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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연장통 - 당신을 지키고 버티게 하는 힘
신인철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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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열풍이거나 허세이거나


 기현상이라고 해야 할 만큼, 인문학과 고전 읽기가 유행이다. 이런 현상이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할지도 모른다. '자유 학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학이란 원래 인문학을 배우고, 고전을 확정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과 고전 읽기 붐은 대학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플라톤이 노숙자와 교도소를 파고들고, 구청의 평생교육원과 구립 도서관에서 운위되고 있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 p.22에서

 

 몇 년전만 해도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진짜 위기냐 엄살이냐를 가지고 논쟁도 많았습니다. 어느 사이 위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때아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청소년과 부모, 직장인과 CEO가 인문학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고, 동양 고전에서 빅데이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서적들이 이에 부응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인문학 서적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지만, 어쩐지 현실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인문학을 말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사람냄새는 간 곳 없고 더욱 각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답은 세 가지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인문학 자체가 쓸모가 없거나, 저자가 인문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거나, 독자들이 인문학을 잘못 읽고 있는 경우입니다. 인문학의 가치는 시간이라는 시험을 통해서 증명되었으므로, 결국 답은 둘 중 하나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경우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인문학이 까다롭게만 느껴집니다. 아니 계륵(鷄肋)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듯 합니다. 인문학을 읽자니 어렵고 힘들기만 합니다. 안 읽자니 먼가 남들에게 뒤쳐지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신간 평가단 활동을 하면서도 인문학 서적들은 조심스레 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에 결국 제대로 인문학 서적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활동했던 9기 신간평가단 리뷰 도서였던『토요일 4시간』의 저자 신인철님의 신작입니다.『중용의 연장통』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 중용을 자기계발의 관점에서 풀이한 책입니다. 중용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사서 즉,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중 하나입니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책으로, 원래 예기(禮記)라는 책의 일부분었습니다. 그랬던 것을 송나라 대학자 주희가 따로 분리하여 주석을 달아 그 가치를 재조명하였습니다. 먼저 저 자신이 중용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서 책을 읽어나갔음을 고백하며,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중용, 읽거나 체험하거나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중용』은 (좋은 방향으로든,  안 좋은 방향으로든) 내 인생이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순간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이 지나쳐 삶이 균형을 잃으려 할 때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내 정신과 몸의 주인이 온전히 내가 되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마다 어디선가 튀어나와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목수가 연장통에서 비장의 도구를 꺼내 수리하고, 연마하고, 손질하듯이 『중용』을 통해 내 삶을 다듬고, 바로잡고, 바꿔나갔다. 


-p.11, 저자의 글에서

 

 저자 신인철님은 청소년기부터 한학(漢學 )을 배웠고, 대학에서도 한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로부터 받은 중용은 그의 인생 고비고비마다 문제를 해결해준 멋지 도구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후배들과 나누어왔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었습니다. 책은 회사 생활에서 좌충우돌하는 장윤석 대리가 중용에 능통한 신율교 차장과 함께 공부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법한 사건에 대해서 두 사람은 중용을 함께 읽으면서 차분히 이해하고 토론하며 해결책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형식면에서는 중용을 순서대로 소개하지 않고, 저자의 기준에 따라 재편집해서 배치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간관계, 일상, 업무 세 부분으로 커다랗게 분류하고, 각각의 내용을 다시 망치(낡은 사고를 깨트리는 지혜가 필요할 때), 톱(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자르고 삶을 정돈할 때), 드라이버(느슨해진 자신을 다잡고 싶을 때), 줄자(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앞일을 준비할 때)로 표시해서 독자를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털어내고, 친근하게 고전에 접근하기 위한 저자의 전략입니다. 저자의 깊은 한문 내공과 다양한 경험에 더욱 돋보이는 점은 해박한 독서량입니다. 저자는 중용만을 고집하지 않고,  성서부터 최신 경영학 이론까지 풍성한 근거를 사용해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던바의 수(Dunbar's number)였습니다. 이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옥스퍼드대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주장한 것으로, 아무리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은 150명이라는 가설입니다. 저자는 중용의 통(通)과 던바의 수를 연결하여 인간 관계의 진정한 의미와 해법을 제시합니다.  이처럼 저자의 열정, 참신한 구성, 풍성한 내용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먼가 석연찮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책과 자료를 뒤적이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자기계발, 가볍거나 무겁거나


 마음의 밭이 맑고 깨끗해야 바야흐로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워도 좋을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의 착한 행위를 보고는 훔쳐다가 그것으로써 사리를 건지고, 하나의 착한 말을 듣고는 빌려서 써 단점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또한 적에게 병기를 빌려 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이 된다. 


-채근담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저는 제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고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한자 문화권에 속하며서도 고전 원문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 한문은 시험과 입시를 위한 과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서삼경은 그렇게 제목만  암기하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고전들을 유려한 한글로 풀어내고, 널리 알리는 작업 또한 노력에 비해 결과는 아직 미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문제일까요?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고전을 직접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있습니다. 로버트 풀검의 저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도 실천하지 않거나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고전은 모든 독서가 그러하듯이 사회적 맥락과 실천의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개인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독자 모두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고전이라는 권위에 기대어 편리하게 내용을 전개하고자 하는 잔꾀를 부리지 않는 것이 저자의 자존심이라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해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은 독자의 양심입니다. 고전을 경외하며 거리를 두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것도 명백한 잘못입니다.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고전을 쉽게 풀어내는 것이 학자들의 의무라면, 배운 바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입니다. 과연 2016년 대한민국과 시민들에게 고전 중용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공을 위해 챙겨먹는 영양제일까요? 힘든 하루를 버티기 위한 위한 비상약일까요? 누군가는 '천 사람의 눈에 천 명의 햄릿이 있다면 천 사람의 마음속엔 응당 천 명의 공자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여전히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답을 찾아 여행을 계속 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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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9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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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30 1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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