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발간한 모리아크는 (친애하는 서재 동무님 잠자냥 님 말마따나)올 클리어. 모리아크, 정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내 취향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시고 싶은 분은 모리아크 한 번 읽어보시면 된다. 아, 이딴 거 좋아하는 인종이구먼! 맞습니다.
 이거 괜히 가방에 넣어 회사 통근버스에서 들춰본 것이 사달이 났던 거다. 당최 손을 뗄 수가 있어야지. 회사 가서도 저 멀리 창고 뒤편 나만 아는 비상피난처에 짱박혀 점심도 안 먹고 오후 세시까지 한 방에 다 읽고 퀭한 눈으로 매점 가서 사발면 하나 사 먹었다. (회사)식당 아줌마한테 김치 좀 달라고 하니까 들은 척도 안 한다. 염병, 평소에 잘 해준 거 다 필요 없다.
 이 책 읽고 독후감 쓰면서 지금 쓰는 것처럼 경박 또는 잘해봐야 경쾌하게 쓰면 안 되는데, 어찌하랴 천성이 그런 걸. 조금 양해하시압.
 우리한테도 그렇고 유럽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로 의사란 직업이 일반 서민한텐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귀족(양반), 천석꾼 부르주아들은 뭐 별로 눈에 차지 않았던 신분. 그리하여 돈 많은 바스크 가문의 따님 뤼시께서 지참금 넉넉하게 갖고 마지못해 의학박사 쿠레주 씨와 혼인한 건 분명히 낙혼落婚이라서 돈만 많지 교양이라곤 참 귀하디귀한 것이라 그저 할 줄 아는 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뤼시 여사한테 정나미 떨어지게 만드는 거하고 시어머니 쿠레주 부인 사이에 고부갈등 일으키는 거였다. 물론 그게 주 전공은 아니지만 어쩌랴, 워낙 어려서부터 오냐오냐 해가며 키워 도무지 혓바닥과 입술에 필터장치를 달 생각도 안 하고 여태 산 걸, 이제 와서 고쳐? 무슨, 새삼스럽게.
 동네에 남편의 환자 가운데 어여쁜 마리아 크로스라고 아주 어여쁜 과부가 있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다. 마리아가 과부가 되어 혼자 살기 힘들어 빅토르 라루셀이란 돈 많은 남자의 빈집을 얻어 월세 안 주고 살다가 점차 생활비도 받아쓰고 차도 한 대 그냥 얻어 타고(그것도 새 차!) 이러다보니 정부 비슷한 처지로 떨어졌는데, 보르도 촌구석에선 무지하게 큰 스캔들이라 뤼시 여사가 보기엔 정말 꼴불견이었다. 그래 뤼시 여사께서 뇌막염으로 어린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거야말로 하느님께서 내리신 정의의 심판이지요.”
 문제는 혼인의 순결을 지키려고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는 쿠레주 박사께서 마리아를 흠모, 아니, 아직 본격적인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지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이라 착각하고 있는 중이란 거. 쿠레주 박사는 일생일대의 첫사랑, 진정한 순결을 바쳐 마리아를 사랑하고 있는 거디었던 거디었다.
 그렇다고 쿠레주 박사를 옹호하는 건 아닌데, 왜냐하면 쿠레주 박사댁이야말로, 비록 말로 하지 않는 가족애가 각자의 마음에 충만할망정,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사소통은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거의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 저 먼 먼 사막의 모래땅처럼 삭막하기 그지없는 상황으로 만든 1차 책임은 불행하게도 하여간 가장이 지어야 마땅하니까. 다시 말하는데 쿠레주 박사는 (마치 나처럼) 깨끗한 영혼과 도덕의식, 일탈을 하고 싶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주어진 길을 꼼꼼하고도 정확하게 걸어가며 늙어가는 사람이다.
 문제가 쿠레주 박사한테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라서, 이이의 외아들 레몽 쿠레주가 19세에 이른 어느 날 전차를 타고 한 여덟아홉 살 더 많아 보이는 여자한테 필이 꽂힌 것이다. 누구냐고? 말하면 입 아프지, 바로 마리아 크로스. 나이 많은 남자의 정부로 살고 있는 과부 마리아는 날마다 죽은 아들의 묘를 찾는다는 핑계로 오후 6시 전차를 타는 걸 습관들였고 당연히 그건 묘하게 끌리는 청춘 레몽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이해 가시지?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거 말고, 그냥 안 보면 좀 허전하고, 남자를 아주 모르는 여인도 아니고, 지금 스캔들도 있는데 또 사고를 치기는 거시기하고, 얌전하게 집에만 있자니 몸에서 열불이 나 외출을 하긴 해야겠는데 아무데나 다닐 수도 없는 거. 그래 오지게 비 오는 어느 날 레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긴 했겠다! 충동이 막 뻗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좀 마음이 있어 집으로 불러들이긴 했지만 암만해도 이건 좀 과한지라 그냥 보내버리고 마는데, 이 사건이 어린 레몽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마리아로부터 받은 수치와 모멸은 그를 완전한 성인으로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어 잘생긴 레몽은 그때부터 아가씨, 유부녀, 어린 소녀 등등 모든 여성을 노리는 헌터, 돈 후안이 돼버리고 마는 거다.
 지금 글을 줄줄이 써내려가니 그냥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라고 짐작하실 수 있겠다. 천만에. 여태까지 쓴 글은 위에서 밝혔듯 천성이 고급하지 못한 잡것이 최고 수준의 심리소설이자 성장소설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막 쓴 것일 뿐이다. 진짜로 읽어보면,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좋다, 프랑스적 에스프리가 은은한 가운데 제목처럼 인간 사이의 사랑과 관계가 알고 보면 사막처럼 황량한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훤하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고 기타 참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저 옛 시절의 한 컷,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당신도 있고 나도 있고, 내 마누라한테도 분명히 있는 저 먼 먼 시절의 흑백 사진 한 장, 심장 속 깊숙이 감추어놓았던 것, 아 썅, 이런 거 슬쩍 한 번 꺼내보게 만든다.
 독후감 더 길게 쓰는 것보다 내게 맞는 책 한 권 읽은 기념으로 소주 한 병을 비우는 것이 더 진정한 감상이라고 굳게 믿어 지금부터 술 마시러, 나는 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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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2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김치 이야기에서 빵 터졌습니다. 모리악은 국내에서 그다지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은데 참 안타깝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프랑스적 에스프리가 은은한,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흑백사진 한 장‘ 같은 그 느낌이 일품인데 말입니다. ㅎㅎ 아니 그런데 이 아침부터 술을 드십니까?!

Falstaff 2017-10-25 10:53   좋아요 1 | URL
ㅎㅎㅎ
목요일 아래한글로 써놓고 저장했던 겁니다. 아직 안 올린 거 몇개 더 있고요, 차근차근, 하루에 하나씩, 토,일요일은 쉬고 뭐 그렇게 ^^;
맞아요, 모리악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단 말입죠. 내년엔 다른 출판사로 이 양반 책을 훑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