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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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 맨: A Single Man>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전작 <베를린이여 안녕>을 읽어본 기억이 있어 인터넷 쇼핑 중에 그냥 이름만 보고 딱 고른 책이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내 취향에 입각해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던 <베를린이여 안녕>보다 훨씬 괜찮다. 이럴 때 요즘 한국인들이 흔히 쓰는 말이 바로 이거다. 대박!
 대박은 대박이지만 조심하시라. 얘기했다시피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해 대박이라는 것이지 당신 입맛에도 그러할지 아니할 지는 장담하지 않겠다. 이 책을 쓴 1962년,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같은 사람을 서양인들은 ‘퀴어’라고 불렀고, 10년쯤 뒤에는 ‘게이’라고 일컫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쿠바에서 날아온 소련제 원자폭탄을 탑재한 미사일에 대한 공포로 인해 좀 산다하는 집에선 개인 방공호를 파고 응급식량을 사재기해 쌓아 놓는 일이 유행은 아니더라도 드물지 않았으며,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포감은 완전히 혐오와 기피를 동반했고, 일반적이지 않은 ‘퀴어’들은 성도착자로 규정하여 사회에서 격리시키자는 주장을 번히 주요 신문과 매스컴에서 외쳐대고 있었다. 즉, 퀴어는, 역자 조동섭의 해설에 의하면, 요새 말로 ‘호모새끼’ 정도의 욕설과 유사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이미 <베를린이여 안녕>에서 알고 있던 사실이라 하나도 놀랄 것이 없는데, 자신의 대리인인 소설의 주인공 조지가 완전한 남성 동성애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다니엘 페나크의 흥미로운 소설 <몸의 일기>를 보면, 주인공이자 이미 늙어죽은 ‘나’의 아들을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그가 말하기를,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로 변하기는 쉬워도 거꾸로는 거의 불가능한데, 이유는 이미 천국을 맛봤기 때문이란다. 물론 나는 ‘천국의 맛’이 궁금하지 않다. 천국의 맛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한 사람들을 이제는 성 소수자라고 하지 욕설을 퍼부을 대상으로는 생각하거나 지목하지 않는다. 이러기 위해 수백 년이 걸렸다.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는 남성보다 시기가 조금 빨랐는데, 이셔우드와 같은 영국 태생의 레드클리프 홀이 <고독의 우물>에서 거의 커밍아웃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고독의 우물>이 간행된 것이 1928년. 그러니 대강 32년 정도 빨랐다고 해도 될 듯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실제로는 남성 동성애자가 여성 동성애자보다 더 많은지 아닌지는 별개로 하고,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성적 선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다른 수컷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여성 동성애보다 남성 동성애를 더욱 불쾌하게 여겨온 것은 아닐까. 결국 이것도 남성에 의한 성 권력 때문이란 얘기. 이성애자인 내가 동성애자의 성적 감각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성애자들 몇 명이 모여 이야기해본 것 가운데 제일 그럴 듯한 건, 최고의 성적 쾌락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동성애인이 이성애인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냈을 때였다. 그러나 <싱글 맨> 같은 책을 읽어보면 동성애인들 역시 “당연히”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섹스의 쾌락만을 위해 동성의 애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성애자들은 도무지 ‘아직도’ 쉽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눈을 띄우는 것 가운데 제일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거다. 그들도 이성애자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사랑을 한다. 이성애자들이여, 그들의 섹스의 방식에 집착함으로써 동성애자들을 모욕하지 말라.
 <싱글 맨> 조지는 영국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교수와 비교하면)나이 많은 교수다. 시 외곽의 좋은 동네에서 약간 호젓한 곳에서 미국인 남자 애인 짐과 오래 살았다. 짐이 어느 여자와 눈이 맞아 대판 싸움도 하고 그러다가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짐이 자기 본가 오하이오에 들르러 가는 도중에 마주 오는 대형 트럭과 정확하고 단호하고 더할 수 없이 강하게 부딪혀 고통 없이 즉사하는 바람에 (사는 게 다 그렇다니까) 지금은 혼자 사는 남자, 싱글 맨이다. 이 조지가 아침에 일어나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깰 때까지 만 하루를 그린 소설.
 혼자 사는 동성애자 늙은 남성의 하루. 거리와 장소 곳곳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직도 젊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배회하고, 그러나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고 싶지만 내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이웃들도 있고, 제자들과 거리감 없이 지내고 싶어 하지만 너무 가까운 관계가 되기에는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진짜 친구, 남녀관계가 아닌 외로운 진짜 여자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어야 하고, 물론 술도 같이 마셔야 하며 가끔가다간 입술에 키스도 당해줘야 하고, 다 쓰러져가는 퀴어들의 집합장소인 술집에 가서 떡이 되도록 위스키를 들이켜야 하는 싱글 맨.
 이게 다다.
 너무 일상적이고 단순하다고?
 그게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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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0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설의 싱글맨이 창비에서 다시 나왔더라구요.
역자도 같고 해서 신간 대신 좀처럼 쉽게 구할 수
없던 구간을 중고서점에서 구해다가 읽었던 기억
이 나네요.

저자와 성적 취향이 같은 감독이 연출을 한 영화
버전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킹스맨이 주인공이었습니다.

Falstaff 2018-03-06 14:29   좋아요 0 | URL
ㅎㅎ 영화에선 넘 잘 생긴 남자들만 나와서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ㅋㅋㅋ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