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다녀왔다. 명절마다 가는거니 일년에 두번 가는 셈이다 그런데도 솔직히 명절때만 되면 집에서 기나긴 연휴를 보내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싶어진다 게을러서 그런가보다 가기 싫은 발길을 억지로 재촉하며 터미널로 나섰다 터미널에 연휴시작 첫째날임에도 불구하고 터미널 내부는 한산해 보였다 표를 끊으러 매표소로 갔더니 예전과 달리 승차권자동발매기를 없애버려서 많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 10분 정도 서서 음악을 들으면서 기다려서 표를 끊었다 부산-삼천포 구간 8500원 차비가 올랐다는 생각보다 승차권 디자인이 2년전에 비해서 상당히 구려졌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버스를 타려고 승차장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금방 왔다. 줄도 내 앞에 20명 정도 채 안되서 좋은 자리를 잡아서 앉았다. 버스가 출발할 즈음 내 옆에 누군가 앉았는데 얼핏 보니 짙은 파란색 제복을 입은 공군 이등병이었다. 나 자신도 공군 출신인지라 말을 걸어봤다 나이 스물셋에 뒤늦게 군대에 입대를 한 늦깍이 신병이었다. 이제 자대생활이 시작된지라 힘든점이 많아 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가 보니 항공고등학교 출신이란다 그래서 비행기 몰아봤어요 라고 물었더니 호주(오스트레일리아)가서 경비행기 라이센스도 따고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왜 공군 사병으로 들어갔냐고 장교나 아니면 조종학생으로 가지 그랬냐니깐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겸손해한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멈추길래 화장실에 다녀와서 앉아있으니 후배분이 음료수를 두개를 사들고 들어온다 선배님 뭘 좋아실지 몰라서 아무거나 사왔습니다 라면서 좋은 표정으로 웃는다 자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단다 첫 휴가를 나온거라 지금까지 누구에게 하소연도 제대로 못해봤다고 속이 다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고 하니 오죽했겠나 싶으면서도 잠깐이면 금방 힘든 때 지나가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을거라고 조언을 해줬다 절대 몸다치지 말고 제대하라는 말을 할 즈음에 버스가 삼천포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제대하고 나서도 같은 부산에 사니깐 우연이라도 보지 않겠냐며 작별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같은 공군예비역 현역이 얘기를 하니 나또한 2시간 동안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저녁이 다되서야 시골에 도착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삼천포시에 있는 용암포라는 곳이다 사량도 유람선으로 유명한 그곳이다 대문안을 들어서니 예전과 달리 확실히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서 못오는 삼촌들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아버지는 벌써 주무시고 할머니랑 작은 어머니랑 아들같은 동생 영재가 있었다 떡국 남은걸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작은 방에 가서 찬장유리에 비치는 모습을 거울삼아 연습을 했다. 한참을 연습하다보니 무릎이 저려왔다 운동을 한지도 오래 되고 먹는게 부실해서 그런건지 요즘 들어 이래저래 몸이 좀 안좋다 겨우 25살 먹은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닌거 같은데.. 그래서 일찍 잠을 청했다 사촌동생 4살짜리다 영재 이녀석이 자다가 보일러 스위치를 꺼버려서 새벽내내 기침을 하면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콧물이 계속 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축 쳐진 몸을 이끌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뒤에 옷을 챙겨입고 안방에 가서 좀 앉아있으니 작은댁에서 할아버지가 내려왔다 이것저것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챙기고 절을 올렸다. 아버지랑 삼촌들이 있을때는 방에 안들어가고 문간 밖에서 절만 했던터라 이번에 처음 안에 들어가서 해봤는데 잘 몰라서 실수도 하고 계속 할아버지께 여쭈어가면서 도와드렸다
제사를 끝내고 작은 방에 누워있으니 서울에서 일을 하는 작은 집 고모가 내려왔다 나랑 한살 차이다
어릴때는 내가 우세였는데 요즘은 볼때마다 내가 얻어맞는다 이 나이에 여자를 때릴수는 없다고 애써 위로하지만 사실 힘에 눌린거지 성별은 별관계없다 저번 명절때 내려와서 같이 텔레비젼을 보다가 갑자기 발로 내 팔뚝을 찼는데(고모는 장난이었단다) 시퍼렇게 멍이들어버렸다. 이렇게 말해도 친척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잘 따르고 맘을 여는 사람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서울에 가끔 올라갈때마다 신세를 지기도 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고모랑 오랜만에 봐서 토킹 어바웃을 하다보니 버스 시간이 다되어서 할머니께 간다고 말했더니 이것저것 챙겨주시느라 바쁘시다 이번엔 아버지나 어머니 두분다 안내려오셔서 나 혼자 내려왔다 차가 없어서 이만큼밖에 못챙겨준다고 미안해하신다(참고로 두손 가득히 들고 오느라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이것저것 챙기는 할머니의 손을 보다보니 이곳저곳에 바닷가일과 밭일로 인해서 손이 다 갈라지셔서 반창고를 이곳저곳에 붙이시고 손등이 다 트셨다 마음이 안좋았다 자주 못내려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차마 밖으로 하질 못하고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최소한 3개월에 한번씩은 시골에 내려오겠다고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워낙 무뚝뚝하고 시골에 그다지 정이 없으셔서 전화도 거의 안하시고 명절때가 아니면 찾지도 않으신다 거기다 삼촌들도 마찬가지인지라 예전과 달리 집이 명절이 되어도 썰렁하다 그래도 이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으신지 하루만 더 자고 가라고 그러시는걸 일해야된다는 핑계를 대고 올라왔다 마음이 참 안좋다
나 어릴적만 해도 우리 시골에 애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명절이 아니라 평소에도 방학때나 내려오면 시끌벅적하게 동네꼬맹이들이랑 어울려서 이리저리 놀러다니고 낚시도 하고 불장난도 하고 폭죽놀이도 하면서 그렇게 신나게 명절을 보냈다 그리고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어서 하루빨리 추석이나 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그런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내또래 아이들도 커가면서 도시로 취직을 하고 공부를 하러 다른곳으로 가고 하는 바람에 시골에는 노인분들만 남아서 젊은이들이 거의 보이질 않고 예전과 같이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동네어른들께 야단맞아가면서 놀던 모습도 추억으로 남아버린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조금씩 챙겨드려야겠다 안부전화도 가끔씩 해드리고 바쁠때는 주말에라도 잠깐씩 가서 일도 도와드리고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