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1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9
막스 프리쉬 지음, 이문기 옮김 / 책세상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내 이럴줄 알았다. 날은 오지게 더워, 딸 없는 게 여름엔 다행이라 트렁크 빤쓰 한 장만 걸치고(딸은 딸 이전에 여자라는 거는 알고 산다. 물론 마누라는 여자이기 전에 마누라니까 이런 차림으로 어슬렁거려도 괜찮다) 책 읽는 거 하나만 해도 스트레슨데, 다들 아시다시피 작가 막스 프리쉬의 애인이 누구냐하면 아, 이름만 들어도 골이 저려오기 시작하는 47그룹의 기수 잉에보르크 바흐만, 이 여자와 사상적으로 육체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인간답게 이이가 쓴 소설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원어로 하면 Mein Name sei Gantenbein, 즉 <내 이름은 간텐바인>을 읽는 거, 하이고, 만만하지 않았다. 정말로 말씀드리는데, 여름엔 되도록 피하는 게 좋은 듯. 깊은 겨울밤, 이 책을 읽으며 '나' 즉 '간텐바인'이 저지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중하게 따라가보는 게, 적어도 여름날의 아침보다는 훨씬 낫겠다. 게다가 이 책, 두 권에 500쪽이 넘는다. 물론 책세상의 판형이 그리 크지 않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얇은(비싼) 종이를 사용해서 암만 읽어도 그냥 그자리에 있는 듯한 감각, 이거 사람 미치게 한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는 거 같지 않아서. 내 서재 글을 계속 읽어오신 몇 되지 않는 분들(다 안다. 내 서재의 고정 독자는 열 분 가량, 정확하게 말해 '미만'이다)은 아시듯이, 이이가 쓴 <몬타우크>를 읽고나서 프리쉬는 한 번 천착해볼 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몬타우크>가 그리 감명깊었다는 얘긴 아니고, 이이가 쓰는 스타일이 잘 하면 나하고 맞을 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들어 두번 생각하지 않고 작가의 다른 책을, 보관함을 거치지도 않고 그냥 즉시구매한 책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간텐바인....>을 다 읽은 후 독후감을 쓰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대단히 골치아픈 작가라는 거. 가히 47그룹의 기수를 애인으로 둘 만한 지적 과시, 나같은 일반 독자는 감을 잡지 못할 정도의 혼란과 미궁에 빠뜨릴 만한 환상, 이건 올바른 단어가 아니고, 상상 또는 상황의 변이, 어떤 땐 카프카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벨르이 같기도 하고, 심지어 고골같기도 해서 독자(물론 내 수준의 일반독자)를 사고(thinking)의 오리무중으로 초대한다.

 그러면 다음에 생각할 것이 "사고의 오리무중"이 나쁜 것이냐, 아니면 적어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냐 하는 점. 그게 왜 나빠.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다. 프리쉬의 소설은 기존 소설문법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다른 것이지 나쁜 건 아니잖아?  책에는 몇 명의 다중인간이 등장한다. '나'는 화자이고 간텐바인이었다가 엔데를린이기도 하고 어떤 땐 스보보다라는 이름의 동유럽 사람이기도 하다. 이 네명의 남자는 우리의 여주인공 릴라를 둘러싸고 별 짓을 다 하는데, 여기서 '별짓'이란 것이 참 재미나다. 간텐바인은 자신이 앞을 못보는 장님인 척하는 인간. 정식으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비슷한 관청에 가서 장님인 것을 확증하는 문서도 발급받았으며, 스위스에선 사람들로부터 배려를 받게 하는 취지에서 장님들에게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완장을 달게한 모양인데 그 노란 완장도 정식으로 받은 인간이다. 이런 종자를 일컬어 우리는 사기꾼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지?

 첨부터 장님으로 사기치고 다니는 간텐바인이 책의 제일 앞부분에 당하는 일은, 무작정 차도로 검은 지팡이를 토닥거리면서 진입해 스포츠카를 끌고 나온 아가씨를 기겁하게 만드는 거다. 참 그자식. 눈은 훤하게 보고 있으면서 완전하게 검은 안경을 쓰고 차도에 발을 딛다니. 근데 하마터면 간텐바인을 치어 죽일 뻔했던 아가씨 역시 이후 신분을 마구 바꿔 심지어 릴라가 되는 거 아냐? 의심도 하게 만든다. 그건 주인공 릴라라는 여자가 책의 많은 부분에선 연극/영화배우인 것으로 되어 있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백작부인으로 휘까닥 변신을 한다. 계속 이어지는 궁금증. 릴라의 꼬리뼈 부근을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이 풍풍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다. 혹시 거기에 아홉개의 꼬랑지가 달린 거 아냐? 백작부인이었다가 갑자기 그냥 보통의 여편네로 변하기도 하고, 나는 또 간텐바인이었는데 그와 상극인 엔데를린 또는 스보보다로 성동격서, 혼란의 극치를 이룬다. 무려 500 페이지 내내 이런 식.

 프리쉬가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그를 인터뷰한 부록을 보면 간텐바인이란 사람은 자기 동네 한 아파트에 세들어 살았던 남자로 자기하고 한 번도 얘기해보지도 않은 그냥 보통사람이었고 그냥 그이의 이름만 따서 책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으로 썼다는 거다. 그럼 나머지 인간, 엔데를린과 스보보다도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고 멋있을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하여간 장삼이사 이런 인간들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릴라 역시 그냥 당신 사무실에 있는 한 아가씨와 비슷한 외모와 학력, 재산 등등의 속세적 가치를 보유한 여성이었으리라. 백퍼 내 생각을 말하라면, 당연히 이건 내가 내 서재에 쓰는 내 독후감이니 내 생각만 말하는 바, 세상에 확정적인 건 없다, 이걸 특별한 인간들, 남자와 여자를 등장시켜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당신은 절대 어디가서 이 얘기 하시면 안 된다. 무식하다고 타박받을 확률이 너무 높아서. 소설가들, 참 말 많다. 내 감상이 올바르다면(절대 올바르지 않다. 이이의 작품을 읽고 얘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감상은 다 옳지만 내것은 아닌 거 같다) 한 문장만 쓰면 될 것을 무려 500 페이지에 걸쳐 설레발을 쳐대다니, 으아.

 한 가지 더. 난 이 작품을 읽으면서 1권의 중간부터 딱 떠오르는 프랑스 소설이 하나 있었다. 시모, 라는 이름의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작가가 1990년대에 발표한 소설, <릴라는 말한다>. 아직까지 이 책을 누가 썼는지 모른다. 현지에선 문체가 비슷해 로맹 가리가 "또" 장난친 거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이책과 시모, 라고 주장하는 인간이 쓴 <릴라는 말한다>에서 공통점으로 같은 문장이 무척 많이 등장한다. 바로 이거. "릴라는 말한다." 혹시 시모라고 주장하는 인간이 간텐바인의 이 책을 읽고나서 쓴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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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8-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릴라는 말한다> ㅋ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이젠 작가가 누구였는지는 물론 내용조차 기억도 안 나는;; 그나저나 이런 날씨에 이런 책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17-08-08 12: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내일은 더위 때문에 더 충격적인 독후감을 올릴 예정입니다.
개봉박두!