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아파트 화단 근처에 누군가 호박꼬지와 대추를 널어놓은 것을 보았다. 자연색 그대로 가을볕에 쪼글쪼글해지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시골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이맘때 마당에는 참 여러 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붉은 고추, 콩, 호박꼬지, 깨도 있었지 아마. 가을이 좀 더 깊어져 겨울이 가까워오면 처마 밑에는 시래기도 걸리고 옥수수도와 감도 걸리고 그랬었다. 그때는 항상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의식에 시달렸는데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 건가. 이렇게 아기를 가졌을 때나, 나중에 아기를 낳았을 때, 옛날에 살던 그 집에 가서 풀냄새, 흙냄새 맡으며 조용히 쉬고 싶단 생각을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뜨듯한 아랫목에 몸을 뉘였다가, 아궁이 숯불위에 무 좀 썰어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청국장에 밥 한 그릇 먹고 나면 절로 기운이 날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대도시라기보다는 중소도시에 속하고 십분만 차를 끌고 나가면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곳인데도 언제부터인가 늘 향수에 시달린다. 이미 문명의 편의에 길들여진 탓에 다시 옛날처럼 살라고 해도 며칠 못 버틸 줄 알면서도 TV에서 고향과 닮은 곳이 보이기라도 하면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열세 살 이전까지 알파벳도 잘 몰랐고 인터넷은커녕 산으로, 들로, 쏘다니는 게 전부였지만 모두가 건강했고 스트레스라는 말과도 거리가 멀었다. 선행학습이라고는 새로 받은 교과서를 읽는 것 이외에는 해본 적이 없기에 그만큼 순진하게 학업에 몰두했고, 학교 도서관조차 책이 부족해 읽던 책을 읽고, 또 읽고 반복했다. 내가 모르는 엄청난 바깥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두려움이 점점 커졌지만 정말로 더 큰 세계를 접했을 때 나를 지켜준 것은 유년시절의 따듯하고 소박했던 추억이었다.

  그런데도 남편과 나는 내년 쯤 더 넓은 집으로, 한 블록 옮겨간 더 편리한 위치로 이사를 갈 계획을 하고 있다. 지금 마음은 당장 귀농이라도 할 것 같은데, 우리는 미래 쪽을 더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기도 하지만 계획 없이 사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지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구상하고,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에 다가가기 위해 일상에 집중한다. 물론 그렇게 살아도 어그러지는 일은 생기기 마련이고, 때론 오롯이 마음을 비웠을 때 그득 차오르는 것들도 있다. 다만 내 마음 속 밑그림들이 과거, 더 어린 날의 나를 사로잡았던 허황된 서정이 아님을 확인하고 어느 새 안심이 되곤 한다. 그 시절에 멈추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영영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에 바치다
- 이선영

세월로부터 한 살 한 살 근근이 수확하는 나이를 평범에 갖다 바치다

소작농이 그의 지주에게 으레 그리하듯

그러나 나의 나이여, 평범의 지주에게 갚는 빚이여, 지주의 눈을 피한 단 한 줌 이 손아귀 안의 움켜쥠을 허락해주지 않으련

  지주의 눈을 피해 도망갈 곳도 없지만 ‘단 한 줌’만 있으면 되고 ‘단 한 줌’도 없으면 안 된다. 그 한 줌은 유년시절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마음을 쨍하게 울리는 시 한 편 일수도 있다. 그만큼은 허락하며 살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보면 나이 먹으며 평범해져 가는 일에 점점 더 담백해지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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