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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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아래와 같은 첫 문단으로 시작한다.


 “시체가 발견된 것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비둘깃빛 가운을 부대자루처럼 뒤집어쓴 성가대원들이 직사광선 내리쬐는 교회 뒤뜰에 줄지어 앉아 2부 예배 때 부를 찬송을 연습하는 시간, 지난 밤 처음 만난 연인들이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뜨겁고 어색한 두 번째 섹스를 나누는 시간, 조기축구회 유니폼을 입은 이기적인 가장들이 넓적다리와 정강이 근육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중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시간이었다.”


 <오늘의 거짓말>, <달콤한 나의 도시>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정이현. 앞의 두 권을 읽으면 소설이 시체를 발견한 장면만 빼면, 위와 같이 시작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2부 예배를 앞둔 교회 성가대가 찬송가 연습을 하는 것이 일요일 몇 시나 되나? 아, 나의 이 지겨운 버릇. 이거 검색해봤더니 교회마다 다르다. 하느님 말씀이 사업 번창하는 교회의 주일 2부 예배는 대강 9시나 9시 30분이고, 상가 2층 빌려 개업한 개척교회 같은 데선 11시. 지난 밤 처음 만난 연인, 어제 밤에 처음 만났는데 벌써 연인? 아니겠지, 원 나잇 스탠딩 파트너라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다. 어찌됐던 숙취에 시달리는 심신을 한 번 더 불사르기로 작정하는 시간이라니 9시 정도도 좀 늦겠는데 늦봄 5월의 햇살이 아침 아홉시에 벌써 직사광선으로 내리쬘까? 직사광선이라 할 정도로 내리쬐려면 11시는 돼야하는 거 아냐? 조기축구회 유니폼을 입은 “이기적인 가장(새끼)들”이 운동장 둘러서서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이면, 9시도 늦을 거 같고. 도대체 몇 시야, 그놈의 2부 예배 시간이. 외할머니 손잡고 마지막으로 감리교 교회 가본 것이 벌써 반세기가 넘어 도무지 모르겠다.
 독후감 초장부터 왜 이리 초를 치냐 하면, 첫 문장으로 보시라. “시체가 발견된 것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은 서초동 서래마을 쯤으로 보이는 동네의 70평이 넘는 비까번쩍한 복층 빌라에서 바이올린 국가대표를 꿈꾸는 꿈나무의 실종사건을 다루고 있어, 내용과 관계없이 일단 추리소설의 외형을 쓰기로 작정을 한 작가는, 나처럼 발랑 까진 독자는 애초부터 사건을 추리할 수도 있는 상황이 나오면 전심을 다해 다음 사건과의 연계성을 궁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특히 추리소설의 경우 주요 사항에 관해서는 안 썼으면 모를까 일단 말을 했으면, 적어도 시간 단위까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독자와 대결duel해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힌트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끝난 다음에 독자가 아하, 그렇구나, 그랬구나, 몰랐네! 무릎을 탁, 치면 훌륭한 추리소설의 관을 쓰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소설 안에선 추리소설의 단골 등장인물인 사설탐정 문영광 또는 제임스 문까지 등장시킴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의 소외와 고독을 다룬 심리소설이 분명하지만 이왕 추리소설의 외피를 입히려고 했으면 마땅하게 그랬어야지, 하는 것이 첫 번째 불만.
 두 번째 불만은 작가의 전작 <나의 아름다운 도시>에서도 말했다시피, 기성세대의 남성에 대한 깊고 깊은 미움이 이 책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것이 싫었다. 일요일 새벽같이 나가, 비둘깃빛의 부대자루를 입고 1차 예배에 이어 2차 예배의 찬송도 부르고, (요즘은 교회에서 밥도 준다며?) 하루 종일 하느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건 괜찮고, 일주일 내내 늦은 퇴근, 아니면 자영업 사장질 등 고단한 경제활동을 하다가 건강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이 됐건, 영원무궁토록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한 건강 유지의 방법이 됐건) 조기 축구회 나가 허벅지 근육 운동하는 것들은 졸지에 “이기적인 가장”으로 만드는 거다. 생각 좀 해보시라. 다 늙어 짜글짜글한 주름이 좍 깔리고 정수리 머리숱이 다 빠진 중늙은이들이 진짜 기쁨에 벅차, 아이 좋아, 아이 좋아 하면서 땀 뻘뻘 흐르는 대머리로 헤딩해가며 일요일마다 중학교 운동장을 기어 다니겠는지(다 늙어 이젠 젊은 시절에 비하면 뛰는 게 아니라 기어 다니는 수준). 정이현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는지는 모르지만 진심으로 바라노니 스스로 소설에서 묘사하는 가정 비슷한 경험은 해본 적이 없기를 바란다. 물론 악역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누구에게 역할을 시켜야 할까를 떠올리면 가족 구성원에서 돈 벌어오고, 나이도 제일 많아 일단 서열 상 제일 꼭대기에 있으며, 그만큼 (똥 같은) 권위도 있는 줄 착각하는 아버지가 제일 만만하겠지. 근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러니까 꼭 아버지한테 큰 원한 있는 여자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씀. 그리고 좀 더 성장한 소설가가 되려면 어렵더라도 생각을 좀 바꿔야지 이게 뭡니까, 만날 똑같은 사람한테 똑같은 배역을 주고 말이야. 이 소설에서도 아버지 김상호는 성질 더럽고, 성격 급하고, 돈만 많이 벌어올 뿐 가족 성원에 관한 조금의 관심도 없고, 돈도 분명히 범죄 비슷한 부정한 방법으로 만들어 오는 것으로 상정해 놨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애초에 이 작품이 추리소설의 외형을 띨 수 없었을 것.
 첫 문단을 읽고 나도 당연히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솔직히 말해선 추리소설을 가장한 작가 특유의 발칙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녀의 전작을 미리 읽어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 내가 잘났단 얘기 절대 아님. 그래서 촉각을 바짝 세우고 (추리소설일 수도 있으니)처음부터 2부 예배시간, 술 취한 연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냥 헤픈 남녀)이 아침에 잠에서 깨 모텔비 아까워 한 번 더 하는 시간, 조기축구회원들이 스트레칭 할 시간 등을 유심히 계산했던 터. (이렇게 소설책 읽는 내가 나도 싫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에서 얘기했듯이 분명히 심리소설이다. 아버지 김상호, 큰딸 김은성, 아들 김혜성. 소설에 출현하지는 않지만 큰딸과 아들의 친엄마 강미숙, 새엄마 진옥영. 이복동생 김유지. 감잡히시지? 강미숙이 딸 김은성을 임신한 상태에서 애 아빠 김상호와 결혼한 다음 은성을 낳고 은성이 혼자 적적할까봐, 라는 유일한 이유로 아들 혜성을 또 낳은 후에 이혼했다. 아이들 대가리 다 큰 다음 아버지는 다시 이복누이동생 김유지를 임신한 진옥영과 재혼했다. 친엄마는 이혼 후 곧바로 재혼해버리는 바람에 애들은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 아래서 크다가, (엄마는 또다시 이혼하고) 외할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은성은 친엄마하고 살고 혜성은 아버지와 새엄마하고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다 친엄마가 다시 삼혼을 해 이제 은성은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 혼자 산다. 결혼 후 곧바로 새엄마가 낳은 유지가, 열 살이란 최연소로 바이올린 영재 프로그램에 합격한 상태에서 책은 시작한다.
 악역을 맡은 김상호는 당연히 가정 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하지만 다행스럽게 폭력을 행사하는 우악스런 악당은 아니다. 대한민국 부촌 가운데 한 곳인 서래마을에 살면서 딸아이에게 대학교수, 대학원생으로부터 두 종류의 바이올린 레슨을 시키면서도 아내의 충동적인 구매욕까지 충족시키며 동시에 큰딸의 난데없는 액수의 용돈요구까지 몽땅 들어줄 수 있는 수입을 올리는 자랑스런 아버지. 그러나 거기서 끝. 넘쳐나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가족 구성원 가운데 아는 사람은 없다. 독자는? 당연히 알게 된다.
 진옥영은 차분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으로 화교출신 한국인. 김상호와 결혼을 통해 한국인이 됐다. 가끔 친정이 있는 대전에 다녀온다면서 엉뚱하게 타이베이로 날아가 대만국립대학에 다닐 때 사귄 첫사랑 왕밍과의 밀회를 하는 비밀을 품고 산다.
 큰딸 김은성. 대책 없는 여자. 술과 남자 없으면 세상사는 재미를 알지 못하는 족속. 술김에 친구들에게 돈 많은 집 막내딸, 자기 이복누이를 납치해 몸값으로 3억쯤 뜯어내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는 철딱서니 실종된 헤픈 아가씨.
 아들 김혜성. 유명대학의 의과대학에 합격하고 1학년 1학기 다니다가 학기말 시험 시작할 때부터 학교만 끊어버린 채(현대과학이 준 선물 포토샵으로 등록금 액수는 팍 부풀려 아버지한테 청구하는 건 잊지 않고) 만 스무 살에 이른 청춘. 의예과에서 미등록으로 제적당했을지도 모른다는 거, 거의 중독 수준으로 차량 연쇄방화를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건 가족들은 물론 애인 다희도 모른다.
 막내딸 김유지. 열 살 먹은 꼬맹이가 바이올린도 기막히게 연주하고, 학교에서 비록 따를 당하지만 소위 왕따가 아니라 스스로 따를 자처하는 독립군. 비록 대단히 작은 울타리지만 자기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며 그들과 공통의 즐거움을 나눌 줄 안다는 거, 하다못해 엄마도 모른다.
 이렇게 가족 구성원은 아무도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각자의 네모난 방, 주먹처럼 생긴 심장 속에서 살고, 생각하고, 확장하고, 비비적거린다. 깊고 깊은 속엔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애정이 충만하지만 그딴 걸 내놓는 방법도 모르고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 마주하기만 하면 서걱거리는 모래알 상태. 난데없이 어느 날 발생한 비극적 사건을 통해 가족들은 비로소 봇물처럼 터진 가족애와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는 비극.
 에이, 뭘 이리 길게 말하나. 가족 간의 소외와 고독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근데 이런 얘기면 정이현이 즐겨 사용하는 전래의 방법을 썼어야지. 추리소설의 형식을 새로이 시도한 것은 좋았는데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진심을 다해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라고 했다. 이거 역시 당연한 얘기. 진심을 다해 쓰지 않는 작가가 있어? 세 명만 꼽아보시라. 누가 있나. 다 진심을 다해 쓰는 거다. 그게 소설가의 숙명이니까. 문제는 쥐뿔도 모르는 독자가, 아 이 저자는 진심을 다해 글을 썼구나, 하고 알아줄지 아닐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전적으로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 책 뒤표지에, 누군지 짐작하시지? 한심한 표절녀의 추천사 비슷한 게 씌어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방식, 정이현이 즐겨 사용하는 도시적 감상으로 작품을 썼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이젠 됐다. 정이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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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0-1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언급하신 첫 문장 지금 이 포스팅을 통해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침 예배 시간이랑... 모텔에서 연인(?은 개뿔.무슨 연인이러면서 생각)들이 두 번째 응응 할 때랑. 조기 축구 시간이랑 이상하다 안 맞는데??? ㅋㅋㅋ 일단 섹스는 아무때나 할 수 있다 칩시다. 그런데 성가대 노래 부를 때 시간이랑 조기 축구(진짜 아침 일찍 하던데요??) 시간은 영 안 맞아요. 안 맞아. 암튼 그렇고- 한심한 표절녀 ㅋㅋㅋㅋㅋ 문학동네에서 나온 책인가 하고 찾아보니 역시 그렇군요. ㅋㅋㅋㅋ

Falstaff 2017-10-17 10: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무래도 이상하죠?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정이현은 이 책을 ˝진심을 다 해˝서 썼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