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있게 다가가는 도입부를 읽을 때마다 어떤 기대로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기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도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기대 심리에 더욱 책 앞으로 바싹 다가와 앉게 되구요. 누가 있는지 들어가 볼까요? 파란 문이 열리면 나타나는 꼬마 미카엘! 자신과 닮은 어린아이를 만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금방 함박 웃음이 피어 나지요. 다음엔 빨간 문이에요.다음은 초록문 다음은 하얀문 이렇게 도미노처럼 방에서 방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문들은 똑똑 소리와 함께 열리고 항상 새로운 친구들이 아이들을 정답게 맞이해 주는지요. 똑 똑 소리가 리듬감 있게 반복되고 이 소리에 맞춰 아이들은 열심히 책 속의 문을 두드리는 재미로 가득 찬 예쁘고 아기자기한 책이랍니다. 마지막에 다시 파란 문이예요.문이 열리면 처음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누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 아이는 이 책을 읽고나면 꼭 달님 안녕을 들고 오더라구요.^^
요즘 저희집 막내 녀석이 아직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나이도 아니면서 단지 늑대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들고 오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사는 오로지 늑대뿐이지만 얼마 전부터 말문이 제법 트여 '늑대? 늑대!'하며 엄마에게 자신의 말을 확인 받으려고 연신 뒤에 앉은 엄마를 돌아다 보며 '오, 그래. 늑대네!'라는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요.그 옆에서 저희 집 둘째 녀석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희죽거리며 그런 엄마랑 책을 번갈아 쳐다봅니다.아마 이 녀석은 가면 속의 주인이 늑대인지 돼지인지를 엄마가 물어주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전 아이들과의 이 책의 읽기에 한창 몰두하며 녀석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는 듯이 행동하고 대답하지만 항상 이 책을 읽을 때면 나에게 딸이 있었다면 난 이 책을 통해 나의 딸이 무엇을 얻게 되길 바랄까?라는 물음을 던지지요.또한 그 반대 급부로 우리 아이들이 자라 그들의 반쪽을 만나게 될 때 어떠한 가치로 그들과는 또 다른 성인 여성에 대해 규정짓게 될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답니다. 지금은 제 의식 속에 여성과 함께 남성도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여성의 피해의식이 더 큰 것은 부인하기 힘들거다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며 제가 자라며 받았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원망들을 정당화시켜 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아주아주 사소한 넌 남자애가...넌 여자애가....라는 말로 시작 된 일련의 거침없고 다분히 가학적인 말들은 오히려 그 사소함에 비해 일으키는 파장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 뜨게 되는 아이들에게 또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의 영혼에 그 말들은 한마디로 찬 물을 끼얹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정신을 화들짝 깨게하는 말들이 분명하니깐요.이런 말들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로 서서히 편입되며 자신들의 성의 정체성에 대해 삐뚤어진 가치를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특히 아들을 둔 엄마들이 꼭 삼가해야 할 말은 ' 넌 남자애가 왜 찔찔거리며 우냐?'라던가 '남자는 눈물을 함부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어릴 때 부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자라나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남의 이목을 더 중요시해 결단력없는 사람이 된다는군요.기분이 나빠도 좋은 척 한다는 것은 어쩜 슬픈 일이잖아요.그리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신데렐라 콤플랙스에 대해 말이 나온지가 벌써 오래 전의 일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우리 엄마들은 딸아이를 위해 신데렐라를 사 주고 숲 속의 잠자는 공주를 필히 읽어야할 명작으로 이해하며 아무 주저없이 아이들 앞에 내밀고 있으니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신데렐라의 흡인력은 굉장한 것이니 내 아이가 당당한 주체로 서길 바라는 엄마라면 반드시 이런 그림책은 읽고나서 아이와 신데렐라의 삶이 무엇이 문제인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아이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객관화시키는 능력이 약하니 엄마의 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그래서 전 그림책 아기 돼지 세 자매와 종이 봉지 공주는 여성의 힘으로 자신의 새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점에서 신데렐라나 여타 공주풍의 그림책을 대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아기 돼지 세자매 이야기는 이렇답니다. 돈 많고 멋진 남자를 만나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런 남자에게 선택당하기를 바라는 언니 돼지들은 결국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되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슬기롭고 당찬 막내 돼지는 많은 남자들의 우상이 되어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선택하게 되지요.막내 돼지가 어떤 돼지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으론 아마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더욱 건강하게 채워나갔을 것 같네요.
전 유쾌한 그림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책도 역시 아주 재미난 이야기란 글들을 읽고 구입하게 되었죠.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다섯 살인 제 아이는 아주 놀라워하며 입을 딱 벌리고 한참 그림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고 있더군요. 전 처음에 주인공 조지가 자신이 강아지인 것을 몰라 야옹 꽥꽥거려 멍멍하고 짖는 연습을 시켜 조지 자신이 강아지임을 각인시키는 내용의 책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이유는 딴 데 있었죠. 여기서 이야기를 다해 버린다면 읽어 주는 엄마가 재미없겠죠. 엄마가 놀라고 재미있어하면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하니깐요. 마지막에 조지가 드디어 멍멍하고 짖을 수 있게 되자 조지의 엄마는 너무 기쁜 마음에 조지를 자랑하고 싶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조지야 짖어봐하죠.그런 엄마의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진가봐요. 그런데 조지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안~녕~이라고 했데요. 또 다시 의사 선생님께 돌아가야 할까봐요. 사람끄집어내러....?
팬티라는 말이 들어 있는 제목을 듣는 순간 엄마인 나부터 호기심이 발동하는 책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팬티 중에서도 표범팬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벌써 어디?어디?하며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고 달려들더니 책장을 넘기기 바쁘다. 결국 아이들은 나도 표범 팬티 사 줘!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책 뒷 표지에 보면 윤재에게...라며 윤재 아빠 이강화님의 글이 실려있다. 읽으면서 윤재는 참 괜찮은 아빠를 두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정직하게 그려 보았다 는 아빠의 솔직하고도 담백한 사랑이 담겨있는 글귀가 가슴에 남는다. 책을 펼치면 내 표범팬티 어디 있어? 하며 서랍장을 뒤지는 아이의 엉덩이가 얼굴을 내민다. 엄마(또는 아빠)는 아기 사자가 아빠 흉내 낸다고 쓰고 다녔대.라며 엉뚱한 대답을 한다. 이렇게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위트와 재치있는 말과 그림으로 짧게 짧게 이어가는데 특히 엄마의 대답이 유화풍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그림들과 결합하여 독특한 느낌을 준다. 표범 팬티가 새로운 주인을 만날 때마다 목걸이로 물안경으로 그 용도가 엉뚱하게 변화되는 걸 보면서 아이와 같은 동물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달님 안녕은 정말 좋은 아기 그림책이예요. 읽을수록 맛이 나는 그림책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군요. 글도 몇 자 되지않는 그림책에서 맛이라니? 너무 후한 점수일까요? 처음에는 베스터셀러니까 작가 이름만 믿고 구입했는데 역시 아이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단순히 아이들이 좋아하니깐 좋은 책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읽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달님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입됨을 느낄 수 있더군요. 저도 모르게 어느새 달님 얼굴을 닮아가며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죠. 그런 느낌이 들 때는 달님이 꼭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다정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답니다. 이런 느낌은 아이와 엄마와 달님이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아 따뜻하고 푸근하지요.이렇게 엄마와 아이의 감정을 달님을 통해 서로 느끼고 만질 수 있게 해 주는 그림책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같은 책을 반복해서 계속 읽어주다보면 가끔은 지겨울 때도 있지만 그렇게 아이의 요구에 부응하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왜 이렇게 좋아할까?라는 의문이자연스럽게 풀리더군요.엄마도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림책 읽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게 되구요. 아이들 그림책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많이 읽는 방법밖엔 없는 것 같아요.그래야 아이들의 그림책을 이해하는 마음도 자라고 아이들의 세계로 한 발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더 좋은 그림책을 볼 줄 아는 안목도 가질 수 있는 것 같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