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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데이빗! ㅣ 지경사 데이빗 시리즈
데이빗 섀논 글 그림 / 지경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데이빗의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안돼, 데이빗! 난 하루에 안돼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할까? 이 책을 읽은 후 내 사는 모양새를 돌아보니 한심하다.하루 왠종일 이 말을 입에 달고 있으니 말이다. 눈만 뜨면 시작되는 안돼라는 말은 이렇게 하면 다치지, 저렇게 하면 동생이 아프잖아, 형님 숙제하는데 책상위에 올라가면 안돼 등등으로 끝없이 이어지는데...아~ 정말 안돼로 시작된 하루해가 안돼로 저물어 가는 내 일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작은 그림책은 생각없이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투명하게 비춰준다.
안돼라는 말 하나로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제약하려는 어른들의 권위에 도전하듯 아이들은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뛰고 굴리고 부딪치고 울고 웃는다.아이들의 그 넘치는 에너지를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엄만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지만. <안돼, 데이빗!>은 아이들에겐 평소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데이빗을 통해 시위하듯 퍼붓는다. 난처하고 혼날까봐서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그리고 엄마의 요구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한껏 골이 나 있는 데이빗은 나와 아이의 관계를 객관화시키는 뜨끔함으로 설득력있게 엄마를 반성하게 한다.
또 엄마에겐 너희 엄마만이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엄마들도 다 똑같다라는 말을 대신해 주는 그래서 엄마의 안돼라는 말을 정당화시켜주는 기특함도 있다.^^ 작가 데이빗 섀논의 어릴적 자서전같은 그림책 속의 데이빗은 정말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이고도 남아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방지축이다. 벌거벗은 몸을 양껏 벌이고 살판 난 개구락지처럼 펄쩍펄쩍 뛰어가는 개살궂은 모습에선 우리 가족들은 한 아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우리 집 둘째. 큰아이와 난 둘째 녀석을 쳐다보며 똑같다 똑같다를 외치며 넘어가고 말았다.둘째 아이도 그림을 보더니 엄마와 형을 번갈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어 보인다. 인정한다는 듯. 그 후 큰아이는 사촌 누나까지 동원해서 새로운 놀이를 하나 개발해 냈다. 이름하여 <안돼 OOO!> 책을 읽으며 데이빗 대신 동생 이름을 붙여넣고는 온 방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며 까르르 까르르르 배꼽을 싸쥐고 넘어간다.너무 웃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아픔을 호소하고는 이내 또 멈출 수 없는 웃음때문에 갈갈갈갈 갈갈갈갈... 쳐다보고 있는 내가 다 힘들 지경이다.
동글한 얼굴에 송편 모양 귀, 세모 모양 코에 손가락 반이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는 크고 빠꿈한 콧구멍,잘 닦지 않아 썩어버린 듯 삐죽빼죽 아무렇게나 생긴 이를 가진 아이 데이빗! 하지만 엄만 오늘도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 되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야 이리오렴. 엄만 널 사랑한단다. 따뜻하게 전해지는 엄마의 품속을 파고드는 아이의 얼굴은 조금전과는 전혀 다른 순한 양이 되어 있고 어느 새 하루의 피곤함도 눈 녹듯이 사라진다.
책을 덮으며 아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며 씩- 미소짓는 것으로 엄마와 아이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쾌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