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 - 체코 아름드리 어린이 문학 1
카렐 차페크 지음, 요제프 차페크 그림, 변은숙 외 옮김, 이오덕 우리말 다듬기 / 길벗어린이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이거, 작가 이름 딱 하나 보고 고른 책. 알라딘 중고책방에서 산 거다.
 책의 제목이 이상하지? 천사의 알이라니, 천사도 난태생이야? 박혁거세가 난태생인 건 알지만 천사도? 나정이란 우물 옆에 말이 울어 가보니 알이 놓여 하나 있었다. 동네 노인이 나서서 알에 손을 대는 순간 알이 쪼개지면서 팬티도 입지 않은 사내아이가 우렁차게 울어대는데 이를 들은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이 춤을 추고 해와 달도 동시에 하늘에 떴다는 건, 나라를 세운 사람이 어찌 너희 잡것들과 같을 수 있을소냐, 신화 창조작업, 이 가운데 한 글자 빼서, ‘신화 조작업’의 결과로 당연히 성인(成人 혹은 聖人 둘 다 포함해서) 문학의 영역으로 쳐야할 것이다.
 근데 밤하늘에서 휙 금을 긋고 저 산 아래로 떨어지는 눈부신 불꽃, 별똥별, 그걸 보고는 저 속에 유리 가가린 같은 한 인간종이 들어 있는 거 아냐? 밤새도록 궁리하다가 새벽 놀이 붉게 물든 동녘에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모양이 정말 그림이라, 왜 새만 날 수 있는 거지? 같은 샌데 닭과 타조는 왜 날지 못했을까? 이렇게 별똥별과 하늘을 가르며 나는 새를 연관시키는 건 동화, 아동문학의 영역이다. 그리하여 동화작가이기도 한 척추질환 환자 카렐 차페크는 별똥별을 하늘의 천사가 낳은 알이라고 탁, 가정 하고나서, 이때 공룡의 후예인 온갖 잡새들이 별똥별로 모여들어 뜨거운 알을 잠깐씩이라도 품었지만 땅 속 벌레잡기에 미쳐서 알을 품지 않은 닭은, 다른 새들과 달리 천사의 가호를 입지 못해 날지 못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게 성인adult 문학이라면, 그 천사도 참 칠칠맞은 것이 어떻게 자기가 낳은 알을 간수하지 못하고 세상에 흘리고 다녀? 그러고 나서 자기 알을 품어준 모든 새들은 대가로 세상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게 만든다고?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해야겠지만, 동화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법. 기가 막힌 이야기 아닌가. 하늘에서 천사가 알을 낳아 빛나는 별똥으로 세상에 내려 보내 새들로 하여금 품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알을 만진 황새는 뜨거운 별똥을 만져 다리가 붉게 변한 채 하도 뜨거워 오늘도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으며, 칠면조도 별똥이 식지 않았을 때 품어서 가슴이 붉게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 칠면조는 내가 꾸며낸 거다. 당신들도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지금 절판 상태니까), 차페크가 이야기한 것 위에 당신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다른 새를,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같이 얘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모두 여섯 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 선집이며 표제작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는 그 가운데 가장 짧은 이야기다. 여섯 편 모두 “…… 이야기”라는 제목을 갖고 있어서, 차페크가 어린이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준다는 느낌이 들도록 동화를 썼다. 이 가운데 첫째와 두 번째 동화 <어느 의사 선생님의 길고 긴 이야기>와 <어느 경찰 아저씨의 길고 긴 이야기>는 마치 <팔리아치>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같은 “극 중 극” 형식처럼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즉 ‘짧은 이야기’를 연결시켜 크게 하나로 만드는, 동화에선 신선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카렐 차페크가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반인 1938년에 죽었으니 지금 시대에 특히 도시 아이들이 읽으면 어색한 장면이나 묘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만 하면, 또는 도시 아이들에게 왜 특정 장면이나 묘사가 어색한지 설명해줄 수 있기만 하면 아직도 이 책을 권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차페크 작품의 특징인 기발한 상상력이, 도롱뇽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나 곤충들이 의인화한 인간들의 먹고 사는 것과 번식하는 문제, 300년 이상을 사는 인간이 삶에 대해 취하는 비정상적 멸시 같은 건 성인을 위한 소설과 드라마로, 도깨비와 요정과 마법사 같은 대상이나 정직함, 도움, 선함 같은 깨끗한 이미지는 동화로 모습을 바꾼 건 아주 상쾌하며 정당한 선택이었지 않을까.
 그러나, 내 경우에도 아이들에게 외국 동화를 권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읽고 후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사주었는데(인정! 동화‘책’에 관해선 내가 좀 유별나다) 주로 창비아동도서 시리즈나 산하아동도서 시리즈에서 선택 했었으며(벌써 20년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권정생(당연히!), 이 책을 다듬은 이오덕, 이상권, 노경실 등이 떠오른다. 위인전은 전봉준, 우장춘, 이육사, 신채호 등이 기억에 남고. 전적으로 내 생각인데, 아이들이 읽을 동화책은 보다 흡수력이 좋을 수밖에 없는 한국 작품이 낫지 않을까 싶으며, 요샌 좋은 동화작가도 무척 많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그거 있잖은가, 전집. 무슨 동화 전집이니, 아동 과학전집이니, 그림책 전집 같은 거, 제발 좀 사들이지 마시라. 동화책은 상대적으로 많이 얇으니까 부모가 책방에서 길어야 한 시간만 서서 읽어보면 어떤 책이 좋을 듯하다는 거 금방 안다. 그런 거 골라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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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1-1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페크의 동화까지 찾아 읽으셨군요. ㅎㅎㅎ. 전 차페크 작품 다 읽어보고 싶어도 동화에는 손이 안 가던데 ㅎㅎ

혹시 앞으로 차페크 책 더 찾아 읽으시려다가 <프라하 -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이거 보시면 그냥 패스하세요. 전 이 책이 헌책방에 있어서 찾아가서 직접 펼쳐봤는데, 거기 담긴 차페크 작품은 ‘영수증‘이라고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에 있는 단편과 똑같고요, 그나마 그 짧은 단편을 다 수록하지도 않았더라고요. 원 대체 뭔 생각인지...;;

Falstaff 2018-01-16 10:02   좋아요 0 | URL
옙. 오른쪽 왼쪽 이야기 다 장만해놓았습죠. ㅎㅎㅎ
영수증은 한국의 출판사에서 찢어다 놓은 것이겠지요. 다행히 그런 옴니버스 책은 좋아하지 않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