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인
홍잉 지음, 김택규 옮김 / 한길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작가 이름이 홍잉, 무지개 그림자 ‘虹影’이다. 당연히 여자고 책 표지 사진이 실물이다. 젊어서는 이렇게 생겼었다.

 


 예쁘다고? 젊어서 안 예쁜 사람 있나? 내 사진 올려봐? (이렇게 말하고 보니 심각하게 캥긴다.) 이 아가씨가 나이가 조금 차 서른일곱 살 때 낸 책, <영국연인>. 말 그대로 영국인과 중국 유부녀가 연애하는 얘기다. 즉, 불륜. 유사이래 소설의 소재로 가장 흥미 있는 분야가, 일찍이 여러번 얘기했다시피 바로 불륜이다. 불륜은 남이 해도 불륜, 내가 해도 불륜. 불륜 저지르는 남자들(여잔 모르겠고), 정말 존경한다, 존경해. 난 여자 하나도 힘들어(혹은 ‘지겨워’) 죽겠는데 그걸 둘 이상씩? 그것도 동시에? 하이고, 재주도 좋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큰일이다. 혹시 마누라 이 독후감 읽으면 그야말로 내 제삿날이다. 그건 그거고, 이 책에선 실제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1908년 생. 스물일곱 살 먹은 잘 생긴 청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자유주의자들의 모임 블룸즈버리 클럽의 멤버로 활약했던 시인 줄리언 벨.

 엄마 이름이 버네사 벨. 누군지 모르시겠지? 좋다, 이모 이름이, 버지니아 울프. 두 자매의 성적 취향도 독특해서, 버지니아는 버네사의 남편 클라이브 벨과 심심하면 같이 자고, 그걸 알고 있는 버네사는 양성애자 덩컨 그랜트를 평생의 남자친구로 두면서도, 소설의 주인공 줄리언이 자신의 생부라고 믿는 로저 프라이와 법적 아버지는 서로 막역한 친구. 이 두 아빠는 학문적으로 현대미학에 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심지어 줄리언의 여동생 퀜틴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양성애자 친구 덩컨 그랜트의 딸. 버네사가 낳은 2남 1녀는 똑같은 법적 아빠인 클라이브 벨을 공유하며 각기 다른 생부를 가져서, 이런 경우를 흔히(사실 그리 흔하진 않지만) 아빠부자라고 하나?
 어려서부터 바람직한 환경에서 자란 우리의 줄리언은 지극한 자유주의자로 성장해 인종 간 발생하는 차별, 종교로 인한 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정말로? 그건 두고 봐야 알 일. 실제로 이 젊은 친구를 1935년에 중국 우한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고 2년 계약서에 서명한다. 줄리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한 번 봐야하는 거 아냐?

 

 

 난 황인종이라서 이렇게 생긴 백인이 잘 생긴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에선 키 크고 아주 잘생긴 바람둥이로 나온다. 지금도 일부는 그렇지만 자칭 자유주의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데 이 친구도 그랬다. 이미 열 명의 여자와 당연히 섹스를 포함한 연애를 경험했으며, 결혼을 요구하는 여자한테는 조금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전력이 있는 상태. 줄리언은 예상 외로 우한에서 자기보다 여덟 살이 많은 중국 여인에게 홀랑 빠지고 만다. 여인은 학과장 청의 부인으로 린이란 이름이지만 줄리언은 친애해마지않는 엄마 버네사에게 그녀를 “K”라고 칭하며 이미 관계를 가졌다고 편지한다. 편지가 적어도 두 달 정도 지나야 엄마한테 도달한 것인데 자신은 그때쯤 벌써 동양, 중국인 여자 하나 자빠뜨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에. ‘편지’한 것은 소설 내용이고 K라 칭하는 여인과 연애했단 건 위키피디아에 씌어있다. 그걸 홍잉이 <K: 사랑의 기술>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고, 영어판을 낼 때 <영국연인>으로 제목을 고쳤다는 것까지. K라는 건 사실 그의 연인 “린”의 이름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알파벳 순서로 열한 번째 여자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젊은 줄리언에겐 여자란 그냥 만나서 한 번 하고, 가능하면 여러번, 심하면 질릴 때까지 하다가 기어이 질리거나 (결혼하자는 요청, 협박, 간청 등과 비슷한)과한 요구를 하면 그냥 헤어지면 되는 인격체. 즉 학문이나 사업이나 인간 생활의 거의 다에 관해서는 동등하지만 성적으로는 그냥 만나서 즐기는 상대로만 여긴다는 뜻. 바람직한 가정교육에서 받은 영향이 클 것이다. 여자도 자기처럼 하라는 거다. 질투하지 말고, 규칙 만들지 말고, 제도에 구속받지도 말고, 그냥 즐기라고.
 처음에 홍잉은 소설의 제목을 <K: 사랑의 기술>이라고 했다는데, 난 이 제목이 훨씬 좋다. 영어로 써볼까? <K: The Art of Love>. 책을 읽어보면 내 의견에 동의하실 수 있으리라. 스펠링 하나가 빠졌다고. 즉, <K: The Art of Making Love>로 하면 더 환상적일 걸? 이걸 굳이 한국말로 제목을 만들자면, 이 책의 아홉 번째 장章의 제목과 같이 하면 된다. <방중술을 익힌 미녀>. 이 책? 딱 300쪽. 작가 서문이 무려 두 편이 나온다. 이 서문까지 포함해 300쪽. 역자 해설이나 연표 같은 것들은 300쪽 이후에 달려있고. 서문 포함 300쪽에서, 아이고 좋아라, 그 중에서 야한 베드씬이 거의 100쪽에 육박한다. 올해 연말에 책 시상식을 한다면 2017년에 읽은 최고의 베드씬 상은 틀림없이 이 책이 받을 거 같다.
 작가 홍잉은, 저 위 사진에서 보셨듯이, 세상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자였던 적이 없어서, 남성의 오르가즘을 여성의 것과 비슷하게 묘사하기도 하는데, 하여간 그건 뭐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이 책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자살 전의 버지니아 울프를 이모로 둔 키 크고 잘 생긴 영국청년이 중국에 영어 가르치러 와서 유부녀 아랫도리에 불붙이는 이야기라고 대강 이야기 할 수 있다. 천박하게 “유부녀 아랫도리에 불붙이는 이야기”라고 하냐고? 그렇다. 린은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어머니의 중국 전래의 비술이자 규방술을 다시 전수받은 천하신공을 지녔으면서도, 마치 옹녀가 강쇠를 만나야 비로소 만족할 수 있듯이, 남편을 포함해 여태 딱 맞는 남자의 것을 만나지 못했다가, 마치 소설처럼 아주 잘 맞는 상대를 만났으니 바로 그가 영국연인이자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인 줄리언. 줄리언 입장에선 그 나이에 무려 열 명의 유럽 여자와의 섹스를 포함한 연애를 경험하고 이제 열한 번째로 아름다운 중국 여인을 만났으니 그 신비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다가 머리카락과 눈썹을 제외하고는 몸에 아무 털도 나지 않은 천하의 비기秘器로 온갖 비기秘技를 구사하는 환상적인 여인네.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몸매부터 시작해 동양인 특유의 매끄러운 피부, 나이는 서른다섯 왔다갔다지만 서양 여자하고 비교하면 마치 십대인 것 같은 믿을 수 없는 모습. 거기다가 늦어도 오전 열시에 시작해 점심밥 건너뛰고 연달아 아홉 번의 방사를 가능하게 하고(아, 씨. 젊은 게 좋긴 좋다!) 섹스를 통해 피곤하기는커녕 젊음을 되찾아오는 천하신공. 나이 어린 줄리언으로부터 젊음을 빼앗아오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가 서로를 충만하게 하는 도교적 규방술을, 줄리언은 더 이상 미신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못한다. 으떠셔? 얘기만 들어도 후끈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언은 여전히 자유주의자로 결혼제도에 반대하며 남녀 관계에 관한 한 결코 질투하지 않고(진짜?), 중국혁명에 참여하고 싶은 충동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서 여자가 남편 아닌 남자와 섹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남편과 이혼 후 줄리언과 다시 결혼하는 방법 말고는 사회적으로 용인을 받을 수 없고, 만일 그러하지 않다면 심각한 경우 특정 계급 집단에 의하여 살해당할 가능성까지 있다(난 중국에서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몸을 100 토막을 내 죽이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 딜레마는 어이할꼬.
 입이 간질거려 마구 얘기하고 싶지만 어느 수위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참 애매하다.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 나머지 지역을 야만으로, 혹은 적어도 개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는 인종들이 유럽 백인종들이다. 제아무리 자유주의자라고 해서 과연 이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살갗 허연 것들이 정말 색깔 든 인종들을 자신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할까? 전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나 다 비참하고 끔찍하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걸 굳이 겪어봐야 아나? 아시아, 동양, 중국이라서, 여기서만 포로를 고문하고 칼로 전쟁범죄자의 머리통을 잘라버리는 야만이 횡행한다는 영국 청년의 오만. 유럽에서의 혁명이라면 전투를 통한 깨끗한 살인과 정당한 재판 후 처형 같은 지극히 신사적인 것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순진무구, 라기보다 아직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도련님.
 실제로 책의 주인공 줄리언 벨은 이모 버지니아 울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스페인 내란에 참여해 1937년, 짧은 생을 마감한다. 만 29세. 얜 중국 혁명에 치를 떨며 좌절하더니 왜 스페인까지 가서 죽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12-04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만 사두고 읽지 않았네요...

1930년대 전세계 인터내셔널 혁명에 동참
했던 지식인들의 허무주의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Falstaff 2017-12-0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것들은 거의 안 보이고요, 저는 동서양 간의 문화충돌, 뭐 이런 식으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