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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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소설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 스웨덴 말 “Flickan som lekte med elden”을 구글 번역기에 돌려봤더니 “화재로 놀고 있던 소녀”란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스웨덴어→영어로 해보니까 “The girl who was playing with the fire". 뭐 하여간 그렇다는 말이다.
 라르손 본인이 기자 출신의 작가라, 이 책, 밀레니엄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밀레니엄’이란 월간지의 선하고 독한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겪는 스릴러 범죄에 대한 소설인데, 재미난 것이, 이 작자가 세계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야하는 스웨덴에서 열라 기자생활을 해도 별 볼일이 없을 거 같으니, 나중에 늙어서 좀 여유롭게 살아볼까 싶어 40대 후반 들어 이 범죄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어디 한 가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 있나? 모두 열편의 시리즈를 구상하고 열라 써나가고 있던 도중, 나이 50에 이르러, 세 편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채, 정작 책이 나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자신의 통장에 숨 막힐 듯한 현금이 쌓이는 건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 하직하고 만다. 노후 대비하려다 아주 일찍 세상 떴다. 그게 인생이다.
 하여간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읽어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잘 쓴 대중소설’이라 시리즈를 몽땅 독파하리라 마음먹어 읽어보게 됐다.
 전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고생을 죽도록 했던 150센티미터, 가냘픈 체격의 아가씨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고생 끝에 잭팟 또는 로또가 터져 죽어 호적이 없어진 악인의 돈 30억 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4,200 억 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삥칠(삥치다: 은어, 속어. 나쁜 꾀로 금품을 얻거나 만만한 인간을 협박해 금품을 빼앗다) 수 있어서 졸지에 백만장자로 등극한 다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돈 많으니 행복하겠다, 싶지? 천만의 말씀. 여태까지 내내 거렁뱅이로 살아와 정작 돈이 넘치게 많아도 폼 나게 쓸 줄을 모른다. 부유하고 가방끈 긴 인간들과 어울리는 대화도 할 줄 모르고, 마음에 드는 펜타하우스 한 채 사려고 해도 복덕방 늙은이는 쳐다보지도 않아 결국 해외 대리인을 통할 수밖에 없는걸. 근데 이런 거 가지고는 소설을 쓸 수 없다. 더구나 완벽한 대중소설임에야. 그리하여 작가 라르손이 머리를 짜내 이 가냘픈 아가씨를 둘러싼 범국가적 범죄행위를 하나 장만하니, 살란데르 아가씨의 지문이 묻은 권총으로 세 명의 대갈통이 박살나버리고 만다. 어릴 적부터 문제아의 최상급으로 등록되어 있던 아가씨의 지문은 당연히 정부당국에 의해 보관되어 있었고, 화려한 전력이 뒷받침되어 살란데르는 단박에 제 1의 용의자로 등극하고 만다. 그.러.나. 살란데르 아가씨는 엄마하고 살던 자신의 아파트는 친구한테 줘버리고 가명으로 위에서 말한 200평짜리 펜타하우스에 입주해 살고 있으니 그걸 어떻게 찾아.
 여기까지 스토리는 책 소개에 다 나온다.
 이런 소개는 정말 밉상. 특히 범죄소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용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는 건 진짜 바람직하지 않다.
 전작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자주 보였던 엽기 변태와 학대 및 고문 같은 씬은 이 책에선 나오지 않고, 조금 순화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매그넘 총을 인간의 대가리를 향해 쏘고, 총알을 맞은 인간 대가리의 모습을 묘사가 등장하는 정도. 전기톱을 이용해 사체를 분리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 같은 것이 제일 지독한 묘사인데, 전작하고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이 시리즈의 책을 읽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바르가스 요사는 “난 일말의 부끄럼 없이 말한다.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되게 웃기다. 부끄럼 없이 말하다니. 그냥 환상적이라고 하면 어디 덧나? 이게 뭔 말씀이냐 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대중 소설을 읽고 환상적이란 소감을 달면 그게, 기본적으로는, 부끄러운 행위라는 거다. 대중 소설을 읽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는데, 제발 하나만 부탁하자. 웃긴 얘기는 가려서 하라고.
 백문이 불여일견. 무척 재밌는 책. 시간 죽이기 위한 최고, 최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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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사서 읽으셨군요.
이 시리즈 2쇄부터는 반양장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때를 노려보는 중입니다.
인테넷으로 사도 만 7천원이라 좀 비싸더군요.
하긴 반양장이라고 해도 가격 차이 별로 안 나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중고샵 판매 때까지 기다려 보든가.ㅋ

Falstaff 2017-09-12 14:57   좋아요 0 | URL
반양장이라도 얘기하신대로 그리 차이나지 않을 겁니다. 한 만5천원 하겠군요.
하여간 그노무 우라질 도서정가제 때문에 여러가지로 코피나는 21세깁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