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씨. 지금 네 권짜리 장편소설을 읽고 있는데, 어젯밤에 시 쓰는 최영미가 언제나 막강한 노털 문학상 후보로 알려진 En이 상습적 성희롱, 성추행자라고 자기 시 <괴물>에다 쓴 것이 밝혀져 또 한 번 매스컴을 탄 일이 자꾸 생각이 난다. 도무지 차분하게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동안 글 좀 쓴다는 시인, 소설가들의 입버릇, 손버릇에 대한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어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것, 생각나는 대로 한 번 써보자.


 1. 최영미가 등단한 것이 1990년대 초반. 당시 En과 아주 친했던 그쪽 글쟁이들, 무지막지한 말빨로 인구에 회자되던 작가들. 예컨대 Sok, 또 글은 정말 찬란하게 잘 쓰는데 일찍 죽은 몇 명 같은 이들이 주둥이를 통해 정말 기상천외한 발상을, 원고지 위에다만 써놓았으면 좋을 것을, 술잔을 들고, 앞에 누가 있건 간에 마구 떠들어댔던 건 유명한 일. 솔직하게 얘기하자. 1990년대 초반까지는, 특히 술집이나 회식장소에서 성적인 농담을 해대는 것에 대하여 한국사회는 끝도 없는 관용을 베풀었으며, 더하여 성희롱이 분명한 농담, 이야기 등을 많이 알면 알수록 스스로가 더 인기 있는 인물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는 했다. 물론 보통의 시민들보다 독서량이 많았던 나도 성적 농담을 무지하게 쏟아낸 인간이었음을 고백하고 또 반성하거니와, 가슴에 손을 얹고, 그것이 ‘성희롱’이란 범법행위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 지금까지는 절대 여성들 앞에선 입을 봉하고 있음을 밝혀야겠다. 자리에 틀림없이 남자들만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내 주둥이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찬란하게 돌아가는 걸 아직 말리지 못하겠다는 것도.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행위마저 자신의 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도 몇 년 전까지 En이나 Sok 같은 이들이 지난 세기에 여성 문인들이 있는 회식자리에서 거의 전부 입으로만 행해지던, 범법행위란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던 성희롱은 언어로만 저질러졌던 것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최영미 같은 이들의 얘기를 듣고, 그것이 언어는 물론이고, 손을 비롯한 신체기관을 통한 성추행이었으며, 그중 가히 대마왕의 왕좌에 앉아 좌우로 여류 문인들을 거느리던 작자가 바로 En이었음을 알고 참으로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2. 인터뷰를 보면, En과 문단권력자들에 의한 성추행, 유혹을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당연히) 거칠게 거절하면 10년, 20년에 걸쳐 피해자에게 문학적 불이익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서서히 시나 소설을 쓰는 힘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문학적 쇠퇴’를 변호 또는 변명하는 기재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도 운동선수들과 유사하게 계속 작품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만드는 공력이 떨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며, 이때가 진정한 은퇴시기라고, 은퇴하지 않으면 표절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고 조정래가 2015년에 인터뷰한 것이 기억이 난다. 물론 최영미의 경우는 아직 60살도 되지 않았으니까 문학적 쇠퇴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야기했을 것임을 믿어서 의심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주장하는 ‘전직 작가’가 없기를 바란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도 피해자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3. 우리나라 문단에 참으로 비겁한 사람들이 많다. 만일 En이 염병할 노털상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끔찍하다. 가문의 영광, 나아가 국가의 영광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쟁하기를 좋아했던 처칠도 받고, 미치광이 히틀러도 수상 후보가 되기도 했던 조털 노털 문학상을 받아 범국가적으로 북치고 장고치고 한 판 잘 때려먹었는데 누군가가 늦게 Me, too. 해버렸다면 가히 해외토픽 감 아니었겠는가. 문단에 자정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증거다. En이 술을 항문에 빨대 꽂아 흡수하시고 혀끝과 손끝으로 새까만 후배 여류 문인들을 주물렀다면, 그것도 수십 년에 걸쳐 쉬지 않고 지랄을 해댔다면 벌써 문제제기가 되고, 게임도 끝났어야 한다. 문제제기는 하기 싫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인간들. 문제제기? 그건 둘째 치고 En과 추종자들의 눈 밖에 나 자신의 문학인생(알고 보면 문학인생이란 게 어딨어. 다 그냥 ‘인생’이지. 굳이 일반 명사 앞에다가 ‘문학’이란 접두사 가져다 붙이는 거, 이거 진짜, 진짜 웃기는 그들만의 허영 덩어리다)에 스크래치 갈까봐 입도 벙긋 못하는 연놈들이, 한때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핵심 멤버였던 거 아닌가 말이다. 정권에 저항할지언정, 문단권력에는 찍소리 못하는 인간들. 좋다, 잘 먹고 잘 살아라.


 4. 최영미에 의하면 En들이 주로 결혼하지 않은 여류작가들을 타깃으로 했다는데, 내가 알기론 회식할 때마다 대마왕 En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그가 아무리 주물러도 까르륵대고 웃어넘기던 최영미 또래 미모의 인권작가, 여성주의 작가가 있어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건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힌트조차 드리지 못하겠는데, 만일 내가 들은 것이 진실이라면, 그 여자의 뇌구조가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취소. 정말 취소. 행여 고소당하면 나만 골로 간다. 근데(그게 사실이라면), 늙은이들이, 최영미의 말에 의하면 30년 선배새끼들이 주물럭거려도 싫은 척, 빼는 척 하면서 진짜로 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걸로 귀염 받으며 소위 문학적 동지들의 총애 속에서 살고 싶을까? 잘난 척은 오지게 하면서 말이지. 난 이 언니 책 안 읽은지 30년까지는 아니고 20년은 넘었다. 심지어 이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인권 또는 여성주의)영화도 전혀 안 봤다.


 5. 나는 남성으로, Me too는 수만 년 동안 이어지던 남성중심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번 이상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적 통과의례임을 인식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우려하는 것은, 인류가 두 다리로 곧게 서서 다니기 전부터 있었던, 여자를 유혹할 남자들의 권리와의 조화 문제다. 당연히 이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적당한 사회적 관습에 의해 선이 그어질 것이 틀림없으나, 남성의 호의적이고 소프트한 접근조차 접근을 당하는 여성 입장에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하게 박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는 우려다. 다행히 나는 넘어가지 않을 나무는 백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쓸데없는 공을 들이는데 (여전히)자신의 모든 힘을 쓰고는 할 것이다. 그거 어쩌나. 조금이라도 빨리 이에 대한 관습적 기준이 만들어지기 바란다. 여자를 유혹하는 권리야말로 천부의 것이 아닌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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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2-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n은 더 까여야 합니다. 작품도 졸라 구린 게.... 허구한날 노탈상 후보는 .... 제에기-
이제 후보에도 안 올랐으면 좋겠어요. 정말 쪽팔림.

Falstaff 2018-02-07 14:10   좋아요 0 | URL
En도 당연히 까여야 하고, 그 추종자들도 까여야 합니다.
그럼 슬프게도 장년 이상 작가들은 몇 명 남지 않을 듯하네요.

낭자 2018-02-07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류‘블로거 님께서는 ‘여류‘작가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드시나 봅니만 그 많은 여성작가들을 ‘여자‘라는 성으로 하나로 묶는 것이 정말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벌써부터 ‘당하고도 침묵한 니들도 더럽다‘는 소리 하기가 즐거우신가요? 정말로 패턴 나오는군요. 어디 단체로 학원 수강이라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Falstaff 2018-02-07 16:30   좋아요 0 | URL
반성하겠습니다. 낭자님 말씀이 다 옳습니다.
전 En이 남자의 몸을 만졌다는 얘기를 듣지 못해서 그렇게(‘여류‘작가라고) 썼습니다만, 그리 읽으셨으면 그게 맞겠지요.

Falstaff 2018-02-08 08:43   좋아요 0 | URL
암만 생각해도 ‘당하고 침묵한 자‘들보고‘ 너희들도 더럽다‘, 라고는 한 마디도 안 한 거 같은데, 그렇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겁나고, 그렇게 읽은 분들이 무섭기도 합니다.
‘알고도 모른 척한 모든 사람들‘을 좀 비아냥 거리긴 했습니다만.
이것도 그렇게 읽게 만든 제 잘못입니다. 역시 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