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었다. 그러고보면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걷고 또 걷고... 항상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꽤 후텁지근한 평일 한낮이었는데도 어디서부터 쏟아져나온 사람들인지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고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아무 불평도 없이 툭툭 밀려났다.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가 사과모양의 사과향기가 나는 핸드크림을 발견하곤 그 단순함과 달콤함의 극치에 대해 지인과 함께 감탄했다. 그는 그것을 샀다. 잠깐 의아했지만, 어쩌면 지금은 그렇게 생긴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늘 내가 부족하단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늘 겸손해야겠단 생각을 하며 살지만 안목이 비루해져선 안 된다는 결의도 다지게 된다. 일상의 소품 한 가지를 고르는 안목과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할 때의 안목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산 것을 후회하게끔 만드는 묵은 옷가지들을 정리하듯 기억이란 것도 주기적인 정돈과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나 편리한대로 생각하느라 명징한 성찰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부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나란 존재를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긴 하나, 더 이상의 여지를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교수님의 진지한 미소가 좋았다. 문학을 깊이 공부하다보면 정말 재밌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재밌어요... 늘상 그렇듯 수줍지만 단단한 목소리. 천진난만한 소년처럼 눈동자에 반짝이는 별을 띄우며 학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어쩐지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지상에 한 가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죽을 수 없다 했던가. 그러고보면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교수님은 굉장히 장수하실 것 같다. 내가 물리거나 질리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 더 진지하게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생을 지속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사심없이 몰두할 수 있는 평화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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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3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도 장수하실 예정이신가요.? ^^

BRINY 2007-05-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공부, 공부, 공부...해야하는데 말입니다...

깐따삐야 2007-05-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글쎄요? 전 굵고 길게 살고 싶습니다!

BRINY님, 해야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