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와이프 대신 염소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다가는 서서히 마음이 웅크러든다. 오늘도 온종일 트로트를 개사한 선거홍보가는 빵빵 울려퍼졌고, 산에 다녀오던 나는 하루 종일 코 앞에서 그 소음을 듣고 있어야 하는 붕어빵 장사 아저씨가 문득 안되어 보였다. 그래서 화끈하게 붕어빵을 오천원 어치 사려고 했는데 스무 개를 들고 갔다간 엄마한테 맞을 게 두려워 그만두었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지금 이 시간, 따끈한 붕어빵 생각이 간절하군. 어느 날인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슈크림 하나를 더 얹어주셨던 아저씨. 반죽을 깔고 단팥을 넣고 다시 반죽을 덮고 구워내는 그 동작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붕어빵만도 못한 선거가 얼른 끝나서 동네가 다시 조용해졌음 좋겠다.
발이 살짝 시렵고 잠은 안 온다. 내일은, 아니지 벌써 오늘이구나. 오빠 내외가 온다는데 또 허리가 휘어지도록 상을 차리고 수발을 들어야겠지. 오빠가 결혼하면 방을 두 개나 차지하고, 재떨이를 안 비워도 되고,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오는 괴괴한 소음이 사라지고, 자신이 얼마나 회사에서 내노라하는 인재인가에 대해 자랑질 하는 걸 안 들어주셔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수리 생활이 완벽히 종친 것은 아닌 바.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초저녁부터 시달렸다. 그런데 식구란 참 이상한 것 같다. 나를 아무리 부려먹어도, 따끔한 구박을 들어도, 가슴 밑바닥부터 짠하게 올라오는 느낌은 대체 뭘까. 각자 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화악 단합되는 게릴라 근성은 대체 뭐고. 아무튼 미묘하고도 징글맞은, 영원한 탐구 대상이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오늘은 그냥 먹던 굴비에 이쁘장한 고명이 올라갈 것이고 나는 껍질이 요만큼도 안 남도록 깔끔하게 사과를 깎겠지. 아, 난 정말 착한 시누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