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강사 초청 교육을 마치고 강사를 그냥 보내기가 뭣해서 급식실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내 또래 쯤으로 보이는 강사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무관님이 다가오셔서 "선생님, 누가 찾아왔는데요. 15년전 제자라고 하네요." 한다. 좀 당황스러워서 십오년이요? 라고 반문한 다음 강사 분께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중앙 현관에는 알 듯 말 듯한 앳된 청년이 큼직한 음료수 박스를 든 채 서 있다가는 나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했다. 아,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란! 그래, 반갑다. 그런데 네 이름이 뭐였지? 선생님, 저 C에요. 아, 맞다. 그래그래, C구나. 이제 기억난다!

 

의식의 수면 위로 가물가물 떠오르는 추억의 장면 몇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급히 끼워맞추기 시작하자 교복을 입고 수줍게 서 있는 C가 떠오르고 C와 늘 함께 다녔던 넙적한 얼굴의 D도 함께 떠올랐다. C는 뛰어난 우등생이라기 보다는 모든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빈 교실에 나와 단 둘이 남아 빗자루를 들고 묵묵히 청소를 하던 C의 모습부터 떠오른 것을 보면, 별 생색도 내지 않고 나를 여러 모로 도와주고 지지해주던 학생임에 틀림없었다.

 

C는 그새 옹골차 보이는 스물아홉 청년이 되어 있었고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 국수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요식업에 관심이 있어 대학 전공도 그쪽으로 선택하고 일찍이 상경했지만 돈을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서울살이를 감당하기엔 지쳐만 가고 마음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왔단다. 다행히 지금 운영하는 가게는 블로거들의 입소문이 퍼져 다른 도시에서도 손님이 찾아오고 외국 손님도 일부러 찾아올만큼 성업중이란다. 역시 성실함은 보답을 받는다고, 어린 나이에 사장님이 되었다고 추켜세웠더니,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며 가게에 나를 초대해 자신이 계발한 메뉴를 잔뜩 대접하고 싶단다.

 

순간,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15년 전의 나라면, 내가 기억하는 내가 맞다면, 새내기 티를 채 벗지 못한 엉망진창의 교사였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하여 아이들의 원성을 샀고 편도선과 두 다리는 항상 뚱뚱 부어 있었다. 한번 열받으면 통제불능이었고 늘상 분노조절장애와 면역력 결핍에 시달렸기에 아무리 되새김을 해봐도 그다지 아름답거나 추천할만한 영상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C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자기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너는 별로 말이 없었지 않냐고 반문했더니 좋아하니까 아무 말도 못했던 거라고, 그냥 영어공부 착실히 하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것을 잘 들어드리는 것만이, 자신으로서는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말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결혼했냐고 묻길래, 내가 지금까지 결혼을 안했으면 네가 나를 얼마나 딱하게 봤겠냐고 얘기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너도 결혼해야지, 했더니 선생님 같은 여자가 둘은 없는 것 같아 어려울 것 같단다. 그래, 내가 좀 이상하긴 했지.

 

그렇다. 지금도 비교적 선명히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들이 있다. 나 역시 어린 여선생에 불과했는데 불과 십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어린 소년들에게 시달리며 매일매일 아옹다옹 지냈던 나날들이 있었다. C는 내가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한 아이를 혼내던 모습을 잊지 못하겠단다. 담임선생님들 중에서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잘해줬던 분은 없다면서 과거의 행적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듣고도 내가 저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인 교사였던가, 싶은 놀라운 사실들을 알려주었다. 신기한 것은, C가 이야기하고 있는 담임선생님이자 영어선생님이 나 맞나, 이 청년이 사람을 잘못 찾아왔거나 감정에 도취되어 기억을 왜곡하고 있나, 싶을 정도였는데 C는 그런 나에게 "선생님, 초심을 잃으셨군요." 라며 정곡을 찔러주었다.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흔을 목전에 둔 지금, 학교살이, 가정살이, 세상살이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그때보다는 많이 노련해졌을 것이다. 요령과 지혜, 노하우들이 무르익는 대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슴에 북받쳐 오르던 감정의 큰 덩어리들이 어느새 바짝 사그라들었다. 소년들의 언행에 분노하거나 기뻐하고, 연인의 언행에 두근거리거나 실망하던 나는 점점 쇠락하는 육체의 근육이나 관절들과 두런두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들이 내 영혼의 부름에 응답했는데 지금은 온몸의 근육과 관절들의 경고에 영혼이 좌절한다.

 

일부러 나를 찾아와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해준 C에게 감사한다. 내가 그 시절을 망쳤어도 너희들은 참 잘 자라주었구나. 개구쟁이, 말썽쟁이, 그리고 C처럼 나를 수줍게 지지했던 소년들 덕분에 나도 선생으로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누구와 비교하기 보다는 과거의 나,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목청 높여 외쳤던 새내기 시절의 내가 현재의 내게, 당신 스스로 그토록 강조했던 지행일치의 삶을 살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성장하되, 끝까지 갖고 가고 싶은 것, 가져가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 C야, 고맙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그 맑은 시선으로 나를 긴장시키고 격려하는구나. 그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국수 먹으러 꼭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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