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흔에 대해 생각한다. 벌써 마흔이 들어간 책을 두 권 정도 읽었고 한 다섯 권쯤 주문한 상태이다. 스물 언저리에 상실의 시대를 읽고 서른 언저리에 생의 한가운데를 읽었다면 마흔을 앞둔 나에게는 어떤 책을 권해야 할까.

 

일상을 잘 꾸려가다가도 갑자기 가슴 한복판에서 시작해 목구멍까지 은근하게 차오르는 묘한 느낌이 있다. 그때는 잔뜩 물을 먹은 듯 몸이 무거우면서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고슴도치마냥 뾰족한 바늘을 사방에 날릴 것 같다. 누군가 마흔을 두 번째 사춘기라고 하던데 이런 나이 든 모습으로 사춘기라니, 뭔가 생뚱맞고 억울하기도 하고 납득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습관의 힘은 무섭도록 견고해서 정확한 시간에 기상, 오류 없이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 로봇처럼 하루를 살고 나서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저녁 81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는 한없는 멍 때리기가 밤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이 없기도 하다. 어항 속 물고기들의 흐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도 있고 잘 개어놓은 옷들을 죄다 꺼낸 후 하나씩 다시 정리하는 날도 있다.

 

언젠가 남편이 마흔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는 내가 마흔이 될 줄 몰랐고 서른아홉의 하루와 마흔의 하루가 다르지 않으련만, 그가 참 한가하다고, 알량한 독서라고 치부했다. 그때 이 남자도 청춘이, 소중했던 어떤 한 시기가 조금씩 멀어져가는 듯 무력감에 시달렸던 걸까.

 

단순히 체력이 떨어졌다고, 피부가 예전 같지 않다고, 감각과 능력의 회복력이 점점 하락하는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알던 나라는 존재가 쑤욱 빠져나간 채 거죽을 뒤집어쓰고 허깨비처럼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룬 것들을 떠올리고 잊고 있었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 붙잡아도 필연적으로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도 생각한다. ‘다 때려치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한숨 한번 푹 쉬고 일상을 살았다는 남편의 이야기는 한갓진 하소연이나 푸념이 아니었다. 나도 요즘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는 그때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곁에 있어도 나는 위로가 되지 못했으니.

 

그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말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좀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 먼저 산 사람의 이야기니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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