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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 인문주의 예술가의 초상 ㅣ 마로니에북스 Art Book 7
스테파노 추피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창조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드러나는 정도는 차이가 있다. 일상에서 재밌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손은 판화작업 중에 생긴 상처와 채 아물지 않은 흉터, 산화제로 인한 벌건 화상 자국으로 성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명성은 그냥 얻은 것은 아닐 것이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그의 창조성은 타고난 열정과 성실함에 가족의 뒷바라지가 더해지면서 나타났다. 그는 펜을 쥘 수만 있으면 곧 그림을 그렸다. 그가 13세에 그린 자화상은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줬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그렸다.
그는 여행 중 별다른 도구 없이 그릴 수 있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그의 수채화는 북유럽(알프스 이북 지역) 최초의 진경 수채화였다. 도안 전문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을 지역 최고의 목판화가에게 보내 공부를 시킨 아버지의 지원도 있었다. 뒤러는 바로 이 목판화로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명성을 얻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뒤러 뉘른베르크 출생했으며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 불리운다.
헝가리에서 이주해온 금세공사의 아들로 아버지의 조수로 일하다 1486∼1489년 M.볼게무트에게 사사(師事)하였고, 목판기술을 익혔다. 1490∼1494년 콜마르 ·바젤 등지를 편력, 목판제작에 정진했다. 1495년 귀국하여 공방을 차리고 동판화를 시도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그린 수채풍경화는 독일예술이 처음으로 도달한 순수풍경화라고 할 만하다. 귀국 후 A.D.라는 사인을 쓰기 시작했다.
1498년 목판의 연작 《묵시록》《대수난》에 착수, 1501년경부터 동식물의 형태학적 연구 시작, 1504년 최초의 인체비례의 수작 《아담과 이브》를 제작했다. 1505년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 《장미관의 성모》《젊은 베네치아의 여인》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전자는 군상처리(群像處理)에, 후자는 자화상을 포함한 초상화의 전개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하여 뒤러는 명석한 퍼스펙티브와 인체표현을 터득하여 점차 독일의 전통으로 옮겨갔다. 그것은 후기 고딕의 엄한 구성과 원근법의 결합인데, 뒤러는 독일 전통에 충실하였다. 그의 인체와 의상과의 관계를 보면 명백한데, 다소 생경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귀국 후 1511년경까지는 빈미술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성도(萬聖圖)》 등 종교화의 대작을 몇 점 제작했다. 1513∼1514년 동판화의 3대 걸작 《기사(騎士) ·죽음 ·악마》《서재의 성(聖) 히에로니무스》《멜랑콜리아》를 발표, 인식 ·윤리 ·신앙을 상징화한 것을 보아도 그의 독일적 본질을 알 수 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에칭은 그 후의 렘브란트의 판화를 예견하게 한다. 1515년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연금을 받고, 1520년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유화 중의 수작은 《4성도》(1526) 《만성절》(1511) 《자화상》(1498) 외에 몇 폭의 성모자상 및 《요프스트 플랑크펠트》(1521)를 비롯한 초상화들로, 초상화에서는 빛과 그늘의 분열, 종교개혁 ·농민전쟁 시대의 복잡다기한 인격을 반영했다. 유채화 약 100점, 목판 350점, 동판 100점, 소묘 900점은 독일 르네상스의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화가의 삶과 예술을 당대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정치적인 문맥 속에서 보여주며 책의 본문은 화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역사적 문화적 배경, 주요 작품들에 대한 분석으로 나뉘어 있어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세계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아주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