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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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인생 참. 여태까지 난 도롱뇽의 표준말이 “도룡뇽”인줄 알고 살았다.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을 어떻게 검색 성공했느냐 하면, 일단 알라딘에 접속해서, 로그 인 하고, ‘도룡뇽과의 전쟁’을 검색하면 아무것도 안 뜬다. 대한민국 참, 아직도 멀었어,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니, 한탄을 하다가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2년 3년. 그러다 우연히 ‘카렐 차페크’를 검색해보니까 이런 벌써, 2010년에 나와 있었던 거다. 제목 보니까 글쎄 ‘도룡뇽’이 아니라 ‘도롱뇽’. 무식하면 이런 경우도 당한다.
 근데, 체코 작가들 여간 빵빵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제일 위에 카프카를 놓겠고, 다음으로 책가게 편집부장과 영업부장들은 밀란 쿤데라를 치겠는데, 쿤데라는 (전적으로 내가 좀 무식해서 오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불어로 작품을 쓴 사람 아닌가? 그럼 체코 출신의 불어 소설가로 치는 편이 옳지 않은가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처녀작 <농담>, 그 외 내가 읽어본 <참을 수 없는....>, <불멸>, <웃음과 망각의 책>과 며칠 후에 읽을 <정체성>까지 몽땅 불문학자가 번역했다는 걸 참작해보면 그렇다는 말씀. 쿤데라를 빼더라도 올해 아주 좋게 읽은 책 가운데 두 권을 쓴 보후밀 흐라발도 체코 출신. 거기에 카렐 차페크까지 포함하면 이햐, 매력적인 소설가들이 많다. 이 책 <도롱뇽...> 읽고 곧바로 <곤충극장>을 보관함에 집어넣었다니까. 체코(또는 보헤미아)가 알고 보면 참 예술적으로 대단한 나라다. 유럽 문명을 고까운 시선으로 보는 나도 체코와 헝가리엔 한 번 가보고 싶다.(터키는 아시아라고 치자 뭐.)
 도롱뇽과의 전쟁? 인간이 도롱뇽하고 전쟁을 한다고? 도롱뇽은 양서류, 물이 없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종 아닌가? 그렇다. 근데 어떻게 전쟁을 하냐고? 아 글쎄 내가 늘 주장하고 있는 거 잊으셨나? 만일 말벌이 2미터 크기의 평균 IQ 150으로 진화했으면 인간이 여태 남아났을 거 같은가? 어떻게 하다 보니 몸뚱어리에 털 없는 원숭이가 운 좋게 두뇌를 키워 패권을 차지했을 뿐이지 말벌이라고 뇌를 키우지 말라는 법 있어? 같은 이유로 저 오스트레일리아 위 무수한 섬 중에서도 코딱지만 한 섬에서 몇 마리 모여 사는 해양 양서류 도롱뇽이 두뇌를 키워 인간만큼 사고할 수 있다는 게 뭐 이상해? 물론 작가도 처음부터 인간과 전쟁을 벌이는 도롱뇽은 전적으로 모종의, 특정 성향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고 ‘작가의 말’을 통해 이야기하고 소설을 시작한다. 그거 말고 나처럼 정말 두뇌를 진화시킨 도롱뇽의 한 종이라고 확정해서 소설을 읽어도 충분하게 재미나다. 굳이 이 이야기도 작가의 은유에서 비롯한 것일 거다, 라고 머리 굴리실 분을 굴리시고, 나처럼 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 소설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만일 모든 책을 다 은유로 여긴다면, 어느 날 대한민국 강원도 W시 500미터 상공에 나타난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은 어쩔겨? 때론 그냥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주 좋은 독법일 수 있다.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도롱뇽과의 전쟁도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한다. 아주 좁은 섬에 국한해 생존을 이어가는 1.2 미터 크기의 도롱뇽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아무리 머리가 좋다한들 제대로 된 도구를 만들 수 없다는 거. 기껏해야 죽은 조개의 껍데기나 모래 속의 돌멩이 정도. 그거 가지고는 진주조개가 있다한들 좀 커다란 건 뚜껑을 열지도 못한다. 대륙붕 아래 무제한으로 쌓여있는 철광석도 그걸 제련할 불을 피울 수 없어 무용지물. 양서류의 무지막지한 생식력에도 불구하고 이 IQ 높은 도롱뇽들은 생식에 성공한 수만큼씩 좁은 섬 주위를 여유롭게 유영하는 상어 떼에게 잡혀 먹히고 만다. 이걸 옛사람들은 어복魚腹에 장사葬事 지낸다고 했다. 문제는 조금 힌트를 준 진주조개. 네덜란드 상선의 덩치 큰 체코인 선장 반 토흐. 상선은 상선이지만 주 수입원은 진주를 사고팔아 생기는 이문을 챙기는 거였는데 실론 근처의 황금 진주어장엔 벌써 진주조개가 거덜이 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 섬 사람들이 진주조개를 채취하지 않는 곳이 있었으니 악마 비슷한 검은 물체, 바로 머리 좋은 도롱뇽이 살고 있던 작은 섬 주변이다. 그곳에 진주조개를 따기 위해 잠수를 하면 수천 마리의 도롱뇽들이 잠수부의 주위에 몰려들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 악마 같아서 감히 진주를 딸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것. 여기서 포기하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1편의 주인공 반 토흐 선장이 아니지. 그는 도롱뇽의 섬에서 며칠을 묵으며 ① 도롱뇽으로 하여금 진주조개를 가져오게 하고, ② 주머니칼로 아주 쉽게 진주조개를 벌려 진주를 꺼내 챙기는데, 암만해도 비싼 진주를 거저 가져오기가 미안해 도롱뇽에게 대가로 주머니칼을 건네줬더니, ③ 도롱뇽들이 이젠 조개는 자기들이 먹고 진주만 골라서 한 주먹 가져오는지라, 오호 이거 봐라, IQ 높은 도롱뇽들한테 칼을 잔뜩 가져다주고 진주를 가마니째 넘겨받았다. ④ 하지만 이 훌륭한 일꾼들이 아주 자주 상어에게 물려 죽어 노동력 손실도 크고 생산성도 높아지지 않아 작살을 선물했더니 섬 주변에 상어란 상어는 씨가 말라버려 자신들의 섬에서 다른 섬으로 이동이 가능해지고 개체수도 2차 함수 곡선을 그렸던 것이다.
 재미나겠지? 인간들의 탐욕은 마치 300년 전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그랬듯이 도롱뇽에게 노예 비슷하게 무상 노동, 생체실험 등 갖은 악행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생전 반항 따위는 해보지도 않고 묵묵히 개체수를 늘려간 도롱뇽들은 어느새 수백억 마리에 육박하게 되는 거다. 여기서 끝나? 이 책이 나온 시점이, 놀라지 마시라, 1936년.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을 위해 악착같이 군비를 확장하고 군대를 질적, 양적으로 키우고, 곳곳에 참호를 파고, 기지를 건설하던 시기. 인간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도롱뇽들을 군대에 편입시키기 위해 참호와 기지 건설에 투입하더니 급기야 무기까지 공급해주고 만다. 물론 생각 있는 인간들은 도롱뇽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예견하고 모든 식량과 철제품과 화약의 공급을 중단하라고 호소하지만 전쟁의 위협 앞에서는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로, 쟤네들이 먼저 하면 우리도 할게, 합창을 한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시지? 나도 더 이상 이 소설의 줄거리는 얘기하면 안 되겠다. 짧은 인간 역사로 보면 디스토피아 적 인류의 멸망 비슷한 모습을 제시하고, 지구, 즉 가이아의 입장의 역사에서 보면 어쩌면 순환하는 어떤 종의 사이클 한 바퀴를 얘기하는, 재미난 책.
 내년엔 꼭 카를 차페크의 드라마 <곤충 극장>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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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3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충극장>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열린책들이 가끔(?) 좋은 작품을 잘도 발굴(?)해서 출판하는 것 같아요. 다른 출판사에 없는 책들 가운데 이렇게 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종종 소개해주니 어느 땐 고맙기도 하달까요. ㅎㅎ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차페크의 <로봇>도 저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Falstaff 2017-10-30 10: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열린책들이 그런 일을 잘 합니다......만서도 대박도 있고, 가끔 똥 밟을 때도 있고 ^^; 그런데요, 하여간 그런 건 바람직합니다. 대박과 아닌 거 두 경우 다 포함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