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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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할머니...하면 어떤 생각부터 떠오르시는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난 어릴적 외할머니께서 담배 한대 맛나게 피우시며 들려주시던 만담에 가까운 옛날 이야기들이 먼저 생각난다. 늘 입으시던 한복과 할머니 냄새도 생각이 나고. 즐겨 드시던 시골 막걸리도 생각난다. 하여간 이 모든 것을 아우를수 있는 단어는 아마도 '편안함'일 것이다. 대부분 할머니라는 단어에서는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시오노 나나미라고 하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콧등 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아직도 형형한 눈빛을 반짝이며 예리한 통찰력으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일 것 같은 생각부터 든다. 우리 나이로 내일 모레면 75살이 되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 내가 열광하는 이유는 나이를 무색케하는 필력과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있는 신선한 주장들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표작인 '로마인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녀가 쓴 대부분의 책들을 나는 즐겨 읽어왔다.

영화에 대한(물론 몇 십년 전 오래된 영화들이 대부분이지만) 조예도 깊어 영화를 소재삼아 쓴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어차피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는 것은 영화 자체의 이야기 보다 영화를 소재로 삼아 펼치는 그녀의 인물론(특히 남자론)이나 주장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보지못한 영화들을 소재로한 글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 책 < 로마에서 말하다>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일단 책표지에 지은이가 시오노 나나미로 되어 있지만(알라딘 책소개에는 공동저자로 되어있다) 조금은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책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이야기의 80 ~ 90% 이상은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가 하고 있다. 일부 장에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도 제법 등장하지만 대부분은 시오노 나나미가 화두를 던지면 아들이 거의 다 이야기를 주도하고 시오노 나나미는 맞장구를 쳐주거나 약간 거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글을 기대하고 이 책을 사거나 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일부 장에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오노 취향의 표현들을 아들도 많이 하고 있다만(마스트로얀니는 왜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가, 인기 많은 남자의 두 가지 타입 같은 챕터) 그래도 조금은 맥이 빠진다.

아마도 그건 순전히 내 짐작인데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시오노 나나미의 배려가 아닐까 한다. 한때 영화산업에 종사하였다지만 지금은 그저 30대 후반의 백수( 책에 보면 엄마의 저술활동을 돕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로 추정되는 아들을 저술가로 데뷔시키기 위해 엄마가 자신의 네임 밸류를 이용한게 아닐까 하는.... 솔직히 안토니오 시모네라는 시오노 나나미 '아드님'이 전하는 영화촬영 현장의 뒷얘기라든지 영화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사서 보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속된 말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영화에세이'라는 낚시에 제대로 걸린 느낌이다.

그래도 책 전반에 걸친 모자간의 대화가 아주 수준미달은 아니니 영화, 특히 올드영화에 관심 많은 분들은 일독해도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처럼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읽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한 분들이라면 조금은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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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12-1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안녕하세요.
로마인 이야기는 안 읽었지만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를 읽은적이 있어요. 야클님 말씀처럼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고아한 분위기가 은은하게 풍겨나올 것 같아요. <남자들에게>를 읽으면서 남자보는 안목도 좀 높였구요^^

야클 2010-12-17 16:18   좋아요 0 | URL
아, 반가워요 Arch님! 이름이 참 근사하시네요. 가끔 님서재에 살짝 방문해서 글만 읽고간 적도 있어요. 이렇게 발자국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들이 종종 강대국 논리에 근거하여 전개된다는 점 때문에 비판도 많이 받지만 글 읽는 재미 하나는 보장하기 때문에 전 즐겨 읽고 있답니다. 기회된다면 <로마인이야기>는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특히 전반 6~7권까지 (그중에서도 카이사르 부분)는 압권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