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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야, 공차자
김용택 엮음 / 보림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 가을 TV에서 5일동안 방송된 프로 중에 우리가족들을 그 시간만 되면 만사를 제쳐 놓고 TV앞으로 불러 앉힌 프로가 있다. 창우와 다희의 가을 동화다. 애기 아빠가 좋아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가 나와서 좋았고 여름 휴가만 되면 베낭 꾸려 놀러 가는 섬진강이 나와서 좋았고 자연 속에서 커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그 아이들 옆에서 스스럼없이 몸을 낮추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좋았다.
창우와 다희는 3학년으로 달랑 둘만 남아 외로우나 즐거우나 항상 붙어 다닌다. 또래 아이들이 없는 탓에 둘 중 하나가 없으면 그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 시집에는 창우의 시가 빠져 있지만 창우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조그만 일들은 모르는 것이 없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 날의 주제를 내어 주면 아이들은 얼른 책보따리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시를 쓴다. 보이는 그대로를 공책에 옮겨 놓는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다.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만큼이나 제법 시인 티가 난다.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글을 못 쓴다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정색을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잃어버린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마암 분교를 졸업하고 마암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섬진강과 섬진강가의 아이들을 지키며 살아가시는 소박함이 너무나 인간적이다. 이런 선생님과 유년의 한 부분이나마 함께한 이 아이들의 앞으로의 삶이 어떠할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우리도 섬진강으로 이사갈까 라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었는데 며칠 뒤 신문에서 보니깐 서울에서 전학 올 아이들로 내년, 내후년까지 학생수가 꽉 차서 이젠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한다. 선생님은 축구할 때 인원수가 모자라서 그게 늘 아쉬웠는데 이젠 제대로 경기할 수 있겠다며 함박 웃음이시다. 우리집 큰 아이는 창우와 다희를 무지 좋아한다. 그리고 곁에서 늘 아이들을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도.
도저히 꿈 꿀 수 없는 일들이 그 아이들에게는 일어나고 있으니 부러운 것도 당연할 것이다. 시집을 내밀며 마암분교 아이들의 시집이라고 했더니 무지 신기한가보다. 글 속에는 아이들의 생활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노동의 고단함과 노동의 즐거움을 쓴 시들도 있다. 이런 시들에서 꾸미지 않고 치장하지 않은 아이들만의 냄새가 묻어나 더욱 좋다. 가끔씩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학교 소식지에 나오는 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솔직함이 있는 시들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삶의 힘이 있는 아이들.. 지난 가을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