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었다. 삼십만 송이의 안개꽃과 일곱 번째 난장이의 마임이 무척 아름다웠던. 말할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는 몸짓. 아이들이 보기엔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이제 너무 삭막해졌나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하지 않은 말, 눈빛과 가슴에는 삼십만 송이의 꽃송이가 촉촉한 안개가 되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말하지 않았기에, 표현하지 못했기에 멈춰버렸지만 그 순간 깊이 각인되어버린, 화석 같은 기억이 있다. 시작도 잘 모르겠으나 끝도 없었던.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그립고, 함부로 그리움을 표현하기엔 시작이란 걸 한 적도 없었던. 시작과 끝이 분명했던 연애는 더 이상 그립지 않다. 충분히 설레었고 힘들었던 그때, 그것으로 족하다. 온몸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난장이를 보면서 나는 왜 내가 이토록 아픈 걸까.

 우리는 대개 놓쳐버린 사랑에 대해 그리워하죠? 열렬히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보다 오히려 더 많이 생각나기도 하잖아요. 아니. 생각난다거나 그렇지는 않고. 조금 뭐 아쉽다, 그 정도지요. 그는 대수롭잖게 대꾸했는데 왠지 난, 예의가 아닐까봐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표현해서가 아니라 그저 드러난다. 뜨겁고 질긴 마음이란 것은. 아득했던 마음에 폭죽이 터지고 우주가 전부 환해지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시간은 각자를 서로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멀리 와 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거나, 과거의 나일 수가 없고. 상대 역시 그럴 것이다.

 엄마는 동지를 잊지 않고 팥죽을 끓이셨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새알심은 빼고.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려 튀김도 만들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시는 엄마와 매일 나와 같이 밥을 먹는 이 남자. 그리고 이맘때가 되니 그리워지는, 팥죽 같은, 기억. 간결해진 것은 일상일 뿐. 허영심 많은 나는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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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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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16: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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