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모던 클래식 52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 작품. 바르베리가 우리 나이로 서른둘일 때 이 책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서른두 살의 청년이 겪으면 얼마나 겪었고, 음식을 먹어봤으면 얼마나 먹어봤으며, 맛의 종류를 안다해도 과연 얼마나 알겠는가. 근데, 억!
 한때 잠깐 몰두했던 음식관련 방송을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림은 봐야 멋이고, 음식은 먹어야 맛인데 TV에 나오는 음식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에게 별 오두방정을 떠는 표정에다가 하나같이 하는 말이, 식감이 죽여줘요. 운운. 식감? 그게 무슨 감각이야? 씹는 맛? 그따위로 얘기할 거면 내가 나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맛 프로그램 패널들이 도무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얘기. 그이들이 얘기하는 식감이란 음식을 입에 넣고 식도를 통과해 위장에 닿을 때까지의 모든 감각을 일컬어야 한다. 이와 잇몸, 그리고 구강엔 인체 내 어느 부위보다 촘촘하게 신경세포가 깔려있어 ‘식감’이란 씹는 맛을 포함하여 혀와 구강, 그리고 해당 부위를 적시고 있는 침의 기능이 더해져 음식물에 대한 촉감과 맛의 결정에 대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후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서로 충돌, 보완해 독특한 감각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식감’이 아니라 식감을 포함한 ‘맛’이다. 내말 틀려? 근데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서 음식물이 입안에 들어갔을 때의 촉감만 예로 들더라도 그게 혀와 구강, 침을 포함한 점막 특유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촉감이라 액체일 수도 있고, 고체일 수도 있고, 고체와 액체 사이의 아름답게 애매모호한 감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고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닐 수 있는 것에다가, 고체라도 딱딱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데 딱딱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아 말랑말랑하다 할 수 있지만 또 말랑말랑하다고 표현하기엔 정확하지 않는 저작詛嚼 감각을 띠었을 경우, 하여간 무지하게 많은 맛의 세계. 그런 것들을 서른두 살의 여인네 뮈리엘 바르베리가 절묘한 문장으로 써 놨다. 일단 TV에 나와서 만날 “맛이 상당하죠.” “전 이런 맛이 더 좋아하는데요.” “입 안에서 톡 터지는 식감이란” “구수하게 입 안 가득 향이 퍼지면서” “어, 이거봐라, 재밌네.” 이런 얘기만 끊임없이 늘어놓는 황X익, 홍X애, 백X원 같은 이들은 스스로의 함양 발전을 위하여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이고(요새 사이버 모독죄로 고소한다고 항의를 받아 간이 콩알만 해졌다. 실명 올릴 배짱이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어떤 이들을 얘기하는지 다 아시지?),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에 입각한 맛을 향한 미학이 궁금하신 분도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명작이나 걸작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도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 그게 나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고, 오늘 출근길에 내 옆에 앉았던 참 못난 사람일 수도 있는 그 개인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급한 쾌락으로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아름다운 문장의 극점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꼭 이 책을 읽어봐야 안다.
 다만 하나. 작가가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며 불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이이의 책 속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일본의 생선회와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맛, 둘 말고는 힘들었다. 좀 길더라도 인용을 해보자.


 “현기증 나는 경탄이었다. 내 치아의 방벽을 넘어 들어온 것은 고체도 아니고 물도 아닌, 단지 그 둘 사이의 매개적인 물질로서 고체의 편에서는 무(無)에 저항하는 견고성을 간직하고 물의 편에서는 기적 같은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빌려 온 물질이었다. 진짜 회는 씹히지 않지만 혀 위에서 녹지도 않는다. 진짜 회는 느리고 유연히 씹어야만 한다. 음식의 성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공기처럼 가벼운 말랑함을 맛보기 위해. 그렇다. 폭신함도 물컹함도 아닌 말랑함. 회, 마치 비단 같은 우단 먼지. 회는 두 가지를 조금씩 가지고 있으며 수증기로 된 본성의 희한한 연금술 속에서 구름이 갖지 못한 우유의 밀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흥분을 내 안에 불러일으킨 첫 분홍색 한 입은 연어였다. 그러나 나는 또한 광어, 대합 관자, 문어와 만나야 했다. 연어는 본성적으로 담백하지만 기름지고 달았고 문어는 엄하고 혹독했으며 이에 오래 저항한 끝에야 찢어지는 비밀스러운 조직이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나는 분홍과 엷은 보라로 무늬지고 돌출물 끄트머리가 톱니 모양으로 거무스름한 그 이상하고 깔쭉깔쭉한 조각을 와락 입에 넣기에 앞서 관찰했고 겨우 익숙해진 젓가락으로 서투르게 집어서 엄청난 밀도에 사로잡힌 혀로 그것을 맞아들였고 쾌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 둘 사이, 연어와 문어 사이에는 언제나 그 밀도 높은 유동성과 함께 입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색조의 감각이 있었다. (중략) 대합 관자는 그것대로 너무나 가볍고 덧없어서 입에 넣자마자 사라져 버렸지만 그 후에도 오랫동안 볼은 그 깊이 있는 스침을 기억했다. 마지막으로 실제와 다르게 가장 투박해보이는 광어에는 섬세한 레몬 맛이 돌았고 그 특별한 살은 이 아래에서 놀라운 풍만함으로 도드라졌다.”  (60~61쪽)


 “미지의 냄새가 벌써 모든 가능한 것들의 너머에서 나를 동요시켰다. 이 얼마나 멋진 습격인가. 이 얼마나 정력적이고 거칠고 건조하면서도 향긋한 폭발인가. 마치 평소에 만족스럽게 머물렀던 세포 조직을 떠나 감각의 절벽에서 기체로 응축되어 코의 표면에까지 증발하는 아드레날린의 배출처럼……. 깜짝 놀라며 나는 이 신랄한 발효의 악취가 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았다.
 공기 같은, 거드름 떠는 부인. 나는 조심스레 이 이탄질의 용암에 입술을 담갔다. 아, 그 폭력적인 효과! 그것은 불시에 입속에서 터지는, 고추와 다른 사나운 재료들로 만든 발화물이다. 기관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입천장도 양 볼도 점막도 없다. 대지적인 전투가 우리 속에서 진행되는 듯한 파괴적인 감각뿐. 나는 황홀해져서 첫 한 모금을 혀 위에 한순간 지체하게 놓아두었고 동심원을 그리는 파동은 오랫동안 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것이 위스키를 마시는 첫 번째 방식이다. 떫고 결정적인 맛을 만끽할 수 있도록 가혹하게 마시는 방식. 반대로 두 번째 한 모금은 서두름 속에서 왔다. 즉시 삼켜진 다음 그것은 한참 뒤에야 내 태양신경총을 데웠다. 하지만 그 뜨거움이란! 강한 화주를 마시는, 판에 박힌 동작, 즉 갈망의 대상을 단숨에 마시고 잠시 기다린 다음 타격으로 눈을 감고 편안함과 충격이 혼합된 숨을 내쉬는 것. 이것이 위스키를 마시는 두 번째 방식이다. 알코올이 목구멍을 면세 통과함으로써 미각 유두는 거의 마비되고 신경총은 완전히 민감해져서 에틸기의 프리스마 폭탄이 침입한 듯 갑자기 열기에 휩쓸린다. 그것은 데우고 다시 데우고 풀어 주고 깨우고 기분 좋게 한다. 그것은 지극히 행복한 열을 복사함으로써 육체로 하여금 자신의 빛나는 존재를 믿게 하는 태양이다.“  (114~115쪽)


 위의 인용이 책에서 가장 감각적인 장면이 아니라 내가 맛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연어, 문어, 대합 관자, 광어회를 차례로 맛을 보며 입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이렇게 표현한 여자가 서른두 살이라니 참. (대합 관자는 사실 대합이 아니라 키조개 관자를 이야기하는 거 같다.) 두 번째 인용은 스카치위스키를 처음 마셔보는 광경인데 이때 위스키를 시음하는 인물은 아직 소년기의 아동이다.
 이 책이 소설의 외피를 차용하는 건, 세계 최고의 요리 평론가인 화자 ‘나’가 이제 죽음을 이틀 앞두고 인생의 진짜 막바지에 자신이 생애 맛보았던 가장 훌륭한 요리를 회상하면서 당시 인물과 기르던 개와 고양이, 가족과 친지를 돌아보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진미를 먹어봤던 내가 인생에서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게 만든 것은, 수수한 야채에 발라먹는 마요네즈. 오랜 친구이자 요리사가 전래 방식으로 달걀 하나, 기름, 소금, 후추로만 만든 전통 마요네즈도 물론 좋지만 땅거미가 진 죽음의 병상에서 끝내 잊지 못하는 마요네즈는 슈퍼마켓 식료품 코너에서 파는 서민용 공산품이라는 놀라운 이야기.
 그러나 화자 ‘나’가 진짜 마지막 숨을 쉬며 조카를 불러 급히 나가서 사오라고 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으니,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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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9-0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회에 소주.......도 아니고 위스키 먹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_-;;;;

Falstaff 2017-09-05 12:43   좋아요 0 | URL
낮술 한 잔 푸고 팍 자버리고 싶은 날씹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