 갔더니 아주 날 묻어버리는구나. 이런저런 지인들이 많은 자리인데 그런 말이나 듣고. 슬펐다. 속으로, 그런 너는 참 생긴 데로 노는구나 싶었지만 좋은 자리이니만큼 아기한테 덕담까지 해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과 친구들은 왜 아까부터 계속 말을 저렇게 하느냐며 의아해했다. 저런 식이다가는 일거리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나마 간만에 마주한 반가운 지인들과 잔치 음식으로 위안을 받는다. K와 K의 남편에게 인사,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 남편은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어려 보인다며 속이 빤히 들여다뵈는 위로를 하지만 나는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당신은 이제 어딜 가나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데, 나는 고작해야 폭삭 늙었다는 말만 듣는다면서 아기까지 낳고 나면 내가 연상인줄 알겠다고 성질을 냈다. 친구들 앞에서 남편 민망하게 한 건 뒷전이고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남편은 정해진 멘트에 신경 쓰지 말라며 토닥이는데 결혼 전보다야 어딘가 나이 들어 뵈겠지 싶은 것도 사실이긴 했다. 인정하지 못하고 버텨봤자 나만 더 추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어려 보이는 데에 올인해서 사는 TV속 아줌마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것이 엊그제다.

  아기는 시끌벅적한 잔치 중에 용케 울지도 않고 장하게 임무를 완수했다. K나 그녀의 남편이나 다들 좋은 성격 톱 텐 안에 들 정도이니 아기도 그럴 수밖에. K는 학교 다닐 적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더 언니 같았다. 나는 농담조로 그걸 능글맞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항상 배려심 많고 의젓했던 그녀가 한번 아니라고 말한 것은 그걸로 끝이었다. 대개 작은 일로 서로 상처 주고 틀어졌다, 돌아섰다, 를 반복하는 우리들이 가질 수 없는 카리스마가 그녀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K가 만삭의 몸으로 내 결혼식에 왔을 때, 절대 화해하지 않을 것 같았던 또 다른 친구 Y에게 의자를 내주는 것을 보았다. 원래 큰 그릇이긴 했지만 세월이 주는 경험치 덕분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녀의 그런 면 때문에 부조도 다른 집의 두 배로 하게 되는 것일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상대와, 입으로 들어가는 떡까지 뺏어버리고 싶은 상대가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 보다.

  우리는 돌잔치를 안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기 애는 자기나 이쁘지, 남의 애가 뭐가 이쁘겠느냐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초대받는 사람들도 부담이고 잔치를 가서도 썩 흡족했던 경우를 못 봤기 때문이다. 더욱이 으앙,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잔치를 즐겼던 K의 아기와는 달리 아마 내 뱃속의 아기는 나를 요만큼이라도 닮았다면 잔치 내내 짜증을 낼 게 분명하다. 남편과 나는 -본인들이 준비하지도 않을 거면서- 미역국 끓이고 전 부치고 등등 잔치음식 마련해서 가족들, 가까운 친구들하고 단촐하게 저녁식사나 함께 하자고 결정했다. 엄마도 원래 아기 첫돌에는 아기 엄마가 잘 먹어야 하는 거라고 하신다. 이처럼 뭐든 생략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더라도 경우 없는 사람만 되지 않으면 되는데, 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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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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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2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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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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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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