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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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적인 폭염, 기상관측 이래 네번째로 끔찍했던 열대야의 밤, 2017년 8월 5일, 겁없이 이 책을 읽으려고 덤볐다가 난데없이 남성의 해방에 관하여 깊이 숙고했다. 남성은 성적 속박, '남자새끼'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하는 거. 해부학적 요인으로 인해 남성에게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는 명백하게 바지가 아니라 치마다. 특히 여름에는. 아니 그런가? 세상의 남자들이여, 말해보시라. 좋다. 그래도 치마 입는 것이 시기상조라면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밖에. 내 고향, 지구 분류번호 BTL1789 행성의 우리 베데스타 종족이 그러하듯이 조금이라도 쾌적한, 아니 쾌적이라니, 다시 말하자, 덜 거추장스런 여름을 지내기 위해 최고 기온이 섭씨 29도가 넘어가면 왼나사를 풀듯 오른쪽으로 돌돌 돌려 불알을 떼내 냉장고에 보관하는 방법을 하루속히 개발하라. 세상의 숱한 의학자, 과학자 연놈들은 밥먹고 도대체 뭐 하는 줄 모르겠다. 떼낸 불알은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서늘한 가을이 오면 꺼내서 떼낼 때와 반대로 왼쪽으로 돌돌 돌려 다시 달던지 말던지 그건 쥔장이 알아서 하는 거고. 저 수만 광년 떨어진 외계행성에서도 배울 게 있으면 당장 배워야지 도대체 아이디어도 없고 하다못해 카피의 기술도 없이, 그러고도 의학자, 과학자라니 말야.

 주인공 빌리 필그림. 순례자 빌리? 하여간 빌리 필그림은 미국에서 징집당한 징집병인데, 아주 특이한 성격, 아니, 능력을 보유한 인간이다. 신체 허약한 약골, 그래 봬도 일찌기 1944년 말 유럽 전선에 배속되어 벌지 전투의 막바지에, 전투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전입 온 신병한테 신경쓸 여력이 없어, 군복도 안 줘, 소총도 안 줘, 군화도 안 줘, 무쇠로 만든 철모도 안 줘, 더벅머리 그대로 그냥 내버려 뒀다가, 에그머니, 동료 세 명과 함께 고립되어 붙잡히지 않기 위해 자꾸 독일군 지역 깊숙하게 들어가게 된다. 원래 그런거다. 살려면 적의 후방으로 도망가는 거. 그러다가 드디어 독일의 향토예비군, 민방위대, 학도호국단으로 추정되는 일단의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혀 어딜가나 필드 매뉴얼, 즉 FM대로 행동하는 영국군 포로들이 만들어놓은 쾌적한 포로수용소를 거쳐 드레스덴으로 격리, 후송되었는 바, 아 인생의 허무함이여, 딱 그때 드레스덴 대 공습, 드레스덴, 이름만 가지고도 나그네 마음 설레게 하는 엘베강의 피렌체라는 별호를 자랑하는 도시를 90%가 넘게 아작을 냈으며, 나치에 의하여 사망자가 20만명에서 50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게 만들어 핵폭탄 빅보이로 20만명의 사망자를 낸 히로시마 폭격보다 더 많은 희생을 당한 것처럼 이 책에서도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최대 5만, 최소 2만 명의, 그래도 사실 무척 많은 사망자를 낸 대폭격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인간이다. 아군이 떨어뜨린 폭탄을 도살장 지하실에서 경험한 빌리 필그림. 그는 일찌기 트랄팔마도어 행성에서 지구로 날아온 외계인간에게 납치당해 트랄팔마도어 동물원에서 다른 지구인, 풍성한 육체를 자랑하던 영화배우와 함께 알몸으로 2년 동안 전시되다가 다시 지구로 귀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마치 화장실 막혔을 때 펌프질하는 고무 쑤시개, 거 있잖아, 가운데 둥근 검정색 고무 진공기가 달리고 과도한 휴지나 머리카락, 아니면 잘못 먹은 개뼈다구 등등을 구토하면 막히기 마련인 화장실의 배수구에 대고 똥물 튀기는 걸 무릅쓰고 신나게 펌프질 몇 번 하면 푸르르, 둥둥 떠다니던 똥덩어리가 내려가는 희열을 선사하는 바로 그 수동 펌프, 그것하고 비슷하게 생긴 외계인들을 접촉한 다음에 놀라운 능력을 지니게 됐으니 바로 시간여행.

 빌리는 시간여행 능력으로 시도 때도 없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왔다갔다 한다. 심지어 트랄팔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에서 한 겨울의 벌지 전장과 거기서부터 열차를 타고 4박 5일간 달려 도착했던 포로 수용소, 이어서 드레스덴의 Schlachthof Funf(funf의 'u'는 위에 우무라이트 있음), 제5 도살장, 한땐 돼지, 염소, 양, 닭들의 시체가 거꾸로 매달렸던 지하 창고까지, 안경 제작하는 검안사檢眼士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부자 장인을 포함해 몽땅 죽고(다 그런 거지!) 부기장과 더불어 유이하게 살아남은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부터, 너무 못생겨서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결혼할 확률이 전혀 없던 아내와의 신혼 첫날밤까지 그는 수시로 시간여행을 즐긴다. 부럽지? 부러워하실 거 없다.

 책의 진짜 주제는 드레스덴 공습의 정당성에 관한 따따부따. 그러나 직설적인 어법으로 공습이 합당했느냐 아니냐를 말하지는 않으며 심지어 전투장면도 하나 나오지 않고, 더 놀라운 건 공습 장면, 아름다운 드레스덴 시내의 90% 이상이 박살나는 생생한 광경도 전혀 구경할 수 없으면서도 독자를 환상과 외계인과 따라서 엽기와, 페니스가 남들과 비교해 어마어마하게 큰 거 말고는 도무지 세상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찌질이 빌리 필그림(그는 자신의 페니스가 왜 그렇게 큰 이유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고 당연히 책임도 없다. 뭐라? 그거 하나면 충분히 만족한다고? 부탁하노니, 정신차리시라.)의 부유한 말년과 더불어 비행기 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대면하게 되는 퇴역 장군과의 드레스덴 공습에 관한 이야기까지, 은근히 그러나 끈기있게 이 문제에 천착한다.

 근데 뭐,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꼭 드레스덴 폭격에만 촛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물론 폭격은 연합군에 의하여 저질러진 야만스런 행위였지만, 그거 말고도 커트 보니것, 음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틀림없이 쿠르트 보네구트라고 발음할 이 작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무지막지하면서도 음미할 만한 담론이, 솔직히 더 마음에 들었던 건, 나만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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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이었군요. 전 이 작품을 예전에 다른 출판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그때는 좋은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가는 거지‘만 기억에 남는;;;; ㅋㅋㅋ 언젠가 다시 읽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Falstaff 2017-08-09 10:18   좋아요 0 | URL
ㅎㅎ 근데요, 이 책은 개인에 따라 극과 극의 호 불호일 거 같은 대표적인 책, 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읽으셔도 과연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까는 제가 보장하지 못하겠는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