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위안페이 평전 - 시대보다 먼저 ‘현대 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
후궈수 지음, 강성현 옮김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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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評傳)이라 함은 비평(批評)을 겸(兼)한 전기(傳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정치가나 기업인의 평전은 몇번 읽어 봤지만 교육자 그것도 중국 교육자의 평전은 처음이라 사뭇 흥미롭게 이 책을 읽어 내려 갔다.

 

이 책의 주인공 차이위안페이 [蔡元培(채원배), 1868~1940]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그는 시대보다 먼저 ‘현대 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였으며  중국의 윤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중국 교육회와 급진적인 혁명결사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였고《소보》 발간에 참여하였다. 중화민국 성립 후, 초대 교육청장이 되어 근대 중국 학제의 기초를 세우고 베이징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5·4운동의 아버지라 불렸다.

 

현재까지도 중국인들은 그를 20세기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걸출한 학자로 여기고 있다.

 

중국 근대사를 거쳐간 인물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차이위안페이는 지식인의 전형이요 선구자라고 칭할 만하다. 그는 민족혁명과 인권보장 투쟁에 일생을 바쳤을 뿐 아니라, 중국 근대교육과 과학발전의 기초를 닦은 개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어린시절은 전통적인 중국 지식인의 성장과정이었다. 그는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원의 관리가 되면서, 전형적인 중국 관료로 탄탄대로를 열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1894년 갑오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크게 패하면서 차이위안페이의 사상도 크게 변화하게 된다. 그는 중국이 낙후해진 것은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5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사오싱, 상하이, 항저우 등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애국사상과 민권, 진보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한편으로는 정치조직인 광복회를 설립하는 등 쑨원과 같은 여러 혁명가들과 함께 봉건왕조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1907년에는 유럽의 발전된 교육제도를 배우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911년 쑨원의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차이위안페이는 교육부장관을 맡아 자신의 교육 이상을 실현할 바탕을 얻게 되었다. 차이위안페이는 우선 낡은 교육체계를 개혁했다. 경전강독만 중시하는 구교육을 배척하고 남녀의 교육평등, 근대식 학제 등을 실시했다. 이는 차이위안페이가 중국교육사에 남긴 가장 커다란 업적이다.


그는 위안스카이가 중화민국의 총통이 된 후에도 교육부장관으로 재직했으나, 그가 쑨원 등 혁명파와 약속한 바를 지키지 않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보이자 곧 사직하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일하며 공부하는 ‘근공검학勤功儉學운동’을 주도했다. 이때 2000여 명의 중국 학생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며 학업에 정진했다. 훗날 중국의 지도자가 된 많은 유학생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중국 공산혁명을 주도한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27년에는 중앙연구원을 설립하고, 중국 근대과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70여 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제반침략대회 중국분회 주석으로 추대되어 활동했고, 상하이가 함락되자 홍콩으로 이주했다가 향년 7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 책의 역자는 차이위안페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20년 가까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원작자인 81세 백발의 후궈수 선생을 직접 만나 나이를 초월하는 우의도 다지고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 한권의 평전이 나왔다고 하니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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